기록은 기억/서가에 꽂힌 책2008/12/24 07:51

그런 책이 있다. 별 막힘 없이 술술 읽어나가지만 다 읽고 나면 그 느낌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책.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정리하려니 막막하다거나 혹은 느낀 점이 너무 많아 머릿속에서 얽혔을 때가 그런 경우인데, 이 책은 그런 이유라기보다 오랫동안 접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일종의 어색함(혹은 낯가림)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최근 1, 2년간의 내 독서 행태를 분석해 보면 다분히 편향적이란 걸 알 수 있는데, 특히 일본 추리 소설 점유율(...)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나머지는 한국 소설, 에세이, 인문·역사 분야에 편중돼 있고, 약 5~10% 정도가 과학 분야와 영미문학인데, 그러다보니 오랜만에 읽는 이 영미권 소설이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소설은 처음부터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작한다. 마치 100M 달리기에서 출발 준비도 안 했는데 총소리가 울려 허겁지겁 뛰는 기분이랄까. 하여간 좀 내몰리는 기분으로 처음 몇 장을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장면이 네 살 짜리 꼬마아이가 엄마와 엄마의 연하 애인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있나. 내용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제목인 만큼 참으로 파격적이구나, 싶었다. 그 파격은 소설 전반에 걸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처음에는 무던히도 적응이 안 되더니, 책장을 넘길수록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있더라. 사실 [일년 동안의 과부]는 내가 처음에 가졌던 호기심과 기대감을 채워주는 소설은 아니다. 나는 제목을 보고 왠지 모르게 할리퀸 같은 달달한 로맨스를 상상했는데, 이건 전혀 그런 유의 소설이 아니었다. 일단 로맨스라고 해야할지도 의문인데다 도무지 뒤를 상상할 수 없는 내용 전개에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 하는 생각으로 내달리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 느낀 수많은 감정들이 낭비였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고...... 새로운 것 혹은 낯선 것 -이를테면 이 작가의 작품도 처음이고, 이런 식의 내용과 디테일함도 익숙치 않다- 을 경험한 데서 오는 설렘이랄까,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 비슷한 기분을 느껴서 결과적으로는 꽤나 만족스럽다.
[일년 동안의 과부]는 긴 시간의 흐름을 자랑한다. 1958년에 여름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1990년 가을을 거쳐 1995년 가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약 900여 페이지에 걸쳐있으니, 실제라고 한다면 주인공의 반평생을 다룬 전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각 장마다 고유의 분위기가 있고, 그래서 읽다보면 어쩐지 다른 작품을 읽는 기분도 들지만(특히 2권 초반), 어쨌거나 이야기는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감정의 동요를 크게 불러 일으키는 작품은 아니지만 잔잔한 파도에도 높낮이는 있듯 이 소설도 마찬가지. 파격적이다 싶으면 담담해지고, 슬픈가 하면 또 어느새 피식거리며 웃고 있고, 그러다 왠지 모를 감동에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희극과 비극을 잘 조율할 줄 안다는 얘기다. 깨지기 쉬운 감정을 예리하게 다루면서도 쓸데없이 현학적이거나 신파조로 흐르지 않는 걸 보면 매체들이 앞다투어 칭찬하는 '이야기꾼'이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듯. 사실 내용상 통속적인 면이 없다고 할 수 없고, 이야기 전개를 위해 일부러 등장시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과 사건이 진행되지만, 마치 잘 끼워 맞춘 퍼즐처럼 어디 모난 데가 없다는게 매력적이다. 어빙의 비유대로라면 대단한 '축조'기술이라고 해야하나? 책의 줄거리만 단순 요약하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있을 법한 사랑(?) 이야기인데... 그걸 이 정도의 정교함과 섬세함으로 읊어낼 줄 안다는 게 아마 어빙의 최대 강점이 아닐까. 읽을 땐 그게 참 답답했는데, 다 읽고나니 그 복잡미묘함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거 참 신기한 책일세.
그렇다면 '일년 동안의 과부'에서 '일년'이란 시간과 '과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과부'의 이야기를 써왔던 루스에게 누군가의 고함소리와 함께 마치 저주처럼 내려진 '과부'란 운명은 그녀에게 아픔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바꿔 말하면 그녀의 굴레를 한 꺼풀 벗어던지는 데 일조한 것이기도 하다. 트라우마처럼 고약하게 그녀를 지배하던 애증과 오해가 '일년'의 시간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듯 서서히 녹게 되고, 결국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어머니와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결국 '과부'로 지낸 '일년'이란 기간은 루스가 한 단계 진일보 하기 위해 건너야 할 장애물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일년 동안의 과부'는 루스의 전기인 동시에 성장이야기인 셈이다. 그와 함께 에디의 청춘 보고서이기도 하겠고. 크게 보면 모두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겠고. 후후.
영미 번역물 특유의 색채를 오랜만에 느껴서 살짝 거부감이 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한다. 다만 이 책은 원서로 보면 그 참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절제와 기교가 버무려진 그의 문학적 표현이 과연 원문에는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달까,...... 외국 매체의 칭찬 일색의 호평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 덧붙여 책 속에 등장하는 작품(이른바 책 속의 책)들이 아주 매력적인데, 실제로 그런 작품을 내도 좋을 것 같다. 특히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는 단연 압권. 이 묘하게 운율이 있는, 역설적인 수식어를 보라. 이 단어 하나만 봐도 바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죽이는 소리, 동작....... 글자에 이미 원초적인 공포와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 이런 표현을 떠올린 루스콜이나 그걸 듣고 바로 작품을 만든 테드콜이나 과연 작가는 작가인 모양. 내가 어렸을 때 그런 동화를 보았다면 무서워서 잠도 잘 못 잤겠지만, 지금이야 뭐 난 어린 애가 아니니까...... 책 속의 인물이 되어 그 동화를 엿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재 책 속에 빨려들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중. (너무 나갔나...-_-;) 책을 읽으면서 작가로서의 삶과 작가에게 있어서 영감이란 어떤 것일까도 생각해봤는데, 결국 중요한 건 경험에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이와 관련해서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있었는데, 적어놓은 메모지를 잃어버려 아쉽게도 생략. 나중에 찾으면 추가해야지.
마지막으로, 맞춤법 오류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몇 군데 맞춤법 오류를 발견했는데 역시 메모지를 잃어버려서 쪽 수를 쓸 수는 없겠고, 일단 기억나는 것만 적자면 '되'와 '돼'를 혼동하는 경우가 왕왕 보였다. 예컨대 돼요(o)를 되요(x)라고 쓴다던가, 돼서(o)를 되서(x)라고 쓰는 것들. 전 부분에서 다 틀린 건 아니고...... '돼요'나 '돼서'로 바르게 쓰인 부분도 있는 걸 보면 교정하면서 놓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워낙 틀리기 쉬운 맞춤법의 예중에 하나이고, 내용상 크게 걸릴 것 없는 지엽적인 문제라 해도 일단 인쇄·출판물인 이상 (단순 오타도 그렇지만) 맞춤법은 집요하다 싶을 만큼 검토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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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꺼운 책들을 잘도 읽는구나...
난 분량 많으면 일단...한 숨 푹~
그래서 무협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거;;;
하하, 난 분량은 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일단 읽으면 분량 따위..흐흐. 정복하는 맛이 있잖냐. 다 읽고 나면 막 뿌듯한 거. 냐하하. 그치만 무거운 건 좀 싫어. 손목 아프당. 아 참..무협지는 분량 상관없이 익숙해지면 1시간에 한권씩도 독파가능한 장르란다.(좀 뻥;;) 겁먹지마~ 캬캬.
제목이 자극적이라 오히려 피했던 책인데... 생각보단 괜찮을 거 같네요. 오오,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 무지 좋은데요. 역설적이지만 쫄깃해요. 근데 저도 책 읽는 거 보면 추리소설 점유율이... 크흐흑. 갈수록 익숙한 장르, 익숙한 부류에만 손을 뻗게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요즘은 감상도 안 쓰고~. 다소님 감상 보고 혹했던 책들도 몇 권 되는데... 언제 다 찾아보려나 모르겠어요. 애효효.
책이 좀 오묘해요. 흐흐. 재미가 있는 것도 같다가, 뭔가 너무 일상 위주로 흘러가서 지루해졌다가, 또 굉장히 뜨악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하여간 일단 책을 잡으면 놓기가 쉽지는 않은데, 또 한번 놓으면 다시 잡기 어려운 독특한 책이에요. 하하.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이 몇 되는데, 다들 한번식 읽어보고 싶어지지요. 그것도 매력이라면 매력. 음..저도 지난 1, 2년 독서 편식이 굉장히 심했는데, 내년에는 좀 다양하게 읽어볼라구요. 오호~ 제 감상에 혹했던 책이 몇 권 된다구요? 그렇다면 내년에는 좀 더 분발을...! 까스뗄로님을 좀 더 유혹해봐야겠어요. 뇨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