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미스터리 장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내 대답은 애매해진다. 아주 좋아한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반대로 별로라고 하기엔 더더욱 애매하다. 하지만 그의 책이 나오면 거의 반드시 읽는다. 이건 뭐지?
그 이유를 [유성의 인연]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것은 이야기의 '재미'다. 특히 그의 작품속에는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작품 전체에 흐르고, 발단-전개-절정-결말이라는 단계별 구성에 충실하다. 초반에 독자를 몰아치지 않으면서도 단숨에 이야기의 본 궤도로 올리는 전개 속도는 중간에 끊어읽기가 힘들 정도로 탁월하다. 반짝반짝한 소재와 트릭, 반전들은 그의 작품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 물론 가끔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닌가 싶은 작품도 있고, 절정과 결말 사이에서 속도 조절을 못해 호흡이 지나치게 가빠지는 작품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런 부분을 충분히 상쇄시킬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재미'가 있다.
작년 4분기에 방영된 일본드라마 중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단연 '유성의 인연'일 것이다. 2007년 4분기에 방영된 '갈릴레오'가 평균 2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보였고, 2008년에 영화화 된 '용의자 X의 헌신'도 흥행에 꽤 성공했으니, 그 다음으로 영상화 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 거는 기대는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유성의 인연'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이 아닌가. 거기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일본 아이돌계를 들었다놨다 하는 쟈니즈 출신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안타까운 것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유성의 인연]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가 탄 국내 팬들이 원서를 사서 자체적으로 번역해서 돌려볼 정도였으니, 과연 그 인기가 실감이 났다.
드라마 때문은 아니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이라는 점에서 나 역시 [유성의 인연]이 상당히 보고 싶었는데, 마침 환율 폭탄을 맞아 천정부지로 치솟은 원서 한권 값이 무려 3만원대에 육박. 이게 무슨 인문서적도 아니고......-_-; 그냥 조용히 번역본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석 달쯤 걸려 1월 초, 드디어 번역본이 나왔다. 일부러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더 설레는 느낌. 꺅꺅.
늘 그렇듯이 저녁 식사 후 침대에 폭 숨어들어 느긋하게 읽기 시작한 책은 밤 1시가 넘어 끝이 났다. 두 권 짜리라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한번 탄력이 붙으면 속도감 하나는 끝내준다. 다만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범인이 누구인지를 너무 빨리 짐작해버려 약간 김이 샜다는 게 아쉬운 점인데, 그렇긴 해도 이야기의 '재미'가 반감될 정도는 아니다. 히가시노의 작품군 중에서 특별히 좋았냐고 묻는다면 조금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겠지만, 읽을만하냐고 묻는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역시 '재미'는 있다니까.
[유성의 인연]은 유성을 구경하러 가던 날 부모님이 살해 당하고 남겨진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래, 만일 범인이 누군지 알면 우리 셋이서 꼭 죽이자."
라고 여동생의 자그마한 등을 쓰다듬는 장남 고이치의 말처럼 필연적으로 복수의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마음을 치유하는 복수를 하느냐, 치유하지 못한 채 복수의 노예가 되고 마느냐. 전자는 보는 이에게 희열을 주지만, 후자는 씁쓸함만을 안겨준다. 후자에 해당되는 소설을 올 초에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달까... [유성의 인연]을 읽으면서 혹시나 그렇게 될까봐 내심 걱정이었는데, 내가 우려하던 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두어 번의 사기를 당한 후 "이 세상은 속느냐 속이느냐 둘 중의 하나야. 그렇다면 우리도 속이는 쪽으로 돌아선다."라고 차갑게 말하는 고이치와 다이스케, 시즈나의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웠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더 이상 당하고 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선택이란 것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이런 방법은 자칫 자신들을 피폐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라 마냥 응원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그래서 가장 좋았던 것이 결말 부분이다. 단순히 해피엔딩이 좋아서가 아니다. 구태의연하고 맥이 빠진다해도 나는 다이스케가, 그리고 고이치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죄는 죄'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그 건강한 마인드 말이다. 그제서야 마음 놓고 등 두드려 주며 응원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되었다.
결국 그들 마음속에 진 응어리들은 그들만의 인연을 무기삼아 서서히 치유를 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유키나리'일 텐데, 이 남자 정말 매력있더라. 고이치도 인정한 것처럼 시즈나가 왜 이 남자에게 빠졌는지 능히 짐작이 가는 인물. 모든 캐릭터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유키나리야 말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이 아닐까. 책을 덮고나서 유키나리 역을 누가 맡았는지 당장 검색해봤는데, 으음..... 예상과는 좀 다른 이미지군. 아무튼 이제 책도 읽었고 하니, 기회가 되면 드라마도 한번 봐야겠다. 자주 놀러가는 블로그 이웃에 의하면 고이치 역을 맡은 니노미야가 그렇게나 좋았다던데... 후후. 나는 다이스케 역을 맡은 니시키도가 더 기대되는 걸. :-)
+)
분권에 대해서.
각권 280여 페이지로 합쳐봐야 570페이지 정도인데, 왜 분권을 했을까. 하드커버임을 감안하더라도 600페이지 미만이면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한 권으로 통합했다면 오히려 이 책의 이면에 숨겨진 묵직함을 더욱 잘 전달해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자로서는 책값이 조금이나마 더 싸져서 좋았을 테고. 분권해서 짜증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은 아쉬운 분권. (하긴 최근에 북스토리에서 나온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는 무려 3권 분권이더라. 도대체 출판사 내의 어떤 기준이 적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순간 기가 차서 읽기도 싫어지는 그야말로 분권을 위한 분권이랄까.-_- 그거에 비하면 [유성의 인연]은 양반이다.)
++)
책 속 이야기.
2권 p. 111 첫째 줄과 둘째 줄 사이.
한 줄을 띄워줬어야 되는 거 아닌가?
첫째 줄까지는 다카야마 시점의 이야기지만, 둘째 줄부터는 하기무라와 가시와바라, 도가미가 등장하며 장면이 전환된다. 그 사이를 띄우지 않고 그냥 잇는 건 부자연스럽다. 다른 부분에서는 장면이 전환되면 한 줄을 띄웠는데, 이 부분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편집상의 실수가 아닐까 싶다.
2권 p. 207 밑에서 다섯째 줄.
마사유키의 마음은 거세게 요동쳤다.
위 문장에서, 마사유키가 아니라 유키나리여야 한다. 계속 유키나리의 심리에 대해 서술 중인데, 갑작스럽게 마사유키라니. 번역상의 단순 실수이거나 교정상의 실수가 아닐까 싶다.
+++)
읽으면서 푸훗,하고 웃었던 장면.
2권 p. 225 여덟째 줄.
"구사나기라고 해둡시다. 스마프의 구사나기. 그리고 나는 가가 형사. 유명한 가가 형사. 알죠? ...... (이하생략)"
구사나기에서 일단 한번 웃어주고. 왜냐하면 늘 '쿠사나기 츠요시'라고 해왔기 때문에 어색해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구사나기 쓰요시'가 맞긴 한데...... 어째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외래어 표기법이랄까. 예전에 '코다 쿠미'를 '고다 구미'라고 써놓은 신문 기사 만큼 우습다. 차라리 한자어 그대로인 초난강이 더 츠요시 이름 같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 외래어 표기법은 전면 개정돼야 한다.-_-)
그리고 두번째로 가가 형사에서 빵 터졌다. 가가 형사는 히가시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 안되는 연속캐릭터로, 연속캐릭터를 자주 등장시키지 않는 히가시노 소설들에서는 나름 특별한 캐릭터인데,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또 "유명한 가가 형사 알죠?" 라는 자뻑(...)대사로 등장시키니, 어찌나 웃기던지. 이건 히가시노의 소설 중에서 [악의]나 [붉은 손가락]을 읽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작은 재미 같은 것인데, 마침 두 소설 다 읽은 독자로서 괜히 반가워서 더 웃음이 나왔다. 호호. 그럼요, 가가 형사가 얼마나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데요. >_<
++++)
책을 읽은 누구나가 한번쯤 해 본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아, 하야시라이스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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