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config




방금 쿵 소리와 함께 집 전체가 약 2~3초간 흔들렸다.
지진이라기엔 너무 짧고, 순식간이었다.
뭐지? 뭘까?
주무시던 아빠가 놀라서 깼고, 나는 의자에 살짝 걸터 앉아있다가 떨어질 뻔 했다.
바깥에선 개가 짖고 난리 법석.

어디 폭탄이라도 터졌나 싶을 정도의 강력한, 짧고 굵은 충격이었다.
얼마전에 무슨 굉음 어쩌고 하면서 전라도 지역에 난리던데... 대구도?
지금 커뮤니티에 물어보니 대구 전역에서 다 느낀 것 같다.
아 무서워. 뭐야. ㅠㅠ


덧, 지진센터 들어가보니 무려 3.0 규모의 지진이란다. 진원지는 고령. 무지 가깝다. (허걱)
2009/06/28 22:14 2009/06/28 22:14
지금 알았다.
그것도 엄마가 말해줘서 알았다.
집에 와서 허겁지겁 떡볶이 먹다가 그 말 듣고 놀라서 방에 뛰어 들어와 부랴부랴 컴퓨터 켰다.
내가 얼마나 여유가 없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건 뭐 인터넷은 커녕 TV나 라디오도 먼나라 이야기니.....

그나저나 아... 충격이다.
5월 말의 충격이 하도 커서 이젠 웬만한 건 안 놀래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건 면역이 안 되나보다.


난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조만간 화려하게 다시 떠오를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먹먹하고 아쉽고, 아...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옛날 영상들 다 찾아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날 것 같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 또 이렇게 스러지는구나.
슬프다.


그의 명복을 빈다.
2009/06/26 23:59 2009/06/26 23:59
눈이 붙었어. 뻑뻑해.
일회용 렌즈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겠음.
돈이 얼마여 -_-;;;;; 빨리 렌즈 맞춰야지.
술 먹고 왔더니 알딸딸허이.
이미지 관리 하느라 토할 것 같음.-_-
도대체 지난 시간동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왜 내 인상이 예전과 다른거지? 난 분명 새침데기 싸가지 인상이었는데....
사람들이 날 너무 착하게 봐!!!!! 부담스러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사실 밥 안주면 포악해지는 단순무식한 인간인데, 착해보인다는 말에 이미지 관리 하느라 미칠 것 같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쁘다는 말에 계속 에쁘게 보여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우어어웨엑.
빨리 내 본모습을 보여야 해. 이렇게 살다간 변비 걸릴 것 같아.
저는 사실 대마왕입니다. 오인분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09/06/19 00:39 2009/06/19 00:39
- 매우 바쁘다. 인터넷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도 그렇지만 책 읽을 시간도 없다. 당분간은 계속 이러겠지. (제발 한달만 이러자. ㅠㅠ)

- 오늘 버스 잘못 타서 개고생. (도대체 난 왜 멍하니 앉아있었던가) 내리자마자 한여름 뙤약볕에 100미터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 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죽어라 뛰었음.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하긴 한여름에 빨리 걷는 것도 아니고 도둑 잡듯 뛰었으니.-_-) 뛰고 난 다음의 스크류바는 꿀맛이었어. ㅠㅠ

- 평소 누구 닮았단 말을 자주 듣는지라 새삼스럽지는 않으나, 오늘은 늘 듣던 인물과는 달리 아주 새로운 인물과 닮았단 말을 들었다.

"그 왜 있잖아요. 현빈이랑 아웃백 광고하는 여자. MBC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모르겠어요. 요즘 드라마를 안 봐가지고..."
"하여간 닮았어요."

집에 와서 확인해봤다.
하나도 안 닮았다. 헤어스타일 하나 비슷하더라. 긴 웨이브머리.

더해서 "스물 셋? 넷? 많아봐야 스물다섯?" 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악! 기분 좋아서 입 째질 뻔 했다.ㅠㅠ 나이들면 이쁘단 말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이 더 기쁘다더니 세상에. (감솨합니돠~ 아름다운 밤이예요~) 사실 자세히 보면 눈 밑에 주름 자글자글 한데. ㅠㅠ 아직 나의 화장발은 죽지 않았어! +_+

- 꼼꼼해 보인다는 말과 깐깐해 보인다는 말을 동시에 들었다.
세상에, 이런 평가 너무 생소해.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얘기. (주로 덜렁댄다거나 천방지축이란 소리를 많이 들음) 근데 생각해보니 거의 첫인상만으로 판단한 거라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싶기도 하다. 기존의 내 첫인상에 관한 평가는 '새침해 보인다', '여우같다'(더 나아가면 '재수없다'), '무섭다' 혹은 완전 반대로 '잘 웃는다' '상냥하다'가 지배적임. (후자는 전자의 평가에 상처받아 나름 이미지 메이킹을 한 후의 반응. 우하하~)

- 발톱이 찢어졌다.(부러진게 아님) 그거 아니라도 발 못생겨서 여름되면 짜증나는데 이 와중에 찢어지기까지 해서 앞이 뻥 뚫린 샌들 못 신고 나간다.-_- 어떻게든 발톱을 가릴 수 있는 샌들을 신고 나감. (예를 들면 앞코에 왕꽃이 달린 샌들을 신고 나간다든가;) 아놔, 사람들이 내 발만 보는 거 같애. ㅠㅠ 어제, 오늘은 결국 운동화 신었음. 더워죽겠는데 젠장.

- 씨에스아이마이애미 아직 7시즌 스타트도 안 끊었는데 마지막회 스포일러 얻어맞고 짜증나서 아예 죄다 찾아봤음.-_- 제리브룩 이 나쁜놈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떻게 그렇게 끝을 내니.(뭐 작가가 그렇게 쓴 거겠지만 어쨌든 대빵은 제리잖아?) 9월달까지 어떻게 기다려어어어. 어헝헝. 이건 뭐, 로스트 첫시즌 끝나고 4개월 내내 금단현상 시달릴 때가 생각나는구만. 멀리갈 것도 없이 라베 시즌 7도 이따위었지. 그것땜에 8시즌 첫회 시청률이 대박나서 그거에 맛들렸다는 글도 있던데, 내가 보기에도 그런 거 같다. 그래서 8시즌도 그따위, 9시즌 첫회 대박.-_- 아놔. 옴니버스 드라마를 왜 시즌 내로 끝을 안 내는 겨. 특히 마이애미는 너무 심각하게 파란만장해. 어떻게 시즌 1, 2 빼고는 죄다 블록버스터에 'to be continued'하게 끝내냐.-_- 제리가 괜히 제리가 아닌거라. 아니 뭐 마이애미팀이 호반장부터 시작해서 워낙 정열적(...)이라 그런 게 어울리긴 하지만서도 이번 시즌 마지막회에서 캘리 우는 거 보니까 마음이 찢어지더라. 세상에 그 캘리가 울어!!! 아흑. 8시즌 격하게 기다린다. (쓰고 보니 이거 스포인가?-_-)

- 라베는 9시즌 첫회 보고 손도 안 댔음. 길반장 떠나는 게 슬프기도 하거니와 워릭이 그렇게 가버리고 나니 의욕 상실. 얼마나 울었는지. 흑흑. 근데 3회에 레이디 헤더가 출연했다는 말을 듣고 그것까지는 어떻게 보고 싶은데, 막상 보려니 또 시간 없음.-_- 주말에 몰아볼 테다.

- 옴니버스식 미드의 무서운 점이 이거다. 시작하면 끝을 낼 수가 없어. ㅠㅠ 중간에 끝냈다가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또 화르륵 불타오른다는 게 참.........-_-;;;;; 요즘은 프렌즈를 다시 보는데 아으아으아으아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 진짜 웃다가 배꼽이 홀랑 빠질 것 같다. 어쩜 봐도봐도 그렇게 웃긴지. 특히 앞시즌에서의 재니스 목소리...... 푸하하, 자다가도 들리면 벌떡 깰 것 같다. 하도 보다보니 정말 웬만한 대사는 외우겠음. 아일비데어포유~(키히히히~)

- 그나저나 웬일이니. 벌써 6월도 다갔다. 우어~
2009/06/18 00:50 2009/06/18 00:50
악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한  일 년 전쯤에 100페이지 가량, 그러니까 첫 챕터까지만 읽고 덮어두었던 책이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오히려 흥미로웠음) 어쩌다보니 읽다만 책이 되었다. 어젯밤에 생각나서 다시 펴들었는데, 앞내용이 띄엄띄엄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 처음 읽었을 때나 다 읽은 지금이나 평소 요시다 슈이치에 대한 인상을 뒤집는 책이라는 것만은 변함없다. <동경만경>을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은가. '악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표지도 어찌나 강렬해주시는지, 한자 '악惡'자가 저렇게 크게 씌어져 있으니, 정말로 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 같다.-_-; 덕분에 막판에 흐름이 통속적으로 변해가도 끝까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제목과 디자인 덕이 크다.

내용은 여러모로 <모방범>이나 <골든 슬럼버>와 비슷한 느낌이다.(모방범에 더 가깝다) 범죄 사건 하나 발생하면 그 놈의 와이드쇼 카메라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건 여전하다 싶은 게 구역질이 다 난다. 알 권리 어쩌구 하는데, 그 알 권리를 위한 짐을 왜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의 주변인이나 심지어 피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인이 짊어져야 하는 건지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알 권리 이전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좀 지키고 알 권리 추구해라. 악의적으로 카메라 들이대면서 "심정이 어떻십니까?"라니. 그걸 몰라서 묻냐고 버럭 쏘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특종 하나 건지면 개떼 같이 달려들어 만신창이가 되도록 물어뜯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다시 한번 분노로 뭉글뭉글 솟아나는 장면. 그러면서 더 나올 게 없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다른 먹이 찾아가는 태도. 더 웃긴 건 거기에 편승해서 실컷 휘둘리는 일반인들. 그러나 과연 난 그렇지 않다고 완벽하게 자신할 수 있냐 하느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게 슬프다. 이 패배감.

<악인>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불편한 소설이다. 뚜렷하게 드러난 피해자와 가해자를 놓고, 어느 한쪽을 편들어 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었다면 어느 누가 피해자를 두고 '불쌍하다'고만 생각하겠으며, 또 어느 누가 가해자를 두고 '나쁜놈'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하면서 흔해빠진 원론 앞세우며 훈계하기도, 동정심에 사로잡혀  마냥 같이 슬퍼해줄 수도 없다는 게 작가가 노린 지점이 아닐까. 최초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지만 그 원죄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변수는 도처에 깔려있으며, 어차피 최종 행위자는 변하지 않으므로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 누구에게는 철천지 원수이자 악인인 사람이 누구에게는 마냥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그 모순점이 소설 <악인>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 과연 누가 악인일까요?" 하고 문제를 던져놓지만 논쟁만 있을 뿐 사실 해답은 없는 것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악인의 규정은 개인의 몫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기리노 나쓰오 정도의 신랄함과 차가움을 떠올렸는데, 알고보니 미야베 미유키 풍의 따스함을 견지하고 있어서 의외였다. 거기에 나름대로 수위 높은 성애묘사와 더불어 묘하게 애정소설의 분위기가 나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임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던데, 그말 그대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이 제법 있긴 하다. 문득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떠오른다. 물론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훗,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 좀 더 확실하게 와 닿는다. 동어반복이겠지만 <우.행.시>에서 윤수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여기에서도 느껴져서 그랬구나 싶다. 동정심의 방향이 문제였어. 결국 되돌아오는 것은 어쩌지 못할 결말 뿐인가 싶어 씁쓸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왜 이 소설이 인기있는지도 알겠다. 비극의 정서를 제대로 짚은 것이다.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아아, 이것도 저것도 모순 투성이로구나.


밑줄긋기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p.439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p.448
2009/06/08 22:42 2009/06/08 22:42
아, 요즘 리뷰만 쓰면 왜 이렇게 길어지는 거지? 난 진짜 짤막하게 단상 정도로만 쓸 생각이었는데, 뭐 쓰다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에라 모르겠다 흘러가는대로 놔두면 A4 몇 장 분량은 거뜬해. 대학 때 이랬으면 교양세미나 시간에 독후감 늦어서 교수님께 사정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교수실 밑으로 독후감 밀어넣던 기억이 수두룩. -_-) 더 나아가서 우리 학부에서 해마다 열리는 독후감 대회에서 장려상이라도 받지 않았을까. -_-; (정작 대학 땐 한번도 제출해본 적 없음. 동기가 상 받아서 한턱 쏜다고 하면 낼름 얻어먹기만 했음.) 그러니까 결국 자의와 타의에 따른 결과요 현상일 텐데……. 요는 이거(리뷰쓰는 일)에 시간을 꽤 많이 할애한다는 거다. 짧으면 10분이면 끝날 거를, 길어지면 별 볼일 없는 글임에도 문단 사이의 연결성까지 체크해야 해서(은근히 강박증) 한 시간은 잡아먹는다. 최근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생각 정리하고 써내려고 노력중인데, 일단 공개글에 대한 일종의 완벽주의가 있어서 잘 안 된다. 그래 봐야 대단한 명문이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조사나 접속부사를 뭘로 써야 하나까지 고민하고 있다보면 아- 난 본격 논술세대도 아닌데 왜 이런지(논술 초창기여서 거의 비중이 없었음). 김훈이 <칼의 노래> 쓰면서 첫문장을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와 '꽃 피었다'를 두고 고민했다는 게 확 와닿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면서 오늘도 신나게 읽고 (리뷰)쓴다. 이게 활자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안 읽으면 불안해 지기까지 한데 또 읽으면 즐거워서 행복해지니 원. 장정일이 <독서일기>에서 말단공무원이 되어 일 열심히 하고 칼퇴근 해서 나머지 시간을 독서로 소일하며 보내고 싶었다는 말은 내 소망이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아!) 하여간 열심히 퍼담으면 나중엔 한방울이 넘쳐 궁극적으로 내 작품 써낼 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달을 먹다>에서 작가가 말하는 표면장력 얘기는 비단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거야. 그렇다, 궁극의 목표는 사실 내 작품이다. 이런 생각은 어릴 때부터 하던 거였지만 최근엔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강해져서 가끔 꿈도 꾼다. 주변에 아마추어긴 하지만 멋진 창작글을 내놓는 사람이 수두룩 해서 주눅이 더 많이 들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땐 나름 만화 스토리 같은거(무려 판타지역사물이었음<-신일숙 영향) 써서 돌려보고 그랬는데. 최근엔 습작이 안 되니까 필사라도 해 볼까 진지하게 고민을 다 했다. 크흣. 근데 난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정작 아이디어가 후져서 당최 쓸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생각해 오던 내용은 드라마나 책으로 너무나 흔하게 다뤄지는 것들이라서 싫고(거의 내 자전적 실화인데, 얼마나 우중충한지 눈물이 절로 난다-_-), 로맨스는 쓰다가 닭살 우두두, 뛰쳐나가 하이킥 할 것 같아서 못 쓰겠고(ㅋㅋㅋ), 관심있는 역사물은 지식부족, 환상문학은 상상력 부족, 무협물도 써보고 싶은데 설정해놓고 보면 이건 뭐 이상향들 총집합 시킨 팬픽이고, 뭐 그렇다. 부끄러움과 지식(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생전 내 작품 안 나오지 싶기도 하고. 동화 <책 먹는 여우>에서 여우 아저씨는 감옥에 들어갔다가 읽을 게 없어서 자기가 책 썼다는데, 나도 읽을 게 없으면 내 작품 써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감옥 가긴 싫다.-_-) 차라리 통신체 유행하던 시절엔 그거에 힘입어 첫사랑 이야기도 연재하고 그랬는데, 푸하하. 지금 보니 아- 이거야 말로 자다가 하이킥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저 퍼담을 때라 생각하고, 아직은 씨앗만 열심히 모으고 있다. 좀 특이한 씨앗 하나 습득하면 잘 발아시켜서 꽃 한번 피워보고 싶은데, 거 언제 내 손에 들어올런지. (평범한 거라도 일단 새싹부터 틔우는 게……) 일단은 즐겁게 읽고 감상 쓰면서 열심히 머리 굴려보련다.
2009/06/07 16:00 2009/06/07 16:00
상복의 랑데부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이런 소설을 읽고나면 옛날 생각이 울컥 밀려와서 괜히 좀 그리운 심정이 되고 만다.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고전적인 영미 추리소설을 읽고나면 어릴 때 셜록홈즈니,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같은 소설 읽으면서 '나는 탐정이 될 거야'하고 호기롭게 말하고 다녔던  게 생각나서 부끄럽고 즐거운 기분이 된달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 탐정 같은 게 어디있다고. -_-; 책에 나오는 건 다 실화를 각색한 거라고 믿었던 때여서, 분명히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탐정이 있는 줄 알았지. 소설이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아예 생각도 못했나보다.

느지막이 눈 뜨자마자 가장 가까운 데 있던 책 집어서 읽었는데, 중간에 끊을 새도 없이 줄줄 읽혀서 다 읽고나니 점심시간. 이 책은 내용은 하나도 모르면서 제목은 눈에 자주 띄어서, 읽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읽은 것 같은 그런 책이었는데, 이번엔 진짜로 읽었으니 '나 읽었어요!' 라고 흔적은 남겨놔야지. 사실 그런 책 많다. 고전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어디어디 필독도서100선에 내로라 하는 고전이 주욱 실려있는 걸 보면, 내가 읽은 건 채 30권도 안 되더라. 근데 제목이랑 줄거리는 대충 다 안다는 게 고전이 지닌 아이러니지. 암튼 이 책도 추리 장르에서는 고전이라면 고전인데, 나는 (잘 알려진 소설만 아는) 여기저기 널린 스타일의 추리소설독자라서 작가 이름이 좀 생소했다. 알고보니 윌리엄 아이리시랑 동일인물이라고. <환상의 여인> 작가라니까 왠지 새로 보게 된다. (사실 <환상의 여인>도 읽지는 않았음. 명성만 익히 들었을 뿐)

이 작가 스타일 있다. 작품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 안에서 스타일은 확고하다. 사건하나 툭 던져주고 약하게 시작, 계단 밟듯이 착착 올라가서 드디어 평지를 만난 듯 편안하게 마무리. 크게 격정적이진 않지만 독자의 궁금증을 살살 건드려줘서 자꾸만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7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어서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개별 사건이 종결이 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인데, 모두 미해결로 끝나기 때문에 긴장감은 계속 이어진다. 발단이 되는 사건 말고, 본격적인 살인이 세 번 이어지면서 공통점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그걸 토대로 경찰은 나머지 살인을 막으려고 하지만 죽을 사람이 묘자리 찾아가는 데에야 별 수 있나. 독자는 마지막까지 같이 달릴 뿐이다. 범인이 어떻게 대상을 알고 꼬여내는지,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춰서 계획대로 처리를 하는지는 완벽한 미스터리. 심지어 피해자의 행동까지 예상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는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고전의 테두리 안이라 이런 것도 왠지 납득. -_- 요즘처럼 리얼리티 강조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이런 점도 분위기 있어보인다. 마지막 체포 땐 너무 급작스럽게 호흡이 빨라지는 감이 있었는데, 이미 본사건이 다 끝나버린 뒤라 질질 끄는 것보다는 나았을 수도 있겠다 싶고. 추리소설이면서도 묘하게 로맨스의 기운이 풍기는 소설이었다. 애초에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배경이 그랬기도 하고, 살해대상 선정과 그로 인한 효과(?)도 사랑을 모르는 남자라면 그리 효율적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희생자는 무고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비극이다-_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런 사람이 읽어야 한다.
예컨대, 높은 건물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거나 물 쏟아버리는 사람들, 한술 더떠서 일부러 그렇게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곤란해 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 자기가 한 사소한 일이 다른 사람한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거, 그게 자기한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걸 이 소설 보면서 좀 뜨끔해야 한다. 얼마전에 드라마보니까 고속도로에서 커피 컵을 휙 버렸다가 뒤따라 오는 자동차 앞 유리에 쏟아지면서 사고가 날 뻔한 장면도 있던데, 그러면 안 되지. 벌 받아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죽은 개구리 남편이 밤마다 꿈에 괴물개구리로 나타나서 잠 못자게 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구!

그나저나 이 소설을 읽고 생각난 또 다른 말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랄까? 혹은 머피의 법칙? -_-

고등학교 때 내 친구가 나한테 팔짱을 끼고 룰루랄라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데, 아 글쎄 새똥이 내친구 팔 위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_-; 보통 그런 상황이면 같이 새똥을 맞거나 그랬어야 하는데 정확하게 팔짱을 낀 내친구 팔위로만 떨어졌다. 팔짱 안 꼈으면 내가 맞는 거였는데, 팔짝 끼는 바람에 그 친구가……. 더 가관인 것은 친구 달래려고 비싼 즉석 떡볶이 시켰는데, 그거 만들어주는 점원이 실수로 국물을 왕창 튀기고 말았다. 근데 그것도 모조리 그 친구한테만 튀어서 그 친구는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는 거. -_-;;;;;;; 흰 교복에 누런 새똥도 모자라 떡볶이 국물이라니... 한참 민감한 고3때인데다 수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애라 그런지 "난 왜 이렇게 재수없는 거야!"하고 우앙~ 우는데, 뭐 할 말이 있어야지. (다른 친구는 그런걸로 우는 게 웃겨서 배꼽 잡고. 그 친구는 친구가 웃는다고 더 울고. 아주 난리 법석이었음)

아무튼 난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우연으로 시작한 사건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커져가듯 나로 하여금 잊혀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괜찮은 고전 추리소설이다. 이 번역본 초판년도가 무려 1977년이라는데(헉),  더 빨리 읽었으면 훨씬 재미있었겠지만, 더 늦지 않게 읽어서 다행이다. 다음은 <환상의 여인>. (근데 번역본이 왜 이렇게 많아? 고르기 힘들어. 끙 -_-;)


덧,
1. 맞춤법 오류 발견
이래뵈도(X) → 이래ˇ봬도(O) p.56

어제 읽은 책에 이어 연달아 틀려주시니,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건가 싶었다. 다행히 그건 아니고.
과연, 사전에도 틀린 보기가 나올 만큼 자주 틀리는 맞춤법이 맞구나 싶다.;
비슷한 용례로, 뵈요(X) → 뵈어요 혹은 봬요(O)

2. 제목은 언제봐도 참 독특하다. 읽고나니 더 독특해.
참고로 원제는 RENDEZVOUS IN BLACK.

3. 요정도 책 크기 사랑한다.(세로 20cm가량)
해문 문고본보다는 조금 크지만 이 정도면 손에도 잘 잡히고, 가방에도 쏙쏙 들어가고.
우리나라는 적정 수요가 못 돼서 문고본 시장이 생길려다 망했지만, 그래도 요런 책들 보면 문고본 시장이 좀 활성화되면 좋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출판계 사정 알면 암담-_-;
2009/06/07 12:44 2009/06/07 12:44
- 다시 대학에 가서 과를 정한다면?
1지망. 문예창작학과
2지망. 문헌정보학과

- 그 전에 고등학교에서 문/이과를 다시 정한다면?
무조건 이과 간다.

- 대학원에 가게 된다면?
언론학을 전공하고 싶다.


뭐냐? 이 일관성 없는 소망들은? -_-
2009/06/06 14:42 2009/06/06 14:42
도쿄밴드왜건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그 시절 많은 눈물과 웃음을 거실에 가져다준 텔레비전 드라마에"

책 말미에 쓰인 헌사에서 알 수 있듯 홈드라마 같은 책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헌책방을 무대로 가족 4대에게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주내용이다. '도쿄밴드왜건'은 이 헌책방의 이름. 특이한 것은 3대째 주인이자 현 주인 홋타 칸이치(79세)의 부인 홋타 사치가 영혼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이런 사치 할머니의 시선으로 자식, 손주, 증손주의 이야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그려진다. '도쿄밴드왜건'이란 이름의 유래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유추할 뿐인데, 이 특이한 이름의 간판이 처음 거릴 때도 사람들은 특이하다고 입을 모았단다. 옛날 간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젊은이가 간판을 올려다보며 "건왜드밴쿄도?"하고 중얼거린 적도 있다는 얘기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

홈드라마답게 자극적인 내용 따위 없다.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 매일 펼쳐지고, 다만 4대라는 대가족이 모여살다보니 늘 시끌벅적할 뿐이다. 계절마다 사건·사고가 벌어지지만 그야말로 '에피소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라 근심, 고뇌라기보다 오히려 적절한 활력소가 된다. 약간의 미스터리는 양념. 그 왁자지껄한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역시 가족이어서일까. '둥글게 둥글게'가 모토인 평화주의자들의 이야기는 너무 도덕적이라 때로 지루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거지, 하고 내심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도시의 편리함과 스릴을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골의 느긋함과 정서를 동경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마음에 들었던 건 '헌책방'이 무대로 쓰인다는 점인데, 단순한 장치로만이 아니라 헌책방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서 묻어나오는 정취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일본도 요즘은 가업을 중시하는 풍조가 많이 사라지긴 했다지만 아직은 곳곳에 이런 가게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거의 1세기 가깝게 내려오는 가게의 모습은 헌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나로서는 신기하고 부러울 수 밖에. 이런 가게라면 선대의 영혼이 남아 수호신처럼 보호해주거나 지켜보는 것도 왠지 망상만은 아닐 것 같다.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행동할 때는 가족 단위가 된다는 것이 이런 대가족 홈드라마의 특징이자 한계. 절연한 '아미'의 친정 어른을 찾아가뵙자며 칸이치 영감의 명령 아래 가족 전체가 부산하게 예복을 갈아입는 장면은 무척 전형적이었다. 그나저나 아오와 스즈미의 결혼이 아무런 방해 없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게 좀 놀라웠는데, 따지고 보면 족보가 엄청 꼬이는 거 아닌가. 건너건너 반쪽짜리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친척인데, 저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결혼이 성사되다니 한국식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본은 사촌간에도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더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가 싶기도 하고.-_-

두세 시간이면 슥삭,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책이다. 단, 평소에 착한 가족 드라마 분위기를 싫어한다면 별로 권하지 않는다. 이후로 속편 격인 <쉬 러브스 유>도 나왔다던데, 칸이치 영감의 장남이자 왕년의 록커, 금발의 가나토가 늘상 왜치는 '러브'는 여전히 유효한가보다. 기회되면  읽어봐야겠다.


덧,
1. 맞춤법 오류 발견
이래 뵈도(X) → 이래 봬도(O) p.190, p.303


2. 기억에 남는 문구
아오는 아침밥을 먹고 잠시 쉬고는 곧장 돗자리와 대발을 꺼내 와서 마당에 깔았어요. 콘이 그 위에 그늘막을 치고, 책을 꺼내 와 그늘에서 말리려는 겁니다. 아주 낡은 책이 아니라면 그대로 한동안 내버려둬도 괜찮지만 개중에는 아주 오래된 값비싼 책도 있어요. 그런 책은 바람을 너무 많이 쐬어도 못쓰게 되니까 적당히 조절해주어야 한답니다. 별로 값나가지 않는 헌책은 대발 위에 그냥 툭툭 던져놓고, 값나가는 고서는 흰 면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다루지요. 앉은뱅이 테이블에 흰 천을 덮고 거기에 책을 가만가만 놓는 거예요. 그 다음 한 장 한 장 책장을 천천히 넘기면서 안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볍게 바람을 쐬어주지요. p.128~129 : 헌책방의 일과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좋다.

"마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어요."
그 기분 잘 알지요. 여자는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그런 기분을 잊고 싶지 않은 법이거든요. p.263 : 동감.

"잊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게 여길 다니고 있잖습니까. 책은 한 권 한 권 제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다. 돈을 마구 써서 사고팔고 해봤자 거기에 책에 대한 애정은 없다. 책은 물건과 다르다." p.326 : 후지시마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칸이치 영감의 책에 대한 마인드. 책을 읽는 행위나 책 자체를 유별나게 신성시하는 것은 싫지만, 수천 년 이상 내려오는 책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의 가치는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물건과는 다른 것이다.


3.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



미우라 시온, <월어>
교고쿠 나츠히코 <우부메의 여름>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두 책 모두 헌책방(고서점)을 무대로 한다.
각각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려지는 이미지가 판이하게 다르다.

<도쿄밴드왜건>의 '도쿄밴드왜건'은 따뜻하고,
<월어>에 나오는 '무궁당'은 시원하고,
<우부메의 여름>에 나오는 '교고쿠도'는 이(異)세계 같다.

작품 성격따라 나뉘는 이미지이기이기도 하다.
2009/06/06 12:36 2009/06/06 12:36




여행기나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대체로 마음이 들뜬다. 어디어디를 돌아다니며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노라, 하는 글들을 사진과 곁들여 읽다보면 당장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어디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발바리(...) 기질도 한몫하겠지만, 여행이란 모름지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법이다. 그리 거창하고 긴 여행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한번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관광이 아닌 여행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서 늘 어딘론가 떠나는 꿈을 꾸며 이것저것 계획을 세웠다 무너뜨렸다 한다. 아직 혼자서는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해본 적 없는 겁쟁이일 뿐이지만……. 그런데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고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벅찬 감동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위안을 얻은 것 마냥 편안하다는 느낌이 먼저였다. 아마 '산티아고'의 특성상 일반적인 여행보다는 순례의 느낌을 더 많이 전해주어서일 게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책 위에 손 얹고 명상에 잠긴 책은 참 오랜만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우리말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의 이 길은 도보순례로 유명한 길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 길'이 가장 유명하다. 스페인어 '카미노(camino)'는 그냥 '길'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이지만 '프랑스 길'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카미노(Camino)'가 '프랑스 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인다."(p.20)

고 한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저자가 이 카미노를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 끊임없이 떠오르고 사라진, 혹은 새겨진 생각들의 기록이다.

극심한 혼란함과 슬픔을 벗어나고자 도피하듯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나를 찾는 여정이 아니라 나로부터 달아다니기 위한 일종의 도주라는 말이 목에 걸렸다. 나에게는 sanna라는 필명으로 더 익숙한 저자가 조그마한 등산화 사진 한장과 함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흔한 배낭여행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서두에 '나의 동생 김인배에게'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건만 사실은 사연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불쑥 미안한 마음과 함께 숙연하고 진지해졌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마운틴 폴에 의지해 하염없이 산티아고로 걷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보이지 않는 동행이 되어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으로 다가왔던 건, 바로 '사람들'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산티아고 가는 길'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여행은 깨달음이 뒤따르지만, 그 깨달음에는 자연과 함께 늘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별것 아닌 사실이 이토록 뭉클하게 다가오다니 새삼 가슴이 벅찼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수 만큼 다양했다. 글의 초반, 타인에 대해 이리저리 널뛰는 저자의 복잡한 감정이 마치 나인양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짜증도 났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걸 보며 나 역시 치유를 얻고 안식을 얻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가 하면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란 제목처럼 혼자일 때 비로소 정리하고, 토해낼 수 있는 생각들도 존재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마침내 크루스 데 페로에서 동생의 사진을 묻으며 터뜨린 울음 앞에서는 나도 따라 울 수 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훌쩍훌쩍 울어서인지 그 부분을 넘기고 나자 잠이 쏟아졌다. 책갈피를 꽂아놓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내가 카미노를 걷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길이 어린 시절 내가 무척 좋아했던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뒷산 가는 길'과 닮아있어 나는 또 그리움에 훌쩍훌쩍 울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눈 주위로 눈물자국이 길게 말라 붙어있었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아주 많은 책이었다. 특히 '머리 냄새 나는 아이'나 일마즈가 얘기해 준 산티아고 전설, 그리고 아름다움을 들이마시는 인디언들의 처방법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예쁜 이야기다. 할머니가 되면 (아니 되기 전에라도) 어린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주고 싶다. 카미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 저자의 생각, 인용한 구절구절과 덧붙여진 해석들 모두 기억하고 싶은 것 투성이다. 도망치듯 떠났고 순례의 정신이라기보다 그저 걷고 싶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자는 순례자의 임무를 마친 셈이며, 덕분에 독자로서도 순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평화를 조금이나마 느껴서 참 고마운 책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책을 덮으며 언젠가는 카미노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걸 안다. 아직은 마지막 비상구로 남겨두고 싶다. 지금보다 더 절박해지면, 혹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오면 오직 배낭 하나에 나를 압축해 넣고 카미노를 걸어보고 싶다. 하염없이 그 길을. 그때까지 이 말을 아껴놓는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덧,
1. sanna님이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 몇 장과 짧은 글을 올려셨을 때, 나도 모르게 시선이 10초는 고정될 정도로 반한 사진이 있다. 푸른 들판 위로 길이 나 있고, 지평선 위에 그림처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사진이었다.

메세타 평원의 지평선 위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메세타 평원의 지평선 위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p.118~119)


바로 이 사진인데, 거의 다 왔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았다고 했다. 이 사진이 책에 크게 담겨 있어서 정말 좋았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저 빛깔이 좋다. 여전히 퐁당 빠져 버릴듯한 사진이다. 이 사진 말고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좋은 사진이 많다.


2. 블로그에 여행기가 올라오길 기다리는 도중에 책으로 발행될 거라고 해서 은근히 설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궁금하던 참에 책이 짠- 하고 나왔다.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들어서 기다림이 아무렇지도 않다. 예쁜 글씨체로 내 이름과 함께 정성스럽게 싸인까지 해서 책 보내주신 sanna님, 아니 김희경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
2009/06/05 21:42 2009/06/05 21:42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5
현대문학

박완서 - 거저나 마찬가지
조성기 - 작은 인간
이혜경 - 피아간彼我間
구효서 - 소금가마니
윤대녕 - 탱자
하성란 - 웨하스로 만든 집
이기호 -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김중혁 - 무용지물 박물관無用之物 博物館
정이현 - 그 남자의 리허설
김애란 -달려라, 아비



단편소설이 읽고 싶을 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집.
특별히 땡기는 작가가 없거나 뭘 읽어야될지 모르겠을 땐 이렇게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는 소설집이 제격이다. 알아서 선곡해주는 컴필레이션 앨범과 같달까. 간혹 취향에 맞는 작품이 한 작품도 없을 경우 난감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최소한 하나는 건지게 돼 있다. 나름대로 현장비평가가 뽑았다는데 독자가 읽어서 하나도 건질 게 없다면 당장 비평가 접어야지.-_- 물론 비평가와 일반독자의 취향 사이에는 늘 일정한 넓이의 강이 흐르지만서도. 반대로 건질 작품이 많다면 의외의 포만감으로 배 통통 두드릴 수 있으니 별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거나 2005년 소설집이라 좀 늦었긴 하지만 얼마전에 득템하여 후다닥 읽었다. 재미있었다. 이 중에 이기호, 정이현의 작품은 각각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와 <오늘의 거짓말>에 실려있고,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있는데, 사놓고 안 읽는 바람에 여기서 처음 읽는다. -_-; 그 책들 어느 책장에 쳐박혀 있는지 찾지도 못하겠다. -_ㅠ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나의 책들;)

개인적으로 조성기의 '작은 인간' 빼고는 다 그럭저럭 취향에 맞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은 인간'은 아아, 도무지 그 감성을 못 따라가겠다. 남자는 물론 시점이 되는 여자의 생각조차도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겉돌고 있다는 느낌 밖에 못 받았다. 액자식 구성으로 그 안에 속한 전족 이야기가 오히려 훨씬 재미있었고 뭘 말하려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장치로서 패티시즘을 다루고 있다고 보는데, 하필 '발'이라서 좀 무서웠다. (CSI 생각났음.-_-;)

이혜경의 '피아간'과 구효서의 '소금가마니' 윤대녕의 '탱자'는 묘하게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전통적인 사회에서 당연시되어 오던 가치관의 부조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특히 '피아간'에서 묘사되는 큰아들의 행태라든가 경은이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소금가마니'에서 드러나는 어머니의 핍박과 희생, '탱자'에서는 고모님의 억눌렸던 젊은 시절 같은 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서 뒷맛이 어찌나 씁쓸한지. 드라마 소재로도 무던히 쓰인 이 이야기들이 아직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는 걸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무리 지리멸렬하게 부대끼는 인생이라지만 마주 대하면 늘 쓸쓸해진다. 그나저나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최근 소설을 더 읽어봐야할 것 같다.

박완서의 '거저나 마찬가지'는 세태에 대한 풍자가 들어있다. 신랄하지 않고 은근하게 까발리는 게 일품. 소위 386세대에 대한 감사와 증오가 교차되는 심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달까. 기억에 남는 작품.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장면 묘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부실공사로 지어진, 지금은 재개발 붐에 휩쓸려 겨우 버티기만 하는 그 2층 양옥집에 대한 묘사는 내가 한 때 살았던 그 집이 생각나서 눈물이 다 나올 뻔 했다. 그런데 그 비실대는 집에 얽힌 추억은 또 얼마나 질긴지 지금도 생각하면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립다는 게 참 아이러니. 삐걱거리는 바닥 소리가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 같다는 표현은 정말이지 적확하다.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아아, 너무나 이기호스러워서 웃음이 다 났다. 하여간 이 작가, 재치있다니까.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이렇게 발랄하게 표현해낸다는 건 정말 재주다. 제목도 어찌나 기발한지. 거의 환상문학처럼 펼쳐지는 내용은 읽어나갈수록 살짝 상식에 혼란이 올 정도. 흙은 정말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꽃도 식용이 있는데, 흙이라고 없을까... 뭐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은 감각에 대한 소설이다. 오감의 어느 하나를 배제한 채 대신 상상력을 곁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사물을 대한다라...... 사실 문학의 경우도 시각적으로 직접 다가오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야만 전달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 모든 창조물이 다 그렇구나. 결국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건가?

정이현의 '그 남자의 리허설'은 남자의 열등감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과 결핍을 냄새(후각)로 표현해내는 게 탁월하다. 냄새에 대한 묘사는 실제와 망상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불안한 남자의 심리가 어느 지경에 다다랐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깔끔한 문장은 이 소설이 필요 이상 질퍽해지지 않는데 일조. 그래서 더 연민이 느껴지는 그 남자의 리허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읽고나서 좀 웃었다. 이 '아비'가 그 '아비'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난 사람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대.;;; 예쁜 여자 아이 이름이라고 생각한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이게 다 알록달록한 단행본 표지 때문이니라. 아무튼 예상과 다른 내용에 짜증과 유쾌함을 동시에 경험한 희한한 소설이었다. 난 '아비'가 못마땅한데 우리 주인공은 어쩜 그리 긍정적인지 말이야. 제목마저 '달려라, 아비'하고 응원조이지 않은가. 이런 착한 아이 같으니라고. 난 그런 주인공과 엄마를 응원할 테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고 신선하게 진공포장하며 거기에 유쾌한 리본까지 묶어버린 김애란의 문체를 보며 왜 요즘 잘 팔리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평작 이상은 된다. 비교대상이 없어서 별점은 생략하지만 3개 이상은 거뜬하다고 본다.
다른 연도 소설집도 착착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연도별로 나만의 순위를 매겨봐야지.
2009/06/05 21:16 2009/06/05 21:16
한희정 - 끈 EP
파스텔뮤직 (Pastel Music)

수록곡

1. acoustic breath
2. 러브레터
3. 끈
4. 오늘만
5. 솜사탕 손에 핀 아이
6. 멜로디로 남아 (feat. 김종완 from 넬)
7. 끝




5월 중순에 각 스트리밍 사이트에  '솜사탕 손에 핀 아이'가 선공개 됐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까지 나는 작년 7월에 발매된 한희정의 첫 솔로 앨범 <너의 다큐멘트>를 해가 넘어가도 질리지 않고 듣고 있었기 때문에 후속 앨범이나 싱글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왠지 1년은 훌쩍 지나야 다음 앨범이 나올 거라 생각해서 여름이나 가을쯤 돼야 슬슬 2집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EP 발매 소식이라니! 꺅꺅 소리를 질러댈 정도로 기뻤다. 28일이 정식 발매일이지만 선공개가 어디냐, 선공개는 들어줘야 제맛. 설레는 맘을 안고 조심조심 들어보았는데…… '아이 달콤하여라'. 어린 날의 동화 같은 노래였다. 쓸쓸하게 옛날을 추억하는 어른의 노래가 아니라 고민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베시시 웃으며 수줍게 옛기억을 떠올리는 소녀의 노래였다. 제목도 '솜사탕 손에 핀 아이'란다. 이 예쁜 문구를 보라. 보송보송한 솜사탕의 달콤함이 손에서 혀로 스미는 느낌이 들 만큼 예쁜 제목이다. 솜사탕과 손 사이에 조사 '이'가 빠지면서 시적인 느낌도 물씬 풍긴다. 의도한 거겠지? :-) 얼른 CD로 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6월 2일로 발매일 연기! 으윽)

왜 이렇게 늦게 한희정을 알게 되었을까. 지난 해 <너의 다큐멘트>를 들으며 수없이 했던 생각이다. <푸른 새벽>을 찾아 듣고, <더더>의 3, 4집을 들으면서는 억울하단 생각까지 들었다. 왜, 왜, 난 이 목소리들을 흘려들었단 말인가. 그렇다. 분명 듣기는 들었는데, 담아두지 않고 흘려버렸던 것이다.(머리 콩콩!) 그야 나의 얇디 얇았던 음악 취향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괜히 심술이 났다. 옛날부터 한희정 노래 들었던 사람들은 좋겠네, 부러워부러워. 그렇지만…… 늦게라도 알게 되어 내 귀가 즐거워졌으니 그래도 인연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CD가 왔다. 책상 위에서 날 반기는 택배상자. 두근두근 테이프를 뜯어보니. 같이 주문한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와 함께 뽁뽁이 비닐에 곱게 싸여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에헤헤. 혹시 상처가 날 새라 조심조심 비닐을 뜯었다. 근데 우씨, CD 케이스 모서리가 약간 깨져있었다. ㅠ_ㅠ 포장 문제라기보다 원래 불량인 것 같았다. 우엥. 아니야, 뭐 괜찮아, 봐줄 수 있어, CD만 무사하면 됐지. 후다닥 꺼내어 CDP에 넣고 삑삑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는다. 사실 발매일이 밀리긴 했지만 28일에 온라인에는 전곡 공개가 되었다. 참을성 없는 나는 이미 노래를 다 들어보긴 했지만, 그래도 CD로 듣는 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느낌이다. 음질 문제를 떠나 아날로그에서 느끼는 향수 같은 거랄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CD도 LP나 테이프에 비하면 상당한 디지털 매체인데 어느새 아날로그로 생각될 만큼 옛스러운 매체가 되어버렸다.



그럼 슬슬 노래 이야기로 넘어가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기타를 들고 자세를 잡는 소리, 노래 시작 전 작게 기합을 넣는 소리, 그리고 딩가딩가 하는 기타소리와 함께 첫 곡인 'Acoustic breath'가 시작된다. 제목 그대로 어쿠스틱의 분위기와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도입부다. 기타줄 사이로 음을 타는 예쁜 손가락과 마이크 앞에서 눈을 감은 채 가만가만 노래하는 한희정이 그려진다. 어쩜, 이렇게 예쁜 목소리를 가졌는지. 넘실대는 감수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해주는 기막힌 목소리를 가졌다 한희정은. 그것을 유감없이 발휘해내는 'Acoustic breath'는 이어지는 노래들의 첫 곡으로 손색이 없다. (아니 어디에 끼어들어가도 좋을 거야.) 그리고 넘어가는 두 번째 곡 '러브레터'는 가사가 먼저 귀에 들어온다. 멜로디 없이 가사만 봐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말들. 정말이지 이 죽일 놈의 감수성!!!!! 이별 후 슬픔에 침잠하지 않으면서 독하게 발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덤덤하지도 않게 아린 마음을 표현하는 탁월한 글귀다. 귓볼에 걸어둔 노래소리, 팔랑이는 속삭임이라니... 그렇게 한희정의 목소리는 내 귀에서 팔랑팔랑 한다. 세 번째 곡이자 EP타이틀과 같은 제목인 '끈'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한희정이 하고 싶은 말이 드러난다. 가만히 들어보면 이번 EP에 수록된 일곱 곡의 노래들은 하나의 주제에 걸쳐 있는데 그것은 혹시 너와 나를 이어주는 무형의 어떤 것이 아닐까. 한희정은 그것을 '끈'이라고 표현한다. 이어져 있던 끈이 끊어지든, 아니면 끊어진 끈을 다시 묶어 잇든, 곧 끊어질 듯 위태위태하든 어쨌든 너와 나 사이에는 끈이 있다. 다소 서글프게 노래하지만 끈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네 번째 곡 '오늘만'은 아주 짧은 곡이다. 흔히 interlude에 해당하는 곡이 아닐까 싶은데, 그전까지 이끌어온 분위기를 마무리 하면서 타이틀인 '솜사탕 손에 핀 아이'로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솜사탕 손에 핀 아이'는 곡으로만 놓고보면 <끈>이라는 EP내에서 조금 튀는 곡이다. 약간의 템포가 더해지고, 음도 조금 더 통통 튄다. 가사도 앞선 곡들에 비해 밝다. 그래서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그런 곡이 갑자기 튀어나와 어색해지지 않게 '오늘만'이 보완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둥글고 밤은 여전히도 아름다우니 오늘까지만 모른척 해달라는 가사는 문학적인 그녀의 노래답다. '솜사탕 손에 핀 아이'를 지나면 '멜로디로 남아'가 나온다. 아주 담백하게 시작되는 이 곡은 넬의 김종완의 보컬이 섞이면서 곡 전체가 풍성해진다. 한희정 혼자서는 나긋나긋하지만 피쳐링이 더해지면서 힘을 받는다. 어쩐지 <너의 다큐멘트>나 푸른새벽의 앨범이 생각나는 노래다. 그 앨범에 들어가도 위화감이 없을 노래. 왜인지는 음, 잘 모르겠다.; 드디어 마지막 곡인 '끝'은 제목마저 '끝'이다. '끈'을 이야기하며 '끝'으 마무리를 하는 센스. 정말 좋다니까! >_<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맨 마지막 가사인 '꿈이었네' 부분인데, 마지막 '네'에 스타카토를 찍으면서 깔끔하게 떨어지는 부분이 좋다. 그렇지만 다시 'Acoustic breath'로 돌아가도 덜커덕거리지 않는 곡. 그래서 end가 아니라 and여도 좋을 곡이다. :-)

한희정의 이번 EP는 전체적으로 <너의 다큐멘트>를 이어가면서도 앞으로 나올 2집의 포석이라는 듯 살짝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EP의 음률이 조금 더 둥실 떠오르는 느낌인데, 그래서인지 쓸쓸한 가사를 노래하지만 그 모두를 인정하고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EP인 만큼 곡 수가 정규 앨범보다 적다는 것과 약간은 소품집 분위기가 나는 디자인도 그런 느낌에 한몫을 한다. 에메랄드 그린이 전체를 덮고 그 위에 눈을 감고 엎드린 한희정이 하얀 실타래 쥐고 있다.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끈들은 뒷장으로 이어지고 그 끈을 감고 있는 손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희정의 옆모습과 함께 손가락 끝에 묶인 끈들이 이번 EP의 느낌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대변한다. 참 아기자기하다. 미니앨범 혹은 EP가 가지는 속성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군더더기 없는 CD프린팅은 지난 앨범과 맞추기 위한 걸까? 파스텔톤 에메랄드 그린이 한가득!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처럼 나른하고 편안하다.

더더의 한희정과 푸른새벽의 한희정, 그리고 솔로로서의 한희정은 그 색깔이 참 많이 다르다. 보통은 중첩되는 이미지에 점점 질리기 마련인데, 어쩜 이렇게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주시는지 새삼 놀랍다. 내가 늦게서야 한희정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각 그룹과 솔로로서의 음악색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같은 시기가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매력을 분출한 거라고. 음, 그럴 수도.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일찍 한희정을 알지 못한 게 다시금 안타깝다. 아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한희정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의 모든 감상이 다 사족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난 한희정의 감성이 정말 좋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그럴 것 같다. 이건 뒤늦게 한희정을 알게 되어 얻는 효과 같은 거? 헤에, 일장일단이려나. 어쨌든 지금은…… 그저 좋을 뿐이다.  :-)



덧,
1. 초도한정으로 B-Friend 팔찌를 증정하고 있다. 앨범 하나 사면 자동으로 결식 아동 기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좋구나~! :)
2. '솜사탕 손에 핀 아이'는 신곡이 아니었구나……. 작년 SPACE 공감에서 라이브로 불렀다! 'ㅁ'
다른 곡들도 공연에서 먼저 선보인 거구나……. 음. 모르는 게 많군. 나는 계속 뒷북. -_-
2009/06/04 20:13 2009/06/04 20:13
TA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