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억/서가에 꽂힌 책2009/01/12 22:47

표지에 그려진 빨간 머리 3D캐릭터의 강렬함과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반항적인 어투에 끌려 읽게 됐는데, 과연 누아르 소설답게 폭/력/과/섹/스가 난무하여 처음에 좀 당황했다. (괜히 19禁이 아니었어!) 게다가 묘사 방식도 어찌나 직설적이고 거칠던지. 헌데 또 전개는 무지하게 빨라서 중간에 끊을 새도 없이 어느샌가 마지막 장까지 도달, 책 읽은지 2시간 반 정도만에 독파했던 것 같다. 아마 소설의 전반이 문장보다는 대화로 전개가 되기 때문일 텐데, 이 소설의 특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은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작가가 자신의 신분을 속였다는 것이다. 처음에 보리스 비앙은 자신의 소설을 버넌 설리반이라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이 쓴 것을 자신이 프랑스어로 번역했다고 밝혔다. 즉, 원 저자는 따로 있고 자신은 그저 역자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인종을 취급하는 방식이 너무나 과격해서 미국에서는 도저히 출판되지 못하고 그걸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한 거라고 말한다. 처음에 소설의 인기는 시들했다. 대외적으로 미국에서 출판도 되지 못한 무명작가의 작품이 인기가 있을리가 있나. 그러나 소설의 내용으로 인해 작가가 한 단체로부터 고소를 받으면서 예상치 않은 홍보가 되어 슬슬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 역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대대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의 내용인즉슨 피해자의 옆에 보리스 비앙의 책이 놓여있었고, 책 내용 중 주인공이 여자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마크 채프먼이 생각나는 군.)
주의) 구체적인 장면 언급은 없지만 결말을 포함한 전체적인 줄거리 언급이 있습니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복수를 테마로 하는 누아르 소설이다. 홍보문구에 따르면 프랑스 누아르 소설의 고전이라고 하는데, 위의 일 말고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하는 등 꽤나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누구 말마따나 위와 같은 의외의 흥행사유로 인해 책이 많이 팔리는 바람에 고전 반열에 든거지 작품성의 측면이나 문학적인 면에서는 크게 점수를 주지는 못하겠다. 말하고자 하는 묵직한 주제에 비해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다. 2주만에 태어난 작품이라서 그런 것일까. 너무 날 것 그대로의 접근이라 공감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느껴지니 이걸 어쩌나. 복수를 테마로 하는 작품들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과정이 통쾌한 것과 안타까운 것이다. 전자는 복수를 하는 사람이 제3자를 충분히 납득시킬 만큼 복수의 이유가 분명한 상황에서 제3자가 복수자에게 몰입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후자는 복수를 하는 사람을 이해는 하면서도 그 복수자가 충분히 설득적이지 못할 경우 제 3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이 소설의 복수자 '리 앤더슨'이 바로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그를 백인으로 볼 만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형과 동생은 리와 달라서 흑인 그대로의 검은 피부를 가졌다. 한참 인종차별이 심했던 1940년대, 리의 동생은 백인 여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백인 여자의 부모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늘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했던 리의 형제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리는 결국 복수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복수 계획이 조금 엇나간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리의 증오심은 백인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에서 기인하긴 하지만, 복수의 대상을 불특정 백인으로 확대한 것은 잘못된 게 아닐까. 즉 직접적으로 동생을 죽인 그 백인 여자의 부모가 아니라, 백인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집안을 골라 그 집안의 딸들을 살해하여 백인 사회 전체에 대해 복수를 하기로 한 것은 마치 어린 시절에 학대 받아 생긴 상처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분명 리의 백인에 대한 증오심을 이해는 하면서도 리에게 그런 식으로 살해당할 이유가 없는 애스퀴스 자매에 대한 동정심도 같이 생겨나고 마는 것이다. 리에게 리의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대화 중에 애스퀴스 자매가 줄곧 가지고 있던(아마도 인식 자체가 그렇게 뿌리내려서이겠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 나오는데, 그렇다 해도 그 자매들이 리에게 그렇게 무참히 살해되어도 좋은 것인가, 생각하면 대답은 'no'다. 그렇기에 리의 복수는 통쾌함보다도 안타까움이 먼저다. 아이러니 한 것은 리가 복수를 위해 백인 같은 자신의 외모를 역으로 이용하는 것인데, 꿈 같은 생각일지 몰라도 그 외모를 이용해서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복수를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망치면서까지 복수심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종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백인사회에 '너희는 우월한 게 아니야!'라고 까주는 것 말이다. 그야말로 제3자의 꿈 같은 이야기려나.
책을 읽으면서 리의 곁에 단 한사람만이라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용기를 북돋워 줄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복수의 의지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고, '괜찮다, 괜찮다, 다 잘 될거야' 등 두드려 줄 사람이 있었다면 리는 그렇게 슬프게 애처롭게 복수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런 위로의 말, 용기의 말 따위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리가 느끼기에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착한 말만 하는 사람이 답답해보여도 난 (우리 엄마처럼) 그런 말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표현은 안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던데. 리의 형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리의 형은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부칠 만큼 지쳐있었고, 상처받은 몸이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그 끝에는 백이면 백, 허무하게 남는 씁쓸함 뿐이라는 것은 이 책도 피해갈 수는 없는지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인종차별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물며 책이 처음 나온 1940년대야 어땠으랴. 그런 와중에 보리스 비앙은 그 거칠고 대담한 터치로 당시의 문제를 가감없이 그려내며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렸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을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하지 못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느 누가 그 시절에 그렇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까발릴 수 있었겠는가. 분명 그로 인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에 대한 은유 없이 적나라하게 펼쳐보인 그 대담함은 분명 의미있는 시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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