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사를 심하게 많이 다녔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남들보다 적게 한 편은 아닌 것 같다. 가깝게 내 친구들을 보면 동네 유지(...)인 집안도 많고,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도시에서 쭉 자란 애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이사란 동네를 옮기는 정도거나, 다 커서 학업이나 취업 관계로 자취를 하게 되면서 거처를 옮기는 정도로 인식된다. 즉, 가족 전체가 대규모로 (그것도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한 경험은 드물다는 말. 그에 비해 나는 어릴 때부터 이사를 꽤 자주 다닌 편이다. 그것도 멀리. 그 증거로 초등학교 입학은 대구, 졸업은 경기도, 중학교 입학은 경기도, 졸업은 경북, 고등학교 입학 및 졸업은 경북, 대학은 대구...-_-;;; 뭐 이런 식으로 왔다갔다 많이 했다.; 이것 뿐이면 괜찮지. 지방 단위의 큰 이사가 아니라 동네 단위의 비교적 간단한(...그러나 절대 만만치 않은) 이사까지 파고 들면 그 횟수는 더욱 증가한다.-_-; 아버지의 일 때문에 이리저리 옮겨다녔다는 흔한 이유지만, 별로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 (이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특히나 만화책 포함 각종 책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이사가 정말 징그럽게 싫었다. 예전에도 포스팅한 적 있는데, 이삿짐에 책이 많으면 이사 비용 증가는 물론이요, 일도 훨씬 늘어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몸살과 부상이 잇따른다. (가령 책 박스 옮기다가 떨어뜨려봐, 책 손상은 물론이요 난 발가락에 금간 적도 있다.-_-;) 하여간 그래서 한번 이사할 때마다 대부분의 만화잡지는 처리를 해야 했었다.(짐이 많으면 트럭 큰 거 불러야 되니까 돈 많이 든다고 알아서 짐을 줄이라는 부모님의 엄명! 안 줄이면 맘대로 버리겠다고 협박; 그나마 처분할 만한 건 만화잡지 뿐이었음;) 보물섬 같은 어릴 때 보던 잡지들은 큰 애정이 없어서인가;; 고물상에 잘 팔아 넘겼는데, 좀 머리 굵어서 읽기 시작한(즉 내 돈 주고 산) 만화잡지는 차마 그대로 버리지는 못하고, 좋아하는 만화만 뜯어내서 짐을 꾸렸다. 이른바 분철이라는 것인데... 처음부터 분철하기로 결정하고 차곡차곡 모았다면 모를까, 이삿날에 임박해서 바쁘게 작업하느라 엉망진창으로 뜯긴 만화잡지 속 만화들이 상자에 줄줄이 쌓이던 게 기억난다. 그 때 난도질(...)당한 잡지들이 댕기, 윙크, 이슈, 화이트, 나인 등등인데 결국 다 분철 못하고 나머지 깨끗한 잡지들은 친구 언니네 피아노 교습소에 공짜로 넘겨주었다. (지금은 교습소 문을 닫았으니 내 만화는 고물상으로 넘어갔겠지.)
그렇게 일부일지라도 가까스로 살려낸 분철만화(정확히는 분철도 뭣도 아닌 그냥 잡지에서 작품별로 뜯어낸 만화;)였건만, 이사 후 학업이며 생활에 쫓긴 나머지 뜯어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얼마전에(라고는 해도 몇 달은 족히 됨;) 골방 정리하다가 겉에 '만화'라고 적힌 상자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이며 뜯어봤는데, 아 글쎄 그 때 뜯어낸 만화들이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게 아닌가. 크윽. 정말 눈물이 나올 만큼 행복한 순간. 정신적 타임머신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물리적으로는 구현해 낼 수 없지만, 사소한 물건(혹은 추억) 하나로 시간을 역행하여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좋아라 꺅꺅 소리를 지르며 종이가 바스러질 새라 조심조심 꺼내었다. 워낙 옛날 만화잡지라 몇몇 분철은 종이질이 요즘처럼 좋지 못해 누렇게 뜨고 바삭바삭(...)해져서 잘 못하면 부서질 것 같았다.;;;(오래된 갱지 생각하면 될 듯)
개중에는 단행본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아 기억에서 잊혀졌던 중·단편 만화도 있었다. 별책부록으로 받았던 [늘 푸른 이야기], [또 하나의 이야기], [다섯번째의 계절]등도 기억에 아련하고, 무엇보다 연재분을 뜯어놓은 것이라 당시의 작가 에필로그랄까, 코멘트를 엿볼 수 있어서 어찌나 좋은지. 무려 GIRLS의 이빈은 연재 끄트머리에 'R.ef 댄스 동영상 녹화해놓은 거 빌려 주실 분 없나요?' 라는 코멘트를 써놔서 날 꺄르르 웃게 만들었다. R.ef라니 도대체 몇 년전이여. >_< 꺄아하하. (이후 ONE 연재를 시작한 거 보면 그 때부터 자료조사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 중!) 아무튼 그 날은 몇 시간 동안 그 만화책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 후, 오늘 불현듯 생각이 나서 그 때 꺼내어 둔 분철 만화를 다시금 훑어보았다. 아, 다시 봐도 좋구나. 요즘도 물론 순정 만화 잡지는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소재는 다양해졌을지 몰라도 국내 작가수가 많이 감소되었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시장자체가 협소해져서 사실 순정만화 부흥기였던 90년대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게다가 내 나이가 나이니 만큼 요즘 애들 취향에서 멀어진데다, 또 내가 이젠 감수성 어린 10대가 아니라 그 시절만큼 공감도 하기 힘들어 꾸준히 사보지는 못하겠더라. 그러나 그와는 달리 한 때 열광했던 예전 만화들은 진부하기 짝이 없고, 유치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깔깔대며 웃거나 감동 받는는 걸 보니 만화도 음악처럼 추억을 먹고 사는 매체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오랜만에 예전 만화 들춰보며 피식피식, 옛 기억에 잠겨본다. 좋다, 좋아.

심혜진의 2부작 단편만화 '적련'이 맨 위에 놓여있다.

만화잡지별 각종 부록만화들
덧,
1.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여기 있는 만화 하나씩 꺼내서 그걸로 글 써도 좋겠다. 리뷰든 추억이든 만화마다 얽힌 에피소드만 써도 웬만한 분량은 너끈하겠는 걸. 뭔가 정리나 기록의 의미도 되고. :-)
2. 그나저나 다섯번째의 계절 2권은 어디 간거지? 왜 안 보일까...? 예전에 컴퓨터 책상 받침대로 쓴 기억은 나는데...;;; 음...;;;;<- 아니, 이런 만행을!!!! 한승원쌤 보시면 놀래실라..;;;
3. 별책부록으로 저것들 말고도 신일숙의 '사랑의 아테네'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ㅠㅠ 그 중에 2권은 자율학습시간에 몰래 읽다가 선생님 한테 걸려서 뺏기고, 복도에서 벌 서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는데....>_< 그 때 같이 벌서던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거 뭐 BGM으로 여행스케치의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라도 틀어야 될 것 같네.^^;)
4. 혹시 그 시절 만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 이글루스 만화 밸리로 트랙백 보내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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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반가움 >_<
나도 분철 많았는데 다 버리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그중 제일 아까운건 이빈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티"
나중에 단행본이 나오긴 했지만 "칼라" 연재분 중
원고 분실이 있어서 단행본에 실리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ㅠ_ㅠ
그게 제일 아까움
사랑의 아테네도 다 버렸고 ㅠ_ㅠ
아~ 다크 오라버니...다시 보고 싶구나
옛날에 너네 집에 그 유리로 된 책장에 만화책 많이 꽂혀있었는데... 나도 기억남. 근데 넌 집도 넓은데 그거 왜 다 버렸냐; 상자에 넣어서라도 보관하지. 아깝다. ㅠㅠ 난 '칼라'는 친구한테 빌려 읽거나 띄엄띄엄 사서 제대로 기억나는 만화가 잘 없어. 그래도 말하면 다 알 텐데..히히. 아, 포스트 모더니즘 시티... 정말 좋아했었는데. 단행본말고 연재중일 때까 짱이었지. 나 '사랑의 아테네' 단행본은 있어. 히히. 신일숙 만화 중에 그거랑 '라이언의 왕녀'만 없었는데 얼마전에 중고(지만 엄청 깨끗한 거)로 샀지. 유후~ (그러고보니 라이언의 왕녀 새로 나왔더라.>_<)
아~~~ 생각나요 추억의 만화들! 특히 '나나'에서 별책부록으로 얇은 만화책(?)을 끼워주었던 생각이 나네요. 심혜진 작가님의 적련이라는 단편은 첨 알았어요~보고 싶어라ㅜ
아하핫, 저도 생각나요. 나나 별책부록! :-)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줬었지요. >_< 나나에서 재미있는 만화 참 많이 연재했었는데 말이죠.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건 '금니는 싫어요'랑 '은비가 내리는 나라'...:-) 저 '적련'이란 단편은 심혜진 작가의 단편집 [왕의 바다]에 실려있어요. 혹시 보고 싶으시다면 그 단편집을 보시면 될 거예요.^^
저도 이사 경력이 어마어마해서...댕기니 윙크니 화이트니 잔뜩 모았던 잡지들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했죠. 그래도 책만 20상자는 족히 나온 것 같지만; 몇몇 작품들은 분철해서 보관하고 있는데 그 갱지가~참 아슬아슬한 느낌이긴 해요. 언젠간 팍삭 바스라들 것 같은 느낌; 부록으로 모았던 이미라 작품 등등도 다 버렸지만 대신 단행본을 질러뒀으니 뭐^^; 요새는 댕기/나나 코믹스판 작품(빅토리 비키, 인어공주를 위하여 등등)만 봐도 문득 아련해지곤 해요.
진짜 만화잡지들 버린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죠.ㅠㅠ 그 어떤 것보다 애지중지했던 것들인데 말입니다. 보물 1호는 항상 '만화책'이었으니까요. 저도 별책부록으로 받은 만화책들 단행본도 다 있는데, 그래도 별책부록으로 보는 거랑 단행본으로 보는 거랑은 뭔가 느낌이 달라요. 손의 감각까지. 이런 게 추억이고 기억이겠죠. 댕기/나나 코믹스판 작품들은 어우 최고죠. 종이질은 안 좋을지 몰라도 재판된 것들보다 훨씬 정감이 가지요. >_<
와아아, 굉장해요. 부록만 해도 저 정도인 건가요. 잡지들 다 갖고 계셨음 분량 엄청났겠네요. 알이에프... 걸스가 그렇게 오래된 만화였군요.
제 학창시절에서 만화잡지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저 정도는 어쩌면 약과일지도요. 부록잡지 중에서도 잃어버리거나 버린 게 많으니까 사실 부록만 따져도 저거보다 훨씬 많아야 돼요. 히히. 본잡지까지 다 있었으면 (친구 말마따나) 저희 집은 대여점해야 됩니다. 으항항. 걸스가 오래된 만화이긴 하죠. 학생에겐 삐삐도 흔하지 않을 시절 만화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