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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 이마 이치코 / 시공사

며칠 전에 동생 부탁으로 유럽여행에 관한 가이드북을 한 권 사면서 덤으로 얹어서 백귀야행 17권도 샀다.  내가 그동안 무심한 사이에 백귀야행은 18권까지 나와있었지만, 최근의 백귀야행에 흥미를 잃은 탓인지 크게 땡기진 않아서 그냥 17권만 샀다.(집에는 16권까지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읽을랬더니 16권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백귀야행이 기본적으로 1회 완결 옴니버스식 만화긴 하지만, 가끔 이전 에피소드가 다음 이야기에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앞 내용을 알아두는 게 좋다. 그래서 16권을 꺼내서 다시 읽었다. 그런데......-_- 16권도 읽은 기억이 없어! 뭐지? 그래서 15권도 꺼내왔다. 헐...15권도 기억이 희미해.-_- 과연 내가 무관심하긴 했구나. 이렇게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야. 결국 1권부터 다 꺼내와서 어디부터 기억이 나나 살폈더니, 14권까지는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결국 15권부터 정독했다는 이야기. 사실 10권 넘어가면서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긴 것 같고, 뭔가 매너리즘이 느껴진달까, 의무감에 그리는 것 같아 흥미를 좀 많이 잃었었다. 옴니버스 식이라도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진전이 너무 없어서(예를 들어 리쓰와 즈카사와의 관계?) 고인 물 같았다. 그래서 15권부터는 사기는 하는데 제대로 안 읽고 던져둔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백귀야행 읽으니까 아이공~ 재미있어라. 전체적으로 크게 진전 안 되고 있는 건 여전한데, 간만에 느끼는 이마 이치코의 향취가 정겹다고나 할까. 은근히 정신없는 그림체랑 말풍선도 좋고, 오지로와 오구로의 주인님을 위한 애정어린 행각도 귀엽지만 짜증나긴 마찬가지고(ㅋㅋㅋㅋㅋ), 갈수록 띨빵해지는(?) 아오아라시도 무진장 마음에 든다. 으하하하. 특히 17권의 두 번째 에피소드 <미혹의 벚꽃>은 단연 수작입니다. 멋지게 즈카사를 구하려고 했던 리쓰의 시도가 허무하게 끝난 거랑 요괴 주제에 다른 요괴한테 멍청하게 속아서 자기가 지켜야 할 리쓰를 구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아오아라시의 절규(...)는 압권이었다. 아 진짜 나 그 부분 읽다가 빵 터져서 배에 근육 잡히도록 웃었네. 아버지의 모습을 한 아오아라시의 헐랭한 모습이 제일 좋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18권도 같이 살 걸 그랬다. 읽고 싶어 죽갔네. ..................... 그래서 여기저기 검색해봤더니, 18권에 엄청난 전개가 기다리고 있더라능. 나 말고도 내용 진전 없다고 불퉁거리는 독자들이 많았나? 아니 갑자기 왜 이렇게 진도를 빼는 거지? 누군가는 당장 19권에 완결나도 손색 없을 거라고까지 해서 긴장했다. ㅠ_ㅠ 아니 뭐 최근에 좀 질려서 그렇지 나는 백귀야행 계속 했으면 좋겠는데... 이제 15년째인데 이왕 10년 넘은 김에 20년도 채워 봐요~ 네?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쑥쑥 나가주시면 슬퍼요오. ㅠ_ㅠ 흑

아무튼 감상을 세마디로 정리해보자면,
17권 재미있었다. 내일 18권 사러 가야겠다. 빨랑 19권 나오면 좋겠다. <끝>


+ 문득 시공사판 <백귀야행>의 외래어 표기법 적용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律(りつ)리츠는 '리쓰'로 표기했는데, 司(つかさ)츠카사는 '쓰카사'가 아니고 왜 '즈카사'라고 표기했는가? (하다 못해 '쯔카사'나 '츠카사'라고 표기했다면 어떻게 이해를 해보겠는데, 왜 '즈'카사라고 탁음을 붙였느냐 말이지;;;;이건 완전 다른 사람이잖아!) 그리고 蝸牛( かぎゅう)카규는 '가규'라고 표기했는데, 開(かい)카이는 왜 '가이'가 아니고 그대로 '카이'인지? 이것 말고도 찾아보면 더 많을 것 같지만, 아무튼 이거 표기법에 너무 일관성이 없는 거 아냐? -_-+ 뭐,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밀고나가는 일관성은 있는 건가?.;;;
2010/03/06 20:33 2010/03/06 20:33

실사그림

닮았다고 우겨본다

2010/03/02 22:30 2010/03/02 22:30
우연히 대니 그레고리의 <창작 면허 프로젝트>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로 앞부분 몇 장, 다른 사람 블로그에서 사진 몇 컷만 봤을 뿐인데,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서 '사고싶다, 사고싶다, 사고싶다'를 외치면서 끙끙 앓았다. 웬만하면 사겠는데 지금 '개거지'신세라서 자중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지르질 못하겠더라. 그러다 지난 일요일날 뛰쳐나갔다. 어디로? 서점으로!(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책 찾아 들고 구석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한 시간 가량 훑어보았다. 어찌나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따뜻한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며 나아가서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식의 기법 전수가 아니라 '이렇게 그리면 좋고, 저렇게 그리면 더 좋다' 식의 조언에 가깝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림을 못 그려도 상관없다, 무엇이든 그리는 자체가 중요하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만 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그림 실력과 더불어) 좀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 준 것이다. 아아 감동이어라.

나는 미술 쪽으로 참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의욕만은 늘 왕성해서 학창시절 미술시간이 되면 야심차게 덤벼들기를 겁내지 않았다. 뭐 결과적으로 좌절+의기소침하는 일이 많아서 고민만 커졌지만.; 특히 그리기 계통.... 그러니까 '인물화'나 '정물화', '풍경화' 같은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평균에 도달하지 못했다.(그나마 색깔 안 칠해도 되는 소묘는 개중에 좀 나았다;) 중 2때였다. '친구 얼굴 그리기'가 그날 미술 과제였는데, 나는 내 짝꿍의 얼굴을 그려서 보여주기가 민망해서 과제를 안 내려고도 했다. 오죽 못 그렸어야지.-_-;;;(그렇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내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며, 그 그림은 내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어서 좋다고 말해준다. 좋은 친구다. ㅜ_ㅜ) 어쨌거나 중요한 건 내 그림 실력이 상당히 저질이었단 말씀. 그래서인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 못해 후광이 비치는 것 같고,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 괜히 부끄러워서 나도 언젠가는 제대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것 같다. 근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둘 다 있으면 마땅히 배울 데가 없다든가, 셋 다 될 때는 의욕이 없고....후...그랬다. 인생이 그런 거지.

그런데 이 책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던 상황을 타파시켜줌과 동시에 당장 그리고 싶게 만들어버리니 내가 한 눈에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그려봐. 못 그렸다고 절대 찢어버리지 말고, 다시 그리고, 또 그려봐... 직선 잘 못 그리면 어떠냐 정 안 되면 자가 있는데 무슨 걱정? 그리고 싶은대로 그려. 아무도 뭐라 안 한다. 일단 그려봐~" 라고 달콤하게 속삭여 준다. 점점 샘솟는 의욕. 그렇다면 이 책이 의욕만 잔뜩 돋워놓고 발을 쏙 빼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자 그러면 그리기 위해선 뭘 해야 하느냐, 일단 사물을 잘 봐야 해. 자알~ 오래 쳐다보고 다시 그리면 아마 처음 그렸던 그림이 어디가 어색한지 알 수 있을거야."라고 조언 해주기도 잊지 않는다. 자신이 쓰는 펜은 이런이런 펜이니 참고하라고 하라고 그림 그려주고, 자신이 그린 여러가지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감상의 즐거움도 선사한다. 그러면서 책 제목답게 프로젝트를 실행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림일기. 와우! 대박이야~

초등학생이나 그린다고 생각했던 그림일기를 그려보라는 조언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겐 너무나 신선해서 마치 입에 레모나를 털어넣고 포카리 스웨트로 목을 축이는 기분이랄까...라라라라라라라라~널 좋아~한다고~♬(자동재생 CM송) 상쾌해요. 그림과 일기를 접목하면 생활 속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을 거고, 내가 블로그에 이것저것 써내려가면서 느끼는 사소한 해방감을 그림일기로도 느낄 수 있다면 자가 치유의 효과도 확실히 있을 것 같다. 더 볼 것도 없다. 이 책은 사야 돼! 지난 주에 책 판 돈이 있으니까 살 수 있어!! (훗, 책 팔아서 책 사는 아름다운 인생~) 어쨌거나 결국은 책을 사기로 결정하고, 책 내용을 당장 실천하기 위해 핫트랙스로 내려가서 B5 크기의 스케치북이랑 마음에 드는 펜 몇 가지를 사들고 룰루랄라 집에 돌아왔다. 앞으로 매일매일(며칠 쯤은 건너뛸지도 몰라;) 그림 일기 프로젝트 시작이다!!



+
근데 참 비싸게 나왔다. 한 3~4년 전이었다면 15,000~16,000원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종이값이 올랐다, 환율이 올랐다 어쩌구 하는 지금은 20,000원(할인가 18,000원)이다. 그렇지만 해외원서도 할인하면 18,000원대로 살 수 있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종이질은 국내본이 더 좋지 않을까? (원서는 페이퍼백이라고 했음.) '원서빨'이라는 게 있어서 종이질은 가뿐하게 넘어주는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서 실물 구경 좀 해봤으면 좋겠네.  ▶ 아무래도 원서가 궁금해서 구글신을 찾아갔다. 종이질이 무척 좋아보였다.(페이퍼백하면 떠오르는 똥종이가 아니었어!) 그림이며 글자의 인쇄 상태도 훌륭했다. 이럴수가! 원서도 사고 싶어!!!!!!!!!!!!!!!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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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02 My Room


  창작 면허 프로젝트 - 드로잉 기초부터 그림일기까지, 삶을 다독이는 자기 치유의 그림 그리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김영수 옮김

광고회사 중역으로 온통 일에 파묻혀 살다가 그림 그리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 삶의 필요성과 창작의 실질적인 지침을 들려준다. 저자는 그림 그리기를 운전 면허 따기에 비유하여, 의지가 있고 연습만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훨씬 더 행복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2010/03/02 21:30 2010/03/02 21:30
유리 망치
7점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영림카디널

〈크림슨의 미궁〉을 읽고 다시금 기시 유스케에 대한 호감이 폭발하여 집에 있는 책장을 뒤져서 그의 작품을 찾아냈다. 사놓은 지 제법 오래된 책인데, 막상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오랜 세월 방치돼 있던 책. 쪽수는 500쪽 조금 안 될 정도로 특별히 양이 많지는 않지만 종이질 때문인지 엄청 두꺼워 보여서 지레 질렸던 것 같기도 하다.(그보다 더 두꺼운 책도 잘만 읽으면서;;;) 또 기시 유스케의 번역본이 대개 '창해'에서 나온 걸 감안하면 '영림카디널'에서 나온 이 책이 좀 생소하게 느껴진 탓도 있다.(덕분에 기시 유스케의 번역본 중 이것만 판형이 다르다;) 그냥 뭐 책도 다 때가 있어야 읽히는 법이려니 하고 지금은 읽었으니까 만고 땡이다.

어느 한적한 휴일. 상장을 앞두고 있는 '베일리프'라는 회사 빌딩 최상층에서 사장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장실은 이중강화유리에, 복도에는 적외선 센서와 고성능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더욱이 사장실이 있는 12층은 비밀번호 없이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 않으며 마스터 키 없이는 계단 출입도 통제되고 있다. 심지어 바깥에는 세 명의 비서가 대기 중이었고, 옥상이나 천장, 배기구로도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는 구조다. 그 누구의 출입도 없었지만 사장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띠지의 화려한 홍보문구에 따르면 그야말로 '극초정밀 밀실살인'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옆 방에서 자고 있던 전무 '히사나가 도쿠지'. 히사나가는 결백을 주장하고 그의 변호인단 중 한 사람인 '아오토 준코'가 방범 컨설턴트인 '에노모토 케이'에게 밀실 트릭에 대해 자문과 조사를 의뢰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체적인 내용은 1부와 2부, 에필로그로 나누어진다. 1부는 해결사들의 입장에서 조사와 추리를 거듭하며 가설을 실험, 범인에게 다가가는 형식이고, 2부는 범인의 시선에서 상황을 보여주며 트릭을 설명한다. 그래서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 갑자기 전혀 다른 소설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드는데, 제법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는 범인 검거 후의 결과와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는 컨셉인데,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기시 유스케의 작품들은 늘 에필로그 형식으로  끝났던 것 같다. 이런 형식은 맺음이 분명하고 깔끔해서 좋다.

기시 유스케는 다작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품 한번 쓸 때마다 굉장히 공을 들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재주만 믿고 설렁설렁 써내는 게 아니라, 관련 분야를 제대로 조사하고 의미있는 장치로 활용하기 위해 진지하게 공부한다는 느낌? 그래서 소설 하나 읽고 나면 굉장히 알차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보험사에서 일한 자신의 경력을 십분 활용한 〈검은 집〉도 그렇고, 게임을 소재로 한 <크림슨의 미궁>도 단순한 지식의 활용이 아닌 꼼꼼히 조사하고 분석한 티가 나서 독자로서도 괜히 뿌듯하달까.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첨단 간병사업이라든가 방범체계에 대한 기술지식까지 내용 전개에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치는 전문 지식들이 수두룩하다.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은 그림과 표로 첨부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으니 친절하기까지. 그래봐야 나로서는 용어부터 생소한 것이 많아 허둥지둥 내용따라가기도 벅찼지만.(물론 이해에는 무리없음)

〈유리망치〉는 밀실살인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로도 좋지만 캐릭터 소설로도 꽤 괜찮다.(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음) 능력있고 예쁜(?) 변호사 '아오토 준코'의 도도하고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는 그리 신선하진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매력일 수 있다.(조절을 잘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콤비를 이루는 '에노모토 케이'가 눈에 띄는데, 나쁜 남자 스타일이 분명한 그의 위험한 향기에는 묘한 끌림이 있다. (책 속 준코나 책 읽는 나나)트릭의 비밀도 궁금해 했지만, 이 남자의 내력도 만만치 않게 궁금해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쿠쿠) 방범샵을 운영하면서 컨설턴트로도 일하지만 탐정 소질이 있고, 과거를 알 수 없는 의외의 인맥과 자신의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보여주는 색다른 카리스마, 주인공으로서는 드물게 옳지 못한 일에도 발을 담그고 있지만 가치관은 뚜렷하며, 세속적 욕망을 감추려하지 않으면서 위험한 생각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라 이건 뭐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부분까지... 기존의 주인공 캐릭터를 탈피한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외형적으로 특별히 잘난 놈은 아니지만 자신감 넘치는 눈빛이 좋고, 중간중간 (특히 마지막에) '준코'를 당겼다 놨다 은근히 작업을 거는 부분은 "이 자식! '밀당'에 능한 놈이군!"이라는 확신까지 주었다. 아아, 추리소설인데 로맨스의 향기를 맡아버린 나! orz (그게 뭐 어때서? '엑스파일'에도 로맨스는 있다!)

책을 다 읽고 작가가 이 좋은 캐릭터들을 요 작품 하나로 끝내진 않았으리라는 근거없지만 왠지 확신이 드는 생각을 가지고 검색에 돌입. 그리하여 2008년에 이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단편집을 하나 냈다는 것을 알아냈다. 쿠하하하하. 아마존 평은 썩 좋지 않지만 두 사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일단 기대. 아직 국내 출시는 안됐지만 조만간 될 거라는 기대감 속에 흐뭇하게 책을 덮었다.(원서 살랬더니 문고본이 아직 출시 안 돼서 포기; 하드커버는 비싸용~) 읽으면서 영상화하기 딱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시 유스케는 작품 수에 비해 영상화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것도 괜찮겠다는 생각. 변호사 역할에는 '키 크고 도도하고 능력있지만, 패기 없고 별 볼일 없는 남자만 사귄 탓에 반대 급부로 위험한 남자에게 끌리는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가 맡아야 되는데 언뜻 떠오르는 게 코유키. 흐흐.(난 워낙 이 언니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남자는 '키는 좀 작아도 눈빛 좋고 카리스마 넘치고 날렵하고 위험한 남자의 이미지'여야 하는데...음... 누가 있을라나? 키득.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한 걸. 아무튼 이 책도 추리소설 좋아하는 분께는 그럭저럭 추천대상. (언제나 그렇듯 너무 큰 기대는 오히려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
"젊은이란 어느 시대에도 어쩔 수 없는 모순  덩어리지요.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으리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도 몹시 상처받기 쉬워, 어른이라면 견딜 수 있을 어렵잖은 일로 바스러져 버리기도 하죠. ……마치 유리로 만든 흉기처럼" 460p.

"……유리로 만든 망치가 진짜로 위험한 흉기가 되는 것은 부서진 후입니다." 461p.


++
맞춤법 오류 발견
42p. 12째 줄 : 새뱃돈 → 세뱃돈
2010/02/24 21:40 2010/02/24 21:40


폐쇄자(앞, 뒤) / 유시진 / 서울문화사

이거 몇 년 전에도 쓴 거 같은데...; 세상에! 아직까지 이 만화의 끝을 못 봤다.-_- <나인> 연재 시절에 잡지 사면서 보다가 중간에 끊어서 결국 완결을 못 봤다. 단행본 나올 즈음엔 연애하고 노느라 바빠서 만화는 안중에도 없었음. 그래서 그 시기에 나온 단행본은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매우 슬픈 전설이 있다. 아무튼 이 책은 독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무척 좋아서 대여점용 아니면 중고시장에 풀리지도 않는 매우 레어템.(베이지톤삼색체크 만하겠냐만!orz) 하긴 유시진은 팬충성도가 상당히 높은 만화가에 속해서 사실 소장용이 중고시장에 풀릴 일이 좀 없긴 하다. 내 경우 초반에만 해도 유시진을 아주 좋아한 편도 아니었고, 연재 만화는 전부 내가 사던 잡지로 보던 터라 특별히 단행본을 사지 않았는데, 시간 지날수록 좋아진 케이스여서 요즘도 가끔 땅을 치고 후회하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거나 애정이 떨어지는 만화&만화가가 있는가 하면 이처럼 별로 라고 생각했던 만화 혹은 만화가가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유시진은 확실히 후자다. 좀 아이러니 한 건 내 친구중에 초창기부터 유시진을 엄청 좋아하던 애가 있었는데(정말 광적이었음), 그 애는 유시진이 만화에 투영하는 '자아'가 이제 슬슬 지겹다고 했다. 흐음, 물론 난 아직 유시진이 좋고,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아이가 뭘 말하려는지는 알 것도 같다. 아무튼 끝을 못 봐서 무지하게 보고싶은 만화.

이걸 봐야 <목걸이 장인>에 나오는 만화를 다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흑)




세상에서 제일 미워!(1~13) / 히다카 반리 / 학산문화사

이건 봤지만, 또 보고 싶은 만화. 대학 때 은근히 재미있게 봤던 만화다. 내용이며 주인공 이름이며 하나도 기억 안나고 단지 남자주인공이 미용사였단 것만 기억난다.-_-; 더불어 여주인공의 친구 이름이 '센코'라는 것도.(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예전에 마츠모토 토모의 '키스'팬페이지 운영자님의 닉네임이 센코여서 잊을 수 없음) 오랜시간 절판이어서 못 구했는데, 오늘 검색하다 보니 언제 복간되어 나왔네? 가격은 좀 올랐지만. 사보고싶다. 손이 근질근질하다. 마침 적립금도 있고 한데 (한꺼번에 사긴 좀 그러니까) 한 권씩 한 권씩 곶감 빼먹듯 사봐? 그러고보니 번외편은 안 본 것도 같고...음...;




마스카 (1~12) / 김영희 / 서울문화사

<윙크> 사던 시절에 나름대로 챙겨보던 만화지만 지금은 큰 줄거리조차 기억 안남. 카이넨이 멋있었단 사실만 기억난다. (하지만 1권 표지는 카이넨 말고 그 친구인 듯. 렐의 스승이었나? 이름 또 까먹음-_-) 암튼 얼마전에 지이님 포스팅을 보다가 문득 생각났는데, 중간에 늘어지고 여주인공이 내 맘에 안 든다 해도 일단 얘기가 나오면 왠지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심리. 하지만 현재 절판이고, 우리집 주변에는 대여점이 없어서 당분간 이 만화 보기는 요원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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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3 19:58 2010/02/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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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의 미궁크림슨의 미궁
8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정 옮김
창해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서 납치를 당하고, 눈을 떴을 때는 낯설고 작은 방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호텔방 같지만, 타의에 의해 그 방에 갇힌 사내에게는 그저 감옥일 뿐이다. 그 후 외부와의 연락은 철저히 차단당한 채, 그리고 자신을 납치한 게 누군지도 모른채 자살도 용납되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15년동안 복수만을 꿈꾸며 체력을 단련해 나간다.

<크림슨의 미궁>의 도입부분은 언뜻 <올드보이>를 연상케 한다. 눈을 떠보니 기괴한 장소에 놓여져 있고, 설상가상 지난 밤의 일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그러나 깊게 고민해보기도 전에 당장 마실 물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 오대수가 좁은 공간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질리지만 재깍재깍 제공되는 만두를 먹으며 복수를 꿈꾼다면, 후지키 요시히코는 제한적이긴 해도 그보다는 넓은 공간에서 직접 먹거리를 조달해가며 각종 위험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해야한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후지키는 자신 외에 그곳에 납치 당한 사람이 여덟 명이나 더 있음을 알게되고, 각자에게 주어진 휴대용 게임기를 통해 미션을 수행, 종국에는 서바이벌 게임을 치루어야 하는 사실을 깨닫는다.(게임기에 의하면 그들은 '화성의 미궁'으로 초대된 것이다) 모두가 기억을 더듬어 조합해보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어느 이벤트 행사에 응모했다는 것 뿐. 과연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주최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게임을 할 줄만 알았지 게임속에서 조종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서 게임 속 인물이 되어야 하는 그들. 게다가 게임은 제로섬이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상황은 이제 <배틀로얄>이 되었다.

<검은 집> 이후로 기시 유스케는 무서운 작가가 되어버렸다.(오감 자극 소설 - 기시 유스케, [검은 집] 참조) 그는 심장이 옥죄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독자를 공포속으로 밀어부치는 데 능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 작가의 책은 밤에 읽지 않도록 하는데, 어제는 무슨 배짱으로 새벽에 집어들었던 건지. 중반 넘어가면서 부터는 읽는 내내 이불 덮어쓰고 '무서워 죽겠네~'를 연발했다. <검은 집>과는 사뭇 다른 공포지만, 식은 땀 나게 만드는 기술은 이 작품에서도 유효하달까. (다 읽고 자다가 꿈도 꿨다.ㅜ_ㅜ) 99년작이니 딱 10년 전 작품으로 시대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묘하게 고전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물론 당시에는 나름대로 신선했겠지만;) 그게 공포심을 더 키운 게 아닌가 싶었다. 밤에는 옛날이야기가 더 무서운 법이지.

어릴 때 해리슨 포드 주연의 <도망자>를 보면서 굉장히 무서워했었다. 잘못도 없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상황이라는 건 억울하면서도 끔찍하게 공포스러운 것이다. 이 책은 딱 그런 유의 공포를 선사한다. 하물며 뒤쫓아 오는 사람이 사람 잡아먹는 식시귀인 다음에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원초적인 공포가 아닌가 말이다. 인격이 배제된 식시귀가 한 때는 동일 조건에 있었던 동료였고, 그 변화가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것이라는 걸 생각하니 더욱 무서워지는 것이다. '살아남고 싶다면 배신하라'는 말초적인 문구는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매우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인간도 엄밀히 말하면 동물이어서 그런 상황에서는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을 수밖에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중에 '인생극장'이란 게 있다. 이휘재가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든 프로그램인데 컨셉은 이렇다. 상황극이 펼쳐지고 어느 순간 주인공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인생이란 늘 선택의 연속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선택은 주인공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예능답게 두 가지 선택의 결말을 다 보여줌으로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대리만족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크림슨의 미궁>에서도 이 선택의 갈림길이 시시때때로 나온다. 주인공이니까 결론적으로 옳은 길을 선택해갈 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상당수 그렇게 진행되어 다른 선택지가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것마저도 신(여기서는 게임 주최자)의 뜻에 의한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마음이 무거워지고 만다. 게임의 엔딩은 세가지. 배드엔드, 해피엔드, 그리고 트루엔드. 과연 책에서 보여주지 않은 엔딩은 도대체 어떤 결말이었던 걸까?

다 읽고나서 나는 '호접지몽'을 떠올렸다.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되었고, 깨고나서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후지키의 마지막을 보며 과연 후지키가 게임 속에서 빠져나온 건지, 아니면 아직 게임 속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것이 실체고 허상인지 모를 혼돈. 이것이 작가가 원한 결말일까?  혹시 인간은 신 혹은 신적 존재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그 허무함을 안겨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좀 염세적인가?;; 그래도 그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다보면 결말을 조금 바꾸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니까 이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일지도. 꼼꼼한 자료조사와 그걸 펼쳐보이는 능력, 복선의 활용, 공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는 솜씨까지... 간만에 기시 유스케의 매력을 왕창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 즐겁다. 추리(공포)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추천하겠다. 다음에는 얼마전에 번역·출간된 그의 데뷔작(13번째 인격)을 읽어봐야겠다.



+
1. 오타 발견 - 410p. 4째 줄 : 아퀴가 맞았다. → 아귀가 맞았다.
2. 소설의 배경이 된 오스트레일리아 벙글벙글 국립공원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똑같아서 무서웠다. 기시 유스케의 묘사 능력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나?(긁적)
2010/02/22 23:22 2010/02/22 23:22
그녀들의 크리스마스
10점
한혜연 지음
서울문화사(만화)

무척 가지고 싶었던 만화라 그냥 제목만 봐도 사랑스러운 <그녀들의 크리스마스>. 한국순정만화 최고전성기가 아니었던가 싶은 90년대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선보였던 단편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서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하여 여성의 복잡하고 헤아리기 쉽지 않은 심리를 아주 담백하고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 총 5개의 단편으로 묶여있다.


Episode 1. 그녀들의 크리스마스
표제작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해서 좀처럼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반에서 겉돌던 A, B, C, D가 수학여행에서 떨거지가 되어 같은 조로 묶이면서 우연히 마음 터놓고 친구가 되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는 베프야!'라고 말로 약속하지 않아도 충분히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그녀들은 고등학교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보내면서 5년 뒤 다시 모이기로 약속한다. 나올 때는 꼭 애인을 데리고 나온다는 조건을 달고서. 그리고 5년 뒤. 정말로 그녀들은 그 카페에서 만나고, 지난 시간들을 서로에게 공유한다. 5년은 짧고도 긴 시간. 10대 때와 비슷하게 성장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예상 밖의 변화를 보인 친구도 존재했다. 그건 단지 외모의 변화만은 아니다.

이 에피소드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 옛날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어린 마음에 애인을 데리고 나오기로 약속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자신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 인간이 사랑하는 인간을 봄으로서 그 사람의 내면과 취향과 모든 것을 그대로 알 수 있으니까. 그건 수학여행의 그 밤에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 놓는 것보다 더 큰 비밀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나레이션은 이 단편의 의미를 단번에 응축시킨다.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어 긴가민가한 지금, 친구와 애인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D.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먼 옛날 '사랑하라'고 말했던 사람이 태어난 크리스마스'에 D는 그 말을 따르기로 다짐한다. 5년 뒤 서른 살의 크리스마스에 다시 모이기로 한 친구들. 그 사이에 그녀들에게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또 어떤 사람이 옆에 있을지 궁금해진다. 같은 사람? 다른 사람? 그렇대도 혹은 그렇지 않대도 그녀들의 크리스마스가 계속 되는 한 지켜보고 싶어진다. 마치 내 얘기인듯, 친구의 얘기인 듯.


Episode 2.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한 주희.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고 오직 한 명, 초대하지 않은 서영이만이 벨을 누른다. 짧아진 주희의 머리카락과 서영이의 이야기.

아아 기억난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 소녀여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소녀여서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그 감정들이 좋다. 10대소녀들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공중에서 부유한다. 때로는 튕겨내고 때로는 흡수하면서 서로를 인식한다. 사랑과 우정과 동경과 미움이 동시에 부딪히는 그 시절. 유치하고 위태롭지만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었던 10대의 이야기. 순간의 감정을 포용할 수 있을 만한 어른이 아니어서 힘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그마한 계기로도 마음을 열어보일 수 있는 그 나이의 감수성이 좋다. 한뼘씩 자라는 게 눈에 보이잖아.


Episode 3. 크리스마스 사막
모범생 종희, 날라리 쫑희. 하지만 소문 속에서 모범생 종희는 임신부가 되었고, 아이들은 날라리 쫑희라면 믿겠지만 종희는 그럴리가 없다고 반신반의 하며 소문을 나른다.

사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는 속담에 부합하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또한 그것이 완전한 타인의 이야기라면, 우리는 카더라 통신을 들먹이며 '세상에~세상에~' 떠들어댈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는 타인이 아닌 '나와 친구의 시선'으로 다가가며 이해의 여지를 만들고 있다. 읽다보면 종희가 답답하고 세상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움보다는 용서가 더 빨리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크리스마스니까.


Episode 4. 가짜 크리스마스
재수생 소영이(아이디:폴로)은 대학생영화비평동호회에서 활동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생의 감투가 필요하다. 짧은 칭찬의 달콤한 맛이 그리워 거짓말은 지속되고, 그런 와중에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에게 동호회 사람들은 한껏 호감을 내보이지만 소영이는 그 여자의 거짓말을 눈치 채고 정체를 의심스러워 한다.

나는 한혜연의 이런 점이 좋다. 더러 있을 법한 일을 차분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작가.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으면서도 한껏 누릴 수 있게 만드는 이런 에피소드 말이다. 실제와 만화의 간극을 메우면서도 떨어뜨려놓고 생각의 여지를 준다. 참 좋아. 정말로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궁금케 만들고 있잖아.


Episode 5. 크리스마스에 말하라
윤진이와 도희는 유럽배낭여행을 계획하고 방학동안 붕어빵 장사를 하기로 한다. 그런 윤진이에게는 붕어빵 하면 생각나는 한 친구가 있고, 그 친구는 윤진이의 10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0대들의 주공간은 학교다. 학교는 열린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숨막히게 폐쇄적이어서 차오르는 감정의 배출구가 없다. 하루 24시간 중 2/3를 보내는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친구는 동료이자 가족이고 연인이며 정신적 지주가 된다. 그 나이대의 학교는 하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는 좁지만 그들에게는 전부이다. 친구가 나 아닌 다른 친구와 친하면 질투를 한다든가, 내가 잠시 엎드려 조는 사이에 다른 친구와 매점에 가버리면 까닭없이 외로워지고 심하면 눈물까지 나오는 게 그 세계에 사는 소녀들의 감성. 하물며 죽고 못살 것 같은 그 친구와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해야만 한다면...? 글쎄 모르긴 몰라도 세계가 곧 파괴돼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이해는 할 수 있어.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같이 수면제를 먹자 해놓고 그 아이는 왜 의식을 잃어가는 윤진이를 두고 총총히 가버렸는지. "도와줄까?"라고 아무렇지 않게 나타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고민하고 괴로워했을지. 단지 무서웠기 때문일까?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뒤 윤진이의 이야기도. (+도희 나쁜것!)



<그녀들의 크리스마스>를 정의하는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10대, 여자, 크리스마스를 꼽겠다. 이야기하는 현재의 시간이 20대라 해도 기억이 10대에 머물고, 모든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분기점으로 시작되고 이어진다. 특히 10대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소녀(혹은 여자)여서 더욱. 10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시절의 감성이 때로는 무서울 때가 있다. '한번쯤 돌아가고 싶다'와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율배반의 감정이 시시때때로 상충하기도 한다. 결국 이쪽이든 저쪽이든 10대는 영원불멸인지도.
2010/02/21 23:28 2010/02/2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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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여자 (曲げられない女)
NTV 수요드라마
2010년 1월 13일 (수) 22:00 첫방송 ~ (현재 방영중)
연출 : 나구모 세이이치
각본 : 유카와 카즈히코
출연 : 칸노 미호, 타니하라 쇼스케, 츠키모토 타카시, 나가사쿠 히로미 외


오기와라 사키, 32세(우리나라 나이로 33세), 독신여성.
인간관계에 극도로 서투르고 무뚝뚝하며 애교와는 백만년 거리.
남자친구 역시 없을 거라 단정하기 쉽지만 의외로 10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어서 주변인을 놀라게 함.
 꽤 큰 법률사무소에서 어시스턴트로 일을 하고 있지만, 9년째 사법시험에 떨어지고 현재 10년째 수험생활 중.(그렇게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데에는 아버지와 얽힌 아픈 추억이 있다. 그 일은 사키의 성격과 인생에 중요한 역할이자 의미를 지닌다.)
척 봐도 제법 비싸보이는 고급맨션에 살고 있으나 알고보니 그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임대료 반값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음.
꽤나 결벽증세가 있어서 냉장고에는 야채나 채소 같은 것도 락앤락통에 종류별로 차곡차곡 넣어 보관, 집은 무진장 깨끗하고, 정해진 규칙은 목에 칼을 들이대도 지키는 완고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먹기 위해 해마다 와인을 사는데 그게 9병 째. (그러나 합격하지 못했으므로 9년째 전시중)
불의를 참지 못하고, 분위기가 험하든 말든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한다.
삶에 대한 철학이랄까 소신이 너무나 뚜렷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사고로 돌아가시고, 현재 투병 중인 어머니가 있지만 3회 만에 유명을 달리 한다.



주인공 오기와라 사키의 프로필을 정리해보면 대충 위와 같다.
굉장한 외곬 스타일이지만 사실 일드 좀 본 사람이라면 이런 캐릭터에는 익숙하다. 상황조건은 다르지만 <파견의 품격>의 오오마에 하루코가 그랬고, <너는 펫>의 이와야 스미레가 그랬으며, 장르를 넓혀가면 이런 캐릭터는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왔다.(남성 캐릭터 중에도 이런 스타일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캐릭터는 이제 좋게 말해 친근하고, 나쁘게 말하면 식상한 캐릭터가 되었다. 첫 회를 봤을 때 이 흔한 캐릭터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걱정이 되었는데, 티나게 상투적이면서도 묘하게 재미있어서 한 회 한 회 기다리게 된다.

이야기는 오기와라 사키가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하스미(오사베) 리코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오기와라는 마트에 갔다가 치즈 판매 코너에서 치즈 냄새를 맡으며 황홀경에 빠져있다. 하지만 치즈를 살 수는 없다. 시험에 붙기 전까지는 먹지 않기로 맹세했으므로. 그런 오기와라 앞에서 약올리듯이 치즈를 카트로 옮기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 여인이 바로 리코다. 리코는 한 눈에 사키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며 반가워 하지만 사키는 달가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위 좋은 리코는 그런 사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현재 매우 행복한 주부라는 것을 지나치게 어필하면서 사키의 집까지 따라 간다. 그렇게 사키와 리코의 인연이 시작되고, 연하 애인이자 현재 자신의 상사인 마사토, 얼떨결에(혹은 의도적으로?) 이들과 얽히게 된 미츠히코(일명 코짱)이 합세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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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22:29 2010/02/19 22:29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6점
김주하 / 랜덤하우스 코리아

지난 연말 시상식은 하나도 안 챙겨봤지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조각영상들 덕분에 분위기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중 MBC 연기대상 호명 때 고현정이 보여준 비담과의 유쾌한 하이파이브 만큼 눈길을 끄는 영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라디오 부문 시상자로 나선 김주하였다. 깔끔한 블랙 정장을 입고 무대 위로 걸어나와 마이크 앞에 서서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김주하입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순간 나와 방청객들은 환호와 놀라움을 표시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묵직하게 퍼지는 저음은 새삼 대중을 끌어들였고, 분위기를 한껏 달구면서도 묘하게 진정시켰다. 방청객의 반응에 환한 웃음으로 답한 그녀는 화려하게 치장한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을 만큼 돋보였다. 물론 그 미모도 한몫했겠지만 목소리(그러니까 발성과 톤)의 힘이란 참 대단하구나를 느꼈다. 괜히 앵커가 아니구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사두었지만 에피소드 몇 개만 골라읽고는 던져놓아서 다른 책들과 함께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책이다. 갑자기 읽게 된 데에는 지난 연말시상식의 영향도 10분의 1정도는 있겠지만, 얼마전에 방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발굴(?)된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층층이 쌓아두는 게 아니라 책장에 착착 끼워놓으면 보기에도 좋지만, 읽기에도 좋다는 걸 깨달았달까.-ㅂ- 정리가 없었다면, 그리고 새 책장을 사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다른 책들 사이에서 잠자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계기가 있다면 언제든 꺼내 읽겠지만, 너무 안 쪽에 쌓여있어서 읽으려면 굉장히 귀찮았을 것이다.)

총 2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책은 상당 부분이  기자 시절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 치중한다. '이 뉴스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저 뉴스는 저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방송은 이렇게 나갔습니다.'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그래서 앞쪽은 한 꼭지의 뉴스를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느낌을, 그리고 뒤에는 방송용 스크립트가 나온다. 이 책의 부제가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인 것을 생각하면 그에 제법 충실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겠다. 하지만 독자로서의 내 기대에는 조금 어긋난 감이 없지 않은데, 사실 나는 김주하의 좀 더 깊은 내면의 얘기를 기대했었다. 그렇다고 폭로성 사생활을 끄집어냈다면 이 쪽에서 사양이겠지만, 뭐랄까 그녀의 전체 삶을 좀 더 크고 철학적으로 다루었으면 했는데, 책이 전반적으로 입사 후의 커리어에 맞춰져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 입사 후의 그녀의 활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제보를 쫓아 위험하고 급박학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고, 감정조절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늘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며, 단 60여 초의 화면을 위해 어느 때는 목숨까지 내놓고 덤벼들어야 하는 상황은 굉장한 흥분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상세 내용의 차이일 뿐, 사실 이 계통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어서 큰 차별성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알같은 재미로 읽는 이에게 흡족함을 안겨 주는 에피소드가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손석희 관련 에피소드다. 소제목마저 흥미진진한 '나를 키운 건 8할이 손석희라는 악몽이었다'가 아닌가.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책의 판매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현재 한국에서 손석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손석희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굉장하다. 정계에서도 끊임없이 손석희를 영입하려고 안달인 것을 이러저리 들려오는 풍문으로 접한다.(물론 석희옹께서는 딱 부러지게 거절하시고 계시지만.)  그러니 김주하와 손석희가 만났을 때 벌어질 일들이 얼마나 궁금하겠냐고. 그래서 책 사자마자 읽은 것도 바로 이 에피소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손석희는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한 사람이어서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는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띤다. 그런 그에게 원고 쓰는 법을 배우고, 프롬프터 없이 멘트를 정리하는 훈련을 하며 그를 따라가려 애썼으니 지금이야 그녀 자신도 프로라는 소리를 듣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칭찬은 한마디도 없이 내리 욕만 했다는 글에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얼마나 엄했으면 강심장이라고 소문난 김주하가 뉴스 도중에 울기까지 했을까. 하지만 그녀에게 '싹수가 보이니까 매정하게 구는 거다'라고 말하며 고기를 사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큰해지는 건, 일 잘하는 사수에게 마침내 인정 받았을때의 환희가 나에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연말 시상식의 기억으로 돌아가보자. 김주하는 수상자 발표에 앞서 "12년 전 이 분께 원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에피소드가 기억나서 나는 또 한번 시큰했다. 그 한마디에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손석희에 대한 모든 감사와 존경이 다 담긴 것 같아서.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키운 8할을 손석희라고 했으니 만큼 그 시상은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독자로서는 마치 성장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

2004년 아테네에서 김주하
음,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 외에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시마네 현 관련 독도 에피소드와 월드컵, 그리고 김주하를 두고 여신이라는 표현까지 쓰게 만든 아테네 올림픽 에피소드가 있다. 특히 아테네 올림픽 때 김주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는데(연예인 못지 않은 팬덤에 무서웠던 적도;;;), 다소 딱딱하고 점잖은 정장을 주로 입는 보도인이 올림픽 시즌에 맞춰 그 나라와 어울리는 복장으로 현장감을 전한 것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그 의상을 어떻게 입게 됐는지, 그 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테네 올림픽 당시 한달간 현장에 있었던 이야기를 읽어보니 당시의 방송이 새롭께 느껴졌다. 이 밖에 방송계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생각들, 황우석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PD수첩과 MBC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 한번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가장 뭉클했던 건 맨 마지막 에피소드인데, 자신의 어려운 처지가 알려져서 도움 받는 것보다 자신과 자신 집안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중요했던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이 아팠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쳐서도 안 되지만 반면에 누군가를 쉽게 동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참 어렵다. 지속적이지 않은 관심은 오히려 무관심만 못 하다는 고아원 아이들의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결국 꾸준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을 통해 유추한다면 김주하는 굉장한 일벌레인 듯하다.(거야 뭐 이쪽 계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 보이지만) 끈기도 대단하고 열정도 넘친다. 그렇지만 불 같은 성격이라기보다 굳이 비유하자면 쇠가 아닐까 하는데, 달구어진 쇠를 담금질 할 수록 강해지는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받았다. 그렇다고 책을 읽고 김주하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다만, 피상적으로나마 그녀가 하고 있는 일, 업계 상황, 방송에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애환, 그리고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는 데 의의를 둔다. 머릿말에서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원래대로 책을 마흔 이후에 냈다면 내용면에서도 생각면에서도 좀 더 깊이 있고 알차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현 정부 들어서 각종 논란에 자주 휘말려서 꽤나 지쳤을 테고, 어떤 면에서는 실망한 부분도 있지만, 꾸준히 자신의 일에 정진해서 마흔이 넘고 쉰이 되어도 보도인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한다.


덧, 보기엔 부잣집 딸내미 같은 이미지에 뭔가 백도 빵빵할 것 같은데 사실은 정반대였다는 것과, 어떻게든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 그만두고  좀 더 입사율이 높은 대학에 다시 시험쳐 들어간 것을 보면 사람은 역시 절박한 목표가 있어야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
2010/02/18 19:20 2010/02/18 19:20

방정리 했으니까 인증사진을 올려야......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 방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록으로 남겨둔다. 지난 게시물 The Room이나 The Room 2과 비교해서 보면 방이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비교다운 비교를 하기위해서는 같은 각도에서 방 전체모습을 다 찍어서 늘어놓고 비교, 대조해야 완벽하겠지만, 처음에 방 사진을 찍을 때는 그럴 의도도 없었거니와 방 전체를 다 찍기엔 지난 날 내 방의 모습이 '억'소리 나오게 드럽고 지저분하고 엽기적이었던 관계로 그건 도저히 무리. (내 얼굴에 침뱉는 짓이잖아? -_-;) 부분 사진 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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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책상이 장롱 옆에 있었다. 그걸 창문 쪽으로 옮기고 책장을 한 개 더 짜넣었다. 장롱 바로 옆에 있는 저 책장이 거의 100자에 2미터 짜리인데,  저 책장에도 이중으로 책을 끼워넣어야 겨우 책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저 많은 책들이 바닥에 그냥 쌓아져 있었으니 '책으로 벽 쌓는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나는 방 주인이라 괜찮을 수 있었지만 사실 타인이 보기에 심하게 보기 싫었을 것이다. 책장 맨 위에는 원래 인형들을 올려놓았는데 책 정리 공간이 부족한 관계로 인형들은 퇴출되고 요즘은 덜 보는 책들 위주로 올려놓았다. 가령 '퇴마록'이나 '신비소설 무' 같은 책들. 장롱 위에는 전집 박스 세트를 올려두었는데, 이건 자주 안 본다기보다 박스 포장돼있으니까 올려놓기 유용해서 올려둔 것 뿐이다. 앤, 셜록홈즈, 불의 검, 비천무, 손자병법 순이다. 저거 손쉽게 꺼내보려고 원목으로 된 사다리 겸 의자도 샀다. 내 방 의자는 바퀴 달린 회전의자라 잘못 올라가면 미끄러져서 척추다치기 십상이므로. 아, 그리고 예전에 장롱 안과 서랍에도 책이 들어있다고 했는데, 여전히 반 정도는 유효하다. 공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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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과 침대 사이에 공간박스를 채워넣었다. 여기엔 주로 학습서랑 수험서가 배치되어 있다. 영어 관련 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정리하다보니 반수 이상이 지나치게 깨끗해서 공부는 안하고 책만 들입다 사재기한 것 같아서 부끄럽다. 그 옆으로는 CD장. 그치만 아직도 책상서랍에는 200여 개의 CD가 웅크리고 있다. -_ㅠ 그리고 오른 쪽 사진은 장롱 앞에 놓아둔 3단짜리 공간박스인데(덕분에 장롱 한쪽 문은 여전히 반밖에 못 연다), 여기는 DVD들을 정리했다. 제목 보이게 제대로 넣으면 다 안 들어가서 눕혀서 넣었다.-_-; 덕분에 아웃케이스가 없는 아래쪽 저가 DVD들은 보고 싶은 거 찾으려면 다 뒤져야 하는 매우 귀찮은 수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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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창문 아래 쪽(지금 책상 자리)에 있던 책장은 거실로 나갔다. 여기는 영어 원서랑 일본어 원서, 잡지들이 주로 배치. 맨 위에는 역시 놓기 좋은 박스세트 전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삼국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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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있던 탁자 위에는 간이 책꽂이 만들어서 잡지들을 꽂아두었다. 일본 잡지 다빈치랑, 씨네21, 필름2.0, 시사인, 폐간된 드라마틱 등등이 꽂혀있다. 순서는 무시. 저기 앞에 연필꽂이 중 가장 왼 쪽에 있는 건 5학년 때 이천 도자기 공장 견학갔을 때 직접 그려서 구운 것이다. 예술적 재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초딩스러운 그림이다. 풉-ㅂ- 맨 오른쪽에 있는 건 무려 H.O.T. 캐릭터 컵 되시겠다. 우후후. 3집때가 아닌가 싶다. 아마 '빛' 활동할 때 나왔던 컵인 듯. 집에 저거 말고도 캐릭터 상품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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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손을 댈 수 없는 위엄을 자랑하는 골방 책장.-_- 처음 이 책장을 짜맞출 때는 나름대로 깨끗하게 정리했었는데, 고작 4년 만에 저 지경. 책장 무너질까봐 좀 걱정된다. 천장 쪽까지 합쳐서 위로 세 칸은 만화 전용. 그 밑에 두 칸은 일반도서, 맨 아랫칸은 잡지다. 사실 이것말고도 전축 위에 전시된 전집이라든가 큰방에 안 쓰는 테레비 다이(...) 위에 널부러져있는 잡지, 분철만화 등등이 나도 좀 정리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내 방 하나 정리하는 것도 버거워서 그것들은 무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방 정리하면서 느낀 건 '굿바이 이사'랄까. 이사 가려면 이 책들을 처분하든지, 아니면 돈 많이 벌어서 이사업체에 웃돈 더 주는 걸 안 아깝게 여기든지, 아니면 이 집에 뼈를 묻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0/02/16 15:21 2010/02/16 15:21
(...전략)

 우리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아직 밤이 되기는 일러, 손님은 우리와 그 사람들뿐이었다. 아마 남자는 이십대 후반, 여자는 이십대 중반쯤, 둘 다 인물도 괜찮고, 도회적이며 깔끔한 옷차림을 한, 아주 스마트한 분위기의 커플이었다.

 와인을 고르고, 음식을 주문하고, 그것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들었다기보다는 저절로 들려 왔지만), '이 두 사람은 깊은 사이가 되기 직전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내용적으로는 극히 평범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목소리의 톤으로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도 일단은 명색이 소설가이니, 그쯤의 남녀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남자는 '슬슬 꼬셔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고, 여자도 '그냥 넘어가 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잘 되면 식사 후 어딘가의 침대로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테이블 한가운데 페로몬의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 쪽은 결혼한 지 30년이나 된 탓에, 과연 페로몬 같은 것은 그다지 떠돌지 않았다. 아무튼 행복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란 것은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즐겁다.

 그러나 그런 약속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분위기도 프리모 피어트가 나왔을 때 글자 그대로 운산무소(雲散霧消)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츠르릅 츠르르릅!' 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파스타를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압도적인 소리였다. 계절이 바뀔 때 한번, 지옥의 대문이 열렸다 닫혀질 때 한번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 그 소리에 나도 얼어붙었고, 아내도 얼어붙었고, 웨이터도, 소믈리에도 얼어붙었다. 맞은편 여자도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숨을 삼키고, 모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인 남자만은 무심하게, '츠르릅, 츠르르릅' 하고 너무나도 행복한 듯이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그 커플은 그 후 어떤 운명을 거치게 되었을까. 지금도 가끔씩 걱정이 된다.



<무라카미 라디오> '리스토란테의 밤'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권남희 옮김, 까치 




하루키에게 시큰둥하던 나를 관심 급상승하게 만든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중고샵에서 별 생각 없이 산 책이었을 거다. 저 부분을 읽고 정말로 미친 듯이 웃어재끼며 데굴데굴 굴렀다. 눈물까지 나왔다. 따지고 보면 웃기려고 작정하고 과장되게 쓴 글도 아닌데 왜 그렇게 웃어댔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저 글을 읽는 순간, 저 시트콤 같은 상황이, 그리고 담담하게 할 말 다 하는 하루키의 모습이(정확히는 프로필 사진 속의 어쩐지 뚱한 하루키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말로 압도적인 소리였다. 계절이 바뀔 때 한번, 지옥의 대문이 열렸다 닫혀질 때 한번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 이 부분이 압권이다. 원서에는 '혼또니(정말로)'가 두번이나 반복돼 있을 정도로 '츠르릅' 소리의 심각성(?) 이 폭발하는 지점이지만 나는 웃음이 폭발했다. 그 후에는 이런 사소한 거(?)에 그렇게 포복절도하며 웃는 내가 웃겨서 웃고, 생각하니까 계속 웃기고, 그래서 또 웃고...... 하여간 혼자서 키들키들 얼마나 웃었던지 모른다. 지금도 저걸 읽으면 괜히 입꼬리가 스르르 말리면서 또 웃게 된다. 씰룩씰룩. 가만히 있질 못한다.

때때로 소설보다 에세이 쪽이 더 정이 가는 작가들이 있다. 예를 들면 김영하라든가. 하루키도 내게는 그런 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초년생 때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은 어쩐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물론 요즘은 그것도 아니지만), 에세이는 뭘 읽어도 다 재미있다. <무라카미 라디오>를 시작으로 국내 출시된 에세이들은 거의 전부 긁어모아댔다. 모으는 김에 소설이랑 원서도 사고. 뭔가에 한번 꽂히면 콜렉션 만드는 병적인 집착도 한몫했지만, 하여간 하루키의 에세이들이 은근히 내 취향이라 정신 차리고 보면 장바구니 고고!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책 정리를 하고보니 하루키 책만 번역본, 원서 합해 40권이 넘었다. 크악. 언제 이렇게.......;;;;;

작가들은 참 신기하다. 그러니까...음....대부분의 작가는 에세이도 좋은 편인데 그게 참 신기하다는 거다.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의 공력이란 그 정도는 기본인건가?+_+ (에세이보다 소설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이것도 취향에 따라 나뉜다) 붓가는 대로 술술 풀어내는 글 같은데도 어쩜 이렇게 깔끔하고 재미나게 군더더기 없는 글이 많은지. :-) 그 짧다면 짧은 글에서 오만 가지 생각을 파생시키는 것을 보면 과연 글쟁이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거? (이따금 블로거들 중에서도 신변잡기가 아니라 에세이/수필 같은 글을 쓰시는 분을 보면 참 부럽다. 나야 신변잡기도 좋아하지만. 헤헤)

그건 그렇고, 위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도 저 커플이 어쩐지 신경 쓰이는 걸? 과연 그들의 미래는? 사실 99%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도 1%의 비호감 때문에 쫑나는 게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걸 생각할 때 어째 내가 다 걱정이 된다. 예전에 <올드미스 다이어리>였나. 오윤아가 소개팅을 했는데 남자 쪽이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외모 좋고 다 좋아서 주변에서 잘 해보라고 막 부추기던 에피소드가 있었다.(정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오윤아가 그 남자에게 작업을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어느 순간 발견하고 말았다. 그 남자 귓속에 든 엄청난 귀지들을.(오.마이.갓!) 심지어 바깥까지 튀어나온 귀지들에 식겁을 하면서 미자와 지영에게 얘기했는데, 그 정도 조건이면 귀지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해서 참으려고 수없이 노력해봤지만, 결국 그게 안 돼서 남자에게 귀 좀 파라고 소리치면서 둘의 관계가 쫑나는 에피소드였다. 위의 두 커플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위의 두 사람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아니지, 혹시 두 사람의 경우 스파게티만 안 먹으면 해결될지도!!! (평생 면 종류는 안 먹는 거지! 면 음식이 발달한 일본에서 그건 좀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근데 만약에 다른 음식도 쩝쩝쩝, 우걱우걱, 추르릅 이렇게 (하루키 표현에 따르자면) 남들이 다 얼어붙을 정도의 지옥문 열리는 소리에 맞먹는 효과음을 내면서 먹으면.......? 아아, 더 이상 상상하지 말자. 그냥 두 분이 알아서 하셔야겠다.;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글은 단순하게 짧고, 전하는 메시지는 콩트만큼이나 단촐하다. 음식, 패션, 음악, 사진 등등... 하루키가 즐겁게 쓸만한 소재들. 제목을 '무라카미 라디오'라고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른한 잠을 쫓아내는 데는 명수인, 잡담 좋아하는 DJ처럼 그는 시종 수다스럽게 떠든다. 아기자기한 즐거움이다.
2010/02/02 22:00 2010/02/02 22:00
하늘은 붉은 강가 1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학산문화사(만화)


판타스틱 2월호를 검색하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문구 발견.

"하늘은 붉은 강가 애장판" (두둥) <- 이거슨... 이거슨... 지름신 소환 문구인가요?

<하늘은 붉은 강가>는 평범한 10대소녀가 시공을 초월하여 날아간 기원전 고대제국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서 도입 부분부터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장편 역사 로망 되시겠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한 여고생의 파란만장한 체험들은 반복되는 현실의 무료함에 지쳐가던 소녀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함으로써 짜릿한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하였고, 덕분에 만화는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인기가 엄청났었다. 만화가 한창 연재되던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는 해적판(판타스틱 러버)으로 먼저 소개되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꽃보다 남자'의 해적판(오렌지 보이)과  쌍벽을 이룰 정도의 인기를 얻었던 걸로 기억한다.(두 작품 다 다른 해적판 제목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난 당시엔 일본만화엔 관심이 없어서 잘 보지 않았지만, 주변에 열혈 만화 동지(?)들의 추천목록에서 이 만화가 빠진 적은 없었다. 당시 그녀들의 일본만화 추천목록을 떠올려보자면 오렌지보이(꽃보다 남자), 판타스틱 러버(하늘은 붉은 강가), 환상의 프리마돈나(스완), 스타 논스톱(아미 논스톱), 내사랑 앨리스(나의 지구를 지켜줘). 바사라, 월광천녀 등등이 있었다. (스타 논스톱은 본 적은 없는데 제목만 엄청 들어봤음;)

하지만 정작 내가 <하늘은 붉은 강가>를 읽은 건, 남들이 이 만화의 해적판에 열광하던 때를 지나 정식출판 만화도 완결이 다 되어 나올 때 쯤이었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건 아마도 책이든 영화든 만화든 남들이 너무 찬양을 하면 왠지 더 내키지 않아 하는 나의 청개구리 심보가 크게 작용을 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원래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나서 읽었는데도 어쩜 그렇게 재미있던지...ㅠ_ㅠ (이 만화는 10대에 국한된 만화가 아니었던가?) 그 판타지스러운 상황 설정,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애정행각에 므흣므흣 손발 오그려가면서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건, 전쟁과 암투, 관계와 철학, 사실과 허구 속에서 독자들(특히 소녀들)이 열광하는 지점을 제대로 알고 있던 작가의 이야기 풀이 능력이겠지.

지금은 본 지가 오래 되어 큰 줄거리와 얼개 정도만 기억이 나는지라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리고 다시 보면 감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만화 참 재미있게 봤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문고본으로 새로 출간되는 걸 보고 우리나라도 애장판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좀 늦긴 했지만 나오긴 나오는구나. 사실 오랫동안 품절인 데 반해 인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서 중고책방에서도 꽤 고가에 거래됐던 걸 생각하면 이번 애장판 출시는 반가운 소식이다. (돈이 비싸긴 하다만.-_-; 근데 이거 나중에 박스세트로 나오는 거 아냐? 물론 나온다고 해도 한꺼번에 사긴 무리지만;;;)

아, 그나저나 일본에선 28권(완결편)에 포함된 번외편 후로도 외전 몇 권이 더 나온 것 같던데(심지어 지난 달에도 발매된 것도 있음) 이번 애장판 발매하면서 그것도 다 내주는지 모르겠다. 일단 홍보 자료에 의하면 무삭제 편집이라니까 본편은 원전대로 나올 것 같은데... 흐음;(방금 검색하다가 컬러페이지 복원이 안 됐다는 정보를 접함. 헐~~ 그게 무슨 무삭제냐아아아!!! 잔인하거나 야한 장면 몇 개 살려주면 무삭제냐아아? 앙?? 으으~ -_-) 그래도 사긴 사겠지.....? (슬램덩크 사던 시절 생각하면 못 살 것도 없다. 꾸역꾸역 한 권씩 한 권씩!!! 캬하하하하...ㅠㅠ)

요즘 간간이 세계사 책이랑 지도 보면서 기원전 고대왕국(특히 바빌로니아-히타이트, 이집트, 헤브라이 시대와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과정)에 특히 관심가지던 차였는데, 이 만화의 배경이 그 시대에 속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덧 1) 표지는 별로다. 신일숙 환상 문학 전집이랑 같은 디자인인 것 같은데... 우선 만화적 매력이 없잖아. 이왕이면 예쁜 그림으로 전면 배치해주지. ㅠㅠ 물론 일본 문고본보다는 훨씬 낫지만. 일본 문고본 표지는...오우....노노!!

덧 2) 애장판 내주는 김에 <푸른 봉인>(해적판:봉인의 비밀)도 내달라!!!!!!!!!  난 사실 시노하라 치에 작품을 '봉인의 비밀'부터 읽어서 그런가 이쪽도 만만치 않게 애정도가 높다. 여주인공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_- 현무 좋아했는데...ㅠㅠ

덧 3) <하늘은 붉은 강가>를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국내 작품이 있는데, 바로 김동화의 <아카시아>다. 아마 비슷한 연대와 나라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몇 년 전부터 이거 구하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참 구하기가 힘드네. 나중에 연장·연결해서 연재했던 <천년사랑 아카시아>는 구하기 쉽지만, 개인적으로 그 만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로 그림체 변형을 도저히 못참겠어서. -_- 내 기억으로 그때 연재하던 잡지의 타겟층이 초·중등생이어서 그에 맞춘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하여간 뒷부분 내용도 별로였다. ㅠㅠ 그냥 <아카시아>가 좋은데. 아카시아, 리우스, 페드라, 라메세스...... >_< (페드라는 이름에서도 사악한 기가 흘러 넘쳐~~~) 그나저나 모 사이트에서 상태 '중' 정도인데 5권 5만원에 거래되는 거 보고 깜작 놀랐던 기억이...;;;;;
2010/02/02 21:32 2010/02/02 21:32
성녀의 구제
7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


최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확실히 '어떻게'에 집중되어 있다. '누가'그랬는지는 소설 머리에 충분히 암시를 주고, '왜'에 대한 단서는 중간중간 흩뿌려 놓는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트릭을 추리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독자가 소설 속 해결사들과 같은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는 효과를 주지만, 방심하면 오히려 작가의 의도에 쉽게 휘말릴 수 있기도 하다. 그렇게 포커스를 맞춰놓을 테니까. [성녀의 구제]를 읽으면서 거기에 당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엔 작가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앞질러 가고 싶었달까(...) 그래서인지 집중력이 높아져서 순식간에 책 한권이 끝나긴 했다.

핏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요시다카는 아야네와 결혼하기에 앞서 조건을 달아둔다. 1년 내에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건.(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쌍방합의에 의한 계약결혼은 봤지만 그것도 아닌데 결혼을 하면서 미리 이혼조건을 걸어둔다니 뭐냐 이 남자...;;;)  그걸 받아들이는 여자는 또 뭔가? 1년 내라면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을거라는 생각과 설사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그 때문에 헤어지지는 못할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만큼 요시다카가 좋았나? 아무튼 아야네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시간은 순식간에 1년이 흐른다. 소설은 그 1년이 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내심 뜨악한 건 이 남자가 가진 결혼에 대한 관념(남자의 표현대로라면 '신념')이다.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이혼이라니...;;; 결혼이란 무릇 사랑을 기반으로 평생의 동반자와 꾸리는 삶 아니던가?(교과서적인 정의라 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결혼해서 노력했는데도 아이가 안 생겨서 가정 불화가 이어지고, 더 이상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는 설정은 많이 봐왔어도, 이런 식으로 조건까지 걸어두고 결혼을 한다는 설정은 처음 본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결혼 생활 자체도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하는 요시다카에게 '아이'란 남녀의 결혼으로 태어난 축복받은 생명체가 아니라 그토록 강조하던 '라이프 플랜'의 일환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만으로는 가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요시다카는 부부가 아이를 낳아 아빠와 엄마가 되지 못하면 그 부부는 평생의 반려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오마이갓!

그런 요시다카가 죽어버린다. 발견자는 아야네의 제자이자 요시다카의 숨은 애인인 히로미. 독자에게 제시된 단서로는 아야네가 유력한 용의자다. 자,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죽였는냐인데...... 여기서부터 독자는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형사 구사나기와 우쓰미 가오루, 그리고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 [용의자 X의 헌신]이나 [탐정 갈릴레오], 혹은 [예지몽]을 보았다면 이미 익숙한 이름들일 테다. 물론 우쓰미는 첫등장이지만 이미 드라마와 영화를 본 나로서는 익숙하고도 남는 인물. 소위 '갈릴레오 시리즈'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선 '용의자 X의 헌신 시리즈'라 불리는 모양이지만) 제목에 비하면 설정 자체가 호기심이 동한다거나 호감(?)이 가는 게 아니어서 처음엔 조금 시큰둥하게 읽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답게 읽힘새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좋아서 지루할 틈 없이 진도가 쑥쑥 나간다. 거기다 내가 유가와를 비롯한 갈릴레오 시리즈의 인물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재미는 느낄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이미 영상화된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드라마/영화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다보니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1. 우쓰미 가오루의 경우, 드라마/영화에서는 열정은 넘치나 논리와 경험이 부족한 신출내기 형사로 가끔 귀엽기도 하고 어설픈, 그래서 더 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책에서는 신입이지만 당차고 관찰력과 감이 뛰어나며 고집이 센 캐릭터다. 좀 더 쿨한 커리어우먼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드라마의 그녀를 생각한다면 언뜻 매치시키기 힘들다. 만약 시바사키 코우가 책 속 캐릭터 그대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무... 무섭다. 그 흑단 같은 머릿발 휘날리며 시니컬하게 사건 수사하고, 얼굴의 1/3은 됨직한 큰 눈으로 범인을 노려본다고 생각하면...... 으...으스스해.

2. 구사나기는 영상에서가 좀 더 느물느물하고 베테랑인 느낌이다. 책에서는 진지하고 순수한 면이 더 부각된다. 그래서 아야네에게 한눈에 빠져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부분에서는 좀 억지스럽기도 했는데, 한눈에 반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3. 우리의 유가와 교수! 우리나라 출판 시기가 좀 꼬여서 그렇지 원전은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다음으로 [성녀의 구제]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유가와의 캐릭터는 흔쾌히 사건수사에 협조했던 전작들이 아닌 [용의자 X의 헌신]의 마지막에 맞춰져 있다. 덕분에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피하려하고 따라서 구사나기와의 관계도 조금은 소원해진 상태인데, 우쓰미의 깜찍한 계략 내지 부탁으로 사건에 얽히게 된다.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라 그런지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지만 사람 약 살살 올려서 뭔가를 실토하게 만드는 재주는 여전해서 은근 귀여웠다. 교수님~


내용을 파고들어가보면, 개인적으로 [성녀의 구제]는 전작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에 그친다. 앞서도 말했지만 설정에서 이미 기대가 꺾였고, 반전에 이르렀을 땐 트릭의 전부는 아니어도 핵심을 파악해버려서 김이 새버렸달까. 숨겨진 관계 설정도 어째 좀 식상하고. 그래도 제목인 '성녀의 구제'가 가진 의미 하나 만큼은 나름대로 높은 점수! '성녀'와 '구제'가 각각 중의적으로 쓰이면서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부분을 노렸는지 책의 앞부분에 인쇄된 자애로운 성녀의 사진이 뒤에서는 흑백반전이 되어 어쩐지 흉하고 무섭게 변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백마산장 살인사건] 리뷰의 끄트머리에 이런 글을 써놓았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다보면 가끔 드는 생각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자'를 엄청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백야행>이나 <환야>도 그렇고 <방과 후>나 <회랑정 살인사건>때도 그렇고, "여자란 무서운 존재야", "여자는 교활해", "여자의 감성은 참 이상해" "여자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야" 라는 걸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악녀 캐릭터를 부각시고, 때로는 평범한 여성이 보이는 의외의 행동을 묘사하며, 또 때로는 매우 안타까운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작품을 통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자신이 수집한 사례를 작품에서 선보이거나. 그리고는 그런 여자에게 휘둘리는 남자들을 바보로 만들거나 불쌍하게 만들어 동정을 유발하기도 하고, 원인은 짐승 같은 남자에게 있다며 동족 혐오의 정서를 드러내기도 한다. 어쨌든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는데(초기 작품일수록 더), 그래서 남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도 주체는 여자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좀 묘한 기분이 든다.

[성녀의 구제]를 읽으면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는 아예 인물의 대사를 빌어 직접적으로 표현을 한다. 여자란 참 무서운 존재라고. 모순적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생각난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내가 빌려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몇 권 읽고 "이 작가는 왠지 여자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거나 어린 시절에 엄마의 사랑에 굶주렸던 게 아닌가 싶어."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여쭤보았는데, 여주인공의 행동묘사나 대사에서 작가의 적의가 느껴질 때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냥 흘려들은 이야긴데 이 책을 읽으며 왠지 그 생각이 났다. 아야네가 무섭도록 슬프고 공허했다.



덧)
+ 괜히 웃음났던 장면 : 우쓰미 가오루가 전철에서 듣는 노래는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곡이었다. 드라마/영화에서 유가와 마나부 역을 맡았던 배우가 '후쿠야마 마사하루'였기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집어넣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거렸다.

++ 유가와, 우쓰미 가오루, 구사나기, 데이도 대학을 '유카와', '우츠미 카오루', '쿠사나기', 테이토 대학'이라고 고치고 싶은 충동! -_- 하긴 뭐 그렇게 따지면 먼저 히가시노 게이고부터 '히가시노 케이고'로 바꿔야겠지만. 흣.
2010/01/24 03:13 2010/01/24 03:13

연말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감상적인 것은 망년회 같은 연말 모임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는 새 다이어리 이벤트와 오프라인 가판대가 아닐까. 올해도 여지없이 새롭고도 어딘가 비슷한 다이어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작년에 쓴 굳건한(!) 다짐이 무색하게도, 해마다 그래왔듯이 내 2009년 다이어리는 1~3월 빼고는 휑뎅그레하니 쓸쓸하게 빈칸을 자랑한다.-_-; 그래서 2010년은 아예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지 말아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하자니 2010년을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데다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해서, 그렇다면 2010년은 죽어도 다이어리를 쓸 수밖에 없게끔 비싼 다이어리를 사는 거야, 라는 황당한 계획을 세웠다? (웅항항하항항>_<) ...라기보다  좀 더 계획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프랭클린플래너라는 시간관리 도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사실 여태까지도 다이어리를 플래너(아니 스케쥴러) 용도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플래너나 다이어리나 나한텐 거기서 거기지만서도, 일단은 프랭클린 하면 비싸고도 계획적인 시간관리 도구이니, 돈 아까워서라도 자주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나름대로 세부적인 항목들이 조금은 계획적인 삶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걸로 결정했다. 일단 3년을 목표로.

프랭클린은 일단 바인더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일반 링 바인더와 트윈링 두 가지가 있는데, 트윈링 쪽이 훨씬 가볍고 간편하게 쓸 수 있긴 하지만 속지 추가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 링바인더는 개성에 따른 속지추가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무겁고 크기가 조금 큰게 단점. 휴학하고 회사 다닐 때 이후로 이런 식의 링바인더는 거추장스러워서 안 썼는데, 이번엔 어쩐지 이쪽이 땡겨서 링으로 선택하고 타입은 CEO로 결정. 클래식과 컴팩은 너무 크고, 포켓은 크기가 애매하게 작고, 가장 널리 쓰이는 CEO 타입이 나한테도 제격인 듯 했다. 바인더는 예전에 쓰던 MCM바인더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좀 크고 두꺼워서 새로 샀다. 온라인 샵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교보 핫트랙스 가서 실물들을 봤는데, 확실히 온라인 쪽이 훨씬 종류가 많긴 했다. 원래는 온라인에서 이것저것 할인 받아 좀 저렴하게 살려고 했는데, 대체 뭐에 씌었는지 그냥 오프라인에서 급작스럽게 사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별로 살 생각 없던 '엘도라 옐로우'를... -_-; 매장언니도 되게 불친절했는데 왜 거기서 샀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_-; ('단발머리 여직원 뿡=33' 이라고 다이어리 산 그날 일기 썼음;ㅋ) '엘도라 옐로우'는 돈은 거의 십 만원 가까이 하는 천연가죽 제품인데, 겉으로만 봐서는 천연가죽 같지도, 비싸보이지도, 게다가 어딘지 때 타보이는 그런 바인더 되시겠다. 허허. (심지어 실장님은 나보고 한 3년 쓴 거냐고 물어봤다. ㅠㅠ) 그런데 왜 샀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조명 밑에서는 예뻐보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뭐 나는 노란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손때 타면 어쩐지 황금색 비스무리하게 더 예뻐질 것 같기도 했고(응?) 이래저래 결론은 뭐에 씌어서라고 해야하나?

프랭클린 플래너 2010

엘도라 옐로우


더 보시겠습니까?



2009/12/20 20:44 2009/12/20 20:44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8점
고수민 지음
은행나무


'이런 식의 어학공부에 관한 책은 남부럽지 않게 읽어봤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실력은 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누군가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게 하는 혼잣말 같은 건데, 사실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읽기만 하고 제대로 (따라)하지 않으니까. 늘 그렇지만 이런 식의 방법서라든가 내용은 좀 다르지만 (소위) 자기 계발서 같은 것들은 읽을 당시에는 의욕이 불끈불끈 샘솟지만 책에서 손을 놓는 순간, 순식간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면서 그때부터는 분석의 단계. 이 사람은 자기 잘난 척만 한다는 둥, 이 사람은 원론적인 얘기만 잔뜩 한다는 둥, 이 사람은 너무 무식한 방법을 말하고 있다는 둥,...-_-;;;  긍정적일 경우에도 저자를 믿고 따라하는 건 길어봐야 작심삼일이요, 짧으면 작심삼초도 허다하다. 결국 실제로 공부하는 방법은 결국 원래 해오던대로가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다름 아니라 '내 생애 마지막 영어 공부법'이란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저자인 고수민 씨 역시 이런 식으로 영어공부방법서란 방법서는 남부럽지 않게 읽어본 사람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왜 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 중에 하나다. 물론 지금은 책을 냈으니 반대의 입장이 되버렸지만, 공통분모는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자신있기에 '내 생애 마지막...'이란 말을 달았나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책을 펼쳐드니 영어공부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영어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한글만 빼곡하다. 얼래? 특이하긴 하네?

책은 아주 주변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가장 처음에 하는 얘기가 다중언어 구사자의 허상(?)에 관한 내용인데, 이런 얘기를 누군가 이렇게 콕 집어서 얘기해준다는 게 한편으로 참신했다. 다중언어 구사자란 모국어 외에 다수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이민 1세대, 1.5세대, 그리고 2세대 이후로 나누어서 얘기한다. 1세대는 외국어 실력은 좀 모자라지만 모국어에 대한 기반이 확실히 잡혀있고, 1.5세대(어린 시절 이민 간 경우)는 외국어 실력은 1세대보다 괜찮으나 모국어 실력이 그 나이에서 멈춰버린다. 둘다 어중간하달까. 마지막으로 2세대는 당연히 외국어 실력은 월등하나 모국어 실력은 아주 낮다.(물론 2세대의 경우 대개 외국어 자체가 모국어가 되겠지만;) 제 3자가 보기에 이민자들은 어쨌든 모국어도 할 줄 알고, 외국어도 잘 하니까 두 가지 다 완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 허상을 단적으로 집어준다. 이런 얘기가 단순히 '그 사람들 너무 부러워하지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국어란 게 단순히 말을 할 줄 안다고 끝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민 2세대의 경우 네이티브와 흡사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바로 문화와 역사다. 말이야 네이티브와 큰 차이가 없겠지만, 부모 이전 세대부터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아왔던 사람과 이민 2세대는 문화와 역사를 받아들이는 범위와 깊이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글을 써보면 그 역량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 '뭐 어쩌라는 말이냐?' 싶어서 짜증이 슬며시 일었는데, 그 순간 독자의 심정을 알았는지 저자가 말하길, '외국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니 현실을 충분히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란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않나? 외국어의 어려움을? 그러나 조금 더 끈기있게 읽어보면 저자의 진심을 알 수 있다. 현실을 충분히 안다면 '이렇게만 하면 누구만큼 할 수 있다'나 '쉽게 공부하는 외국어' 같은 문구에 속지 말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런 식의 쉬운 외국어(영어)가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다. 외국 나가서 영어 한마디 못해도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와 여행 가이드 하나면 외국 사람들도 충분히 알아먹는다. 그렇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거다. 여기서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데, 아마 이 책이 전하고 싶은 가장 핵심 생각이 아닐까 한다. "돈 쓰는 영어는 쉽다. 하지만 돈 버는 영어는 어렵다."

이 말은 결국  쉽게 공부할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쉽게'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부하는가이다. 이 책은 여기에 대한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뉴욕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저자는 '돈 버는 외국어(영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미 몸으로 체험한, 그리고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위의 말이 더욱 더 와닿았다. 이미 저자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용이고 나도 책을 보기 전 몇 번인가 들어가서 봤지만 '정리'와 '편의' 차원에서 책으로 보는 게 훨씬 좋았다. 많은 부분 이미 알고 있는 얘기고 또 상당 부분 원론과 원칙을 얘기하고 있지만,  '나 이렇게 성공했어요!' 혹은 '나처럼만 하면 잘 할 수 있어!'류의 잘난 척이 아니라 '이러면 좀 더 낫지 않을까요?'하고 넌지시 던져주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솔직한 점도 마음에 들고. 사실 방법적인 조언이라기보다 영어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외국어에 대한 멘토로서의 기능이 더 훌륭한 책이다.

우리는 이미 외국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끈기고, 인내심이다. 자신의 방법을 믿고, 자신의 방법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고쳐나갈 수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다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 좀 한다는 사람들은 남의 방법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너네가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쉽게 얘기하는 경우도 봤다.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다른 방법들에 대해서 함부로 소용없다고 얘기하지 않아서이다. 다만 어느 것부터 해야할 지 우선순위를 정해준다. 예를 들면 '영화로 하는 영어공부는 초보자가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후 이러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해보세요'라든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로 된 원서만 계속 읽는 것은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처음에는 영한대역 교재가 교정을 해줄 수 있어 더 좋은 점이 있다'든지 하는 것들. 사실 영한대역서 읽는다고 하면 무시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이런 식의 조언이 얼마나 고맙던지. 이 밖에도 라디오로 하는 영어공부의 좋은 점, 원서를 읽는 좋은 방법, 토익·토플 위주 영어공부의 폐해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EBS 라디오 영어를 듣고 있는 중이다. 출근이 늦은 편이라 아침 7시 20분에 부시시 깨어나 녹음 버튼 눌러놓고 비몽사몽 듣지만, 그 와중에 따라하며 들었더니 벌써 몇몇 구문은 저절로 외워져서 내심 뿌듯하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되었고 그 사이 며칠은 못 들었지만 인터넷에서 다시 듣기 구매해서 들으며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나름대로 느낀 점이 많이 이번엔 작심삼일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데, 사실 크게 자신은 없다.(워낙 포기한 전적이 많아서 -_ㅠ) 이 책이 정말로 '내 생애 마지막 영어공부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몇몇 말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힘을 얻으려고 한다. Thank you!
2009/11/09 02:17 2009/11/09 02:17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10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이레


케이트 윈슬렛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하게도 그 때문에 이 책을 샀다. 동명의 영화로 각색된 <더 리더>의 여주인공이 그녀이기 때문에. 게다가 상복 지지리도 없던 그녀가 이 영화를 통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은 물론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기 때문에. (물론 골든글로브에서도 주연상을 받아 2관왕이지만, 그건 별개의 작품으로 받은 것이므로 논외로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마치 의무인 양 원작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국내 개봉도 앞두고 있었고,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이미 받은 골든글로브 수상을 계기로 출판사에서는 대대적인 할인 이벤트를 내걸었다. 이 기회를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재빠르게 사다가 고이 책장으로......(응? -_-;)

아니 그게……, 아무리 케이트 윈슬렛이라지만 어두컴컴한 배경에다 욕조에 고즈넉히 앉아 있는 그녀의 상반신 사진 하나 떡 걸어놓은 표지는 독자로서 좀처럼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단 말씀이지……;;; 뭔가 되게 무거울 것 같고, 지루할 것 같고, 그래서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일 거라는 느낌마저 스멀스멀. 가지고 있는 사전정보도 열 다섯 소년과 서른 여섯의 여인이 등장한다는 정도의 관계 설정밖에 몰랐기 때문에 지레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다. 단순히 사회적 통념상의 터부라기보다 그 왜, 옛날에 나름대로 센세이셔널 했다는 '가정교사'던가, '과외수업이'던가 아무튼 그런 영화가 생각나면서 성적으로 지나치게 부각된 작품이 아닐까 싶어 괜히 걱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정작 그 영화를 본 적도 없으면서 이미지는 하염없이 나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산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케이트 윈슬렛이 주인공인 영화의 원작이라서 산 거다.♥ 아, 제목과 함께 부제로 붙은 '책 읽어주는 남자'에 몇 가닥의 희망을 걸기는 했다. '~하는 남자' 혹은 '~하는 여자' 같은 제목을 출판계에서 하도 남발하는 바람에 이젠 식상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밑줄 긋는 남자'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생각하면 그래도 기대를 걸어봄 직한 제목이니까.


이야기는 영화화 하기 딱 좋은 3막 구조로 이루어진다.

먼저 1막. 작품 초반, 예상에 빗나감 없이 에로틱한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적나라한 묘사는 아니지만, 남자 주인공 미하엘의 시점에서 비쳐지는 한나의 모습이나 정사 장면, 그리고 그 전후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어떤 의식은 거추장스러운 수식어가 없어서 오히려 더 에로틱하고 뜨거웠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소년과 심중을 알 수 없는 여인은 제 3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강력하게 부채질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 행위가 천박해 보이지 않은 건 미하엘과 한나의 만남이 육체적 가까움 만큼이나 정신적으로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미하엘의 세계는 한나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그가 그녀에게 느낀 감정이 수줍은 사랑인지, 일말의 동경인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인지 그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한나를 만나고 난 뒤 그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미래는 한나에 의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학교보다 그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미하엘에게 격렬하게 화내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한나의 반응은 미하엘로 하여금 미친듯이 공부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그로 인해 그를 보는 외부의 시각도 변해간다. 가족에게는 철든 아들내미, 학교에서는 맘잡은 모범학생. 게다가 미하엘이 일찍이 성숙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덕분에 그에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는데,이를 테면 또래들이 보기에 미하엘은 이미 '어른 남자'에 가까운 것이다. 쉽게 병에 걸리는 허약하고 나약해뵈는 이미지는 어느새 그렇게 탈바꿈한다.

1막에서는 왜 이 작품이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인지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기도 하다. 한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랑의 행위 전에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그들 사이에서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 되는데,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잠시 같이 누워 있기'로 이어지는 이 의식은 그들을 타인과 구별짓는 결정적인이유가 된다. 앞으로 이어질 사건의 시작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나가 왜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그 이유가 2막에서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밝혀지는데다 굉장히 극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는 데에 있다. 이미 반은 짐작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까지 알 수 없던 한나의 감정들이 순간 봇물터지듯 내게 밀어닥쳐서 혼란스러웠다. 그랬구나…….

그런 만큼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2막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들에게 한껏 입체감을 불어넣는 것도 2막에서 밝혀지는 비밀들 덕분이다. 약간 특별한 관계 설정은 2막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되고, 작품 전체에 무게감을 부여한다. 그 전까지 별로 느끼지 못한 시대감이 느껴지는 것도 2막을 통해서인데, 그도 그럴 것이 홀로코스트라든가 2차 세계대전 후의 전범처리 문제 같은 이야기가 나오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래서 그 전까지는 그저 영미문학 쯤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2막부터는 확실하게 독일문학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독일 작가가 아니면 쉽사리 다룰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유럽인이 아니라도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 현대 독일사와 유럽사, 나아가서 세계사에서 느껴야 할,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농축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슐링크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섣불리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짓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작가에게 감동받았다면 내가 너무 오버인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저력이란 3막에서의 통합과 마무리에서 오히려 더 빛을 발하니까. 내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릴 시간도 없이 시간은 유수 같이 흘러간다. 한나와 미하엘의 의식은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시간을 건너 뛰어 다시금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하엘의 자의에 의해서. 미하엘은 한나를 위해 테이프에다 책을 낭독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 옛날 한나가 사라지기 전 먼저 그녀를 배반했다는 죄책감, 그래서 그녀가 사라져버렸다는 자책감, 하지만 그 이후 대학 시절에 드러나는 그녀의 행적에 대해 오히려 내가 느낀 배신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과 연민까지 그 의식에는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과 지난 시간이 녹아있는 것이다. 그렇게 또 10년. 아쉬운 것은 역시 최후에서 조금 앞선 그녀와의 만남에서 그가 한 말이다. 나는 '그 말' 때문에 한나가 마지막을 그렇게 결정짓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한나를 배반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껴왔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한 행동에 괴로워했다. 아마 그 죄책감과 괴로움이 한나와의 인연을 유지시켜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로서는 한번도 배반 따위 하지도 당하지도 않았다. 그 만남에서 그가 한 '그 말'을 제외한다면. 1막에서 그와 그녀의 미미한 어긋남이 3막에서 그렇게 커다랗게 형상화되어버렸다. 미하엘은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지만 결국 배반해버리고 말았다. 슬픈 이야기. 한나가 미하엘의 세계에서 다시 사라지고, 그녀가 있던 방과 소품들을 들여다보며 그가 참은 눈물은 결국 그제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그녀를 배반했다고 느낀 데에서 오는 진짜 죄책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혹은 괴로움.

시간이 지나 미하엘이 한나의 부탁을 들어주며 작품이 마무리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죄책감과 용서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도 강요할 수 없고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것들에 대해.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되어버린 그것들에 대해. 미하엘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애당초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한 까닭은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까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중략)... 나는 우리의 이야기와 화해했다. 그러자 우리의 이야기는 되돌아왔다.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게 더 이상 슬픔을 주지 않을 정도로 둥글고, 완결되고, 나름대로의 방향을 지닌 모습으로. ...(중략)...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썻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말 부분에서 많이 놀라고, 또 울었다. 예상하지 못했고 그런 만큼 오히려 와닿았던 결론이라서. 슬프다기보다 안타까웠고, 홀가분하다기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늘 이런 식의 서사에 약하다. 방대한 시간을 담고있는 소설은 그 시간의 무게가 곧 삶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그 땐 모든 시점을 한나에게 맞춰서 읽을 생각이다. 그녀의 인생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 지켜보고 싶다.



덧,
1. 아아~ 스포일러 발설 안 하고 돌려서 리뷰쓰려니까 힘들구만. 내용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 혼자만 아는 얘기 한다'고 화낼 것 같아.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_ㅠ 책 완전 좋으니까 꼭 읽어보셔요~)
2. 영화가 개봉했을 때, 아직 책을 안 읽은 상태라 책 읽고 가려고 미루다가 영화를 놓쳤었다. 이후로 잊고 있었고...;;; 이제야 제대로 영화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월급 받으면 DVD 질러야겠다. 케이트 언니 기달료~♥
2009/11/08 04:24 2009/11/08 04:24
세계의 끝 여자친구
8점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때는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 근처의 한 도서관에서 나는 800번대 코너를 서성이고 있었다. 대개는 도서관에 갈 때 미리 읽을 것을 정해놓고 가지만, 가끔은 이런 식으로 아무 코너에서나 제목을 따라 이동하다가 인연이 닿는 책을 고르기도 한다. 그 날은 800번대였다. 국내에 있는 대부분의 도서관은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책을 분류하는데, 이에 따르면 800번대는 문학도서를 뜻한다. 나는 그 문학 코너에서 처음 김연수를 만났다. 제목은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나는 그 책을 울면서, 웃으면서, 감동하면서, 때론 울컥, 때론 씁쓸해 하면서 그렇게 읽었다. 그 단정한 문장들이 내 안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그땐 그랬다고 기억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김연수를 기억하게 됐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었고, 그리고 그의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 모았다'는 것이다. 참 이상도 하지, 신간이 나오는 족족 사면서 그 이후로 나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예쁘다고 사서는 고이고이 아끼다가 결국 전시용으로 전락하고 마는 엄마의 예쁜 그릇 같은 경우일까? 그치만 '아끼다 똥된다'는(>_<) 모님의 말처럼 나는 어쩜 그의 책을 아껴만 두다가 썩혀버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읽기를 두려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높은 기대 심리로 지레 실망하고 싶지 않은 데에 대한 방어기제 같은. 그러던 내가 이번에 나온 신간은 왜 이렇게 (비교적) 빨리 읽어버렸는지, 역시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저 서점에서 본 꽃분홍 표지가 내 시선을 끌더라고, 띠지인지 표지인지 모를 사진 속  여성의 감춰진 얼굴이 보고싶더라고, 바람에 흩날리는 그 풍성한 머리카락과 반쯤 몸통을 튼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가 궁금하더라고, 오직 그렇게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쳐든 건 지하철에서였다. 평소라면 버스를 이용하지만 퇴근 후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던 참이다. 고작 9개의 그 짧은 구간 사이의 시간이 무료해 나는 아침에 가방에 넣어 간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몇 분 후 하마터면 목적지를 지나칠 뻔 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사실 내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조금은 지루하다거나 혹은 난해하다거나 그래서 재미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를 놓칠 뻔 할 정도로 몰입을 한 건, 아마 그 문체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분위기와 그로 인한 감정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책 읽기를 마칠 때까지, 아니 책을 덮고나서도 꽤 긴 시간 유효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읽는 내내 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감정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 예를 들면 외롭고 따뜻하다든지, 슬프고 웃긴다든지하는 것들. 이해가 안 가 고개를 갸우뚱 하거나 슬며시 짜증이 치솟다가도 어느 순간 공감해버리고 마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미미한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이 소설집의 참 맛일까? 9개의 단편을 다 읽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는 듯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허전해왔다. 그것은 여운일까?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다시 한번 책을 읽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상실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 지금 없는 누군가를 추억한다는  것은 늘 그렇지만 즐겁고 외로운 일이다.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웃음을 머금다가도 종국에는 지금 곁에 없다는 사실이 시리게 아픈 법이다. 케이케이를 그리워 하는, 그래서 그의 나라를 찾아 온 그녀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정작 날 울려버린 건 해피의 이야기였다. 특히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의 아파하는 소리를 절규하듯 따라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날 때부터 연약했던 그 작은 심장하나가 멈췄을 뿐인데 지구가 완전히 텅 비어버렸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아이가 군살처럼 느껴지던 나날들이 차라리 행복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가슴이 툭하고 떨어졌다. 몇 줄 안 되는 이 문장에서 해피의 고통이 내 것처럼 전해져왔다. 어떡해...어떡해...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그녀와 해피가 서로를 이해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통해 '자신'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상처가 아물듯 조금은 그렇게.

기억할 만한 지나침

10대의 여자(소녀가 아니다)란 타인은 쉽게 이해할 수도, 하려고도 해선 안되는 감성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긍정하고, 부수었다가 다시 완성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번데기를 탈피해 성충이 되어가는 나비처럼 단단한 외벽을 만들었다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두렵지만 반드시.

세계의 끝 여자친구

표제작이자 이 소설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예쁜 이야기다. 거창하게 생각했던 세계의 끝이 사실은 호수 건너 편 메타세쿼이아까지라는 것에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숨겨진 이야기가 마음을 적셔서 그 순간부터는 오히려 정말로 거기까지가 모든 세계의 끝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무 아래 묻힌 이야기는 마치 사랑의 전설 같았고, 마플 할머니 같은 희선씨와 순진해 뵈는 청년이 괜시리 마음에 들었던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아주 최근의 뉴스가 작은 소재로 차용되고, 관계 설정이 흔하다면 흔한지라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쉽게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래 전에 헤어진, 한 때는 연인이었던 사람이 생각났고, BGM으로는 왠지 김연우의 '이별택시'가 깔려야만 할 것 같은 이야기. 정말로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난 그 노래를 찾아들었고, 살면서 한번쯤 그 사람과 정말 우연히 마주치게 될 확률을 생각해보았다.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건 마지막 장에 인용되는 편지 문구일 것이다. 벌써 잊혀지고 있는 그 사건이 슬펐고, 벌써 잊어가고 있는 나여서 미안했다. 그래서 또 다시 눈물. 하지만 곧 이어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 마무리가 있어 마음이 따뜻했다. 다행이야.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에서 이미 접했던 단편이다. 두 번째 읽는 거라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난 이 소설 속의 두 인물이 참 좋다. 한 인물 혹은 사물에 대해 두 사람의 다른 시선이 결국은 각자의 이해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마음에 든다. 처음 만나 서먹서먹했던 공기가 훈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져서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될 것만 같은 느낌. 아, 그리고 역시나 사놓고 읽지 않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

한희정의 '휴가가 필요해'를 나른하게 흥얼거리며 읽었지만, 사실 내용은 어쩐지 미스테리했고, 그래서 가장 눈을 반짝이며 읽었던 단편이다. 휴관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어 어느새 도서관의 전설처럼 돼 버린 한 노인이 어느 날 익사체로 발견되었단 뉴스는 도서관 직원들에게 충격이자 이슈가 되기에 충분한 뉴스. 당연히 그 노인의 출신과 노인이 매일 보던 책들의 이력이 화제거리가 된다. 마치 영화 <러브레터>에서 '후지이 이츠키 독서 카드 찾기 게임' 같은 재미를 느낀 건 잠시, 로맨틱한 노인이었기를 기대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역사와 시대의 아픔이고, 한 인간의 고독과 고통이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웠던 단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난 이 두 단편에 대한 느낌을 좀처럼 정리할 수가 없다. 전자에 대해서는 머리 위로 부유하는 말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 하는 탓이고, 후자는 내 이해의 폭이 좁은 탓이다. 어렴풋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 말로 설명을 못하겠어.'라고 소심하게 중얼중얼.

달로 간 코미디언

마치 다큐나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라도 본 느낌이다. 한 희극인의 비극적인 인생 추적이랄까. 구성, 주변 인물, 클라이막스의 반전, 그리고 마무리까지 다 좋았다.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의 마지막 문장이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로 걸어갔다'인데, <달로 간 코미디언>은 마치 정적 속 진정한 소리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며 끝이 난다. 혹은 암흑 속 빛으로. 이 단편에도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사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또한 현실의 인물이 이야기 속에 등장해 현실감을 강하게 부여한다. (난 정말로 희극인 안복남 씨가 있나 검색까지 해봤다;) 아,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안피디의 이름이 내 친구랑 똑같아서, 게다가 캐릭터마저 뭔가 비슷해서 정말 몰입해서 봤다. 책 내용 자체가 그 친구가 좋아할 타입이라 한 권 더 사서 선물로 줘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앞서 김연수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노력해야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맞는 말이다.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 봄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더하여 '우리'를 이해하게 되면 결국 '너' 역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외로움을, 쓸쓸함을, 그리움을, 방황을, 고통을 그려놓았지만 비관적이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담담하게 똑바로 맞서는 모습을 그려줘서 참 고맙다. 그래서 외롭지만 따뜻했고, 슬프지만 웃을 수 있었던 거였다.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절망하지 않는 게 핵심이라고 했는데, 어쩌나~ 난 이미 토닥토닥 위로 받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걸. 이제는 김연수의 책을 마냥 '사 모으는'게 아니라 '마침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세계의 끝은 실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다행이야. :-)
2009/11/03 00:02 2009/11/03 00:02
이왕 글 하나 올렸는데 그냥 나가기 아쉬우니까...
최근에 읽은 책들 목록만 대충 간추려 놓는다. (별로 없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출퇴근 길에 버스에서, 휴식시간에 짬짬이, 자기 전에 잠깐 보는 것 만으로는 크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주말엔 노느라;;;;)
여튼 8, 9월에 읽은 책들은 요 정도.
올 초에 세웠던 200권 읽기 목표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이 상태면 100권도 채우기 힘들 것 같다. ㅠㅠ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포부있게 세운 목표였는데... 힝.



백수생활백서/박주영 : 아주 좋았다. 정말로 진짜로 좋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듯한 주인공의 생활은 첫 문장부터 나를 잡아끌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첫 장의 내용은 수시로 내가 하고 다니는 말이었거든. 헌책방에서 싸게 산 게 미안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책. 기나긴 백수기간 동안 눈치밥만 늘어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에서 그 생활을 벗어나자마자 '백수'란 말이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책을 만난 것은 아이러니. 인용문이 반을 차지하더라도 순간순간 묘사되는 상황, 대화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근사하게 리뷰써야지'하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한 책은 꼭 리뷰 안(못) 쓰게 된단 말이야. ㅠㅠ


배려/한상복 : 예전에 한 절반 정도를 E-book 미리보기 이벤트로 보고 뒷부분을 계속 못 보고 있다가 얼마전에 동료 선생님이 빌려주셔서 봤다. 술술 잘 넘어가는 문장들이 피로를 덜어준다. 어디서 본 듯한 착한 결말, 모범 답안 같은 설정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 찡해지는 구석도 분명 존재한다. 자기계발서의 일종이겠지만 이야기 형식이라 부담없고, 무엇보다 자주 보면 수양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나름대로 좋은 책.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 : 전체적인 만족도를 따지자면 몇 개월 전에 읽은 2005년 작이 더 좋은데,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7년 작이 더 많다. 김애란의 '도도한 생활'과 백가흠의 '루시의 연인'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천사와 악마 (전 2권)/댄 브라운 : 전형적인 댄 브라운 스타일의 소설. 그래서인지 초반에 진도가 안 나가서 애먹었다. 2권 넘어가니까 탄력이 붙더라. 많은 사람들이 '다 빈치 코드'보다 좋았다라고 하던데... 난 '다 빈치 코드'가 낫더라;;; '다 빈치 코드'에 나오는 작품이랄까 소도구들이 더 내 취향이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몇 권 읽다 보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파악이 금세 돼서 조금 맥 빠지는 감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전이 너무 시시해서 좀 실망. 그러나! 작가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두 번째, 세 번째 반전을 선사하며 진정한 의미의 반전을 노렸다. 그럭저럭 읽을 만한 책.


밤의 거미원숭이/무라카미 하루키 : 하루키의 글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 조합은 이런 잡담 같은 글들도 특별해 보이게 한다. 하루키의 별난 상상력은 시시한 일상도 독특한 에피소드로 만들어버린다. 그렇지만 '무라카미 라디오' 같은 에세이가 난 더 좋다.^^;

스토리텔링의 비밀/마이클 티어노 :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빌려 읽고... 결국은 사고 만 책. 강추다. 강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명쾌하고 간결하게 풀어낸 책이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뿐 아니라 영화를 좀 더 즐겁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시나리오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이든 드라마든 만화든. 하여간 좋았다.


밤은 짧아 걸어라 아가씨/모리미 토미히코 : 일본 잡지 '다빈치' 연말 대상이었나? 암튼 그 때 1위를 한 걸로 아는데,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독특해서 기억해 두었던 책이다. 제목 만큼 내용도 그에 부합한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대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한 남자와 옆에서 그렇게 알짱(...)대는데도 남자의 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어머, 선배 또 만났네요?"라고 천진하게 인사하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여기까지라면 너무 흔해서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지만 여기에 환상문학으로서의 특징이 접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킥킥거리며 읽을 만한 가벼운 소설. 그 와중에 혹시라도 남자 입장에 감정 이입해버리면 눈물 나는 소설.



제물의 야회/가노 료이치 : 지금 읽고 있는 소설. 페이지 당 글자수 엄청 많고, 페이지 캡숑 두꺼운데 정가 13,500원 밖에 안 하는(할인하면 더 쌈) 아주 바람직한 책. 아주 양심적인 출판사라고 어디 칭찬게시판에 추천해주고 싶다. 호호. 단 한가지 문제는 바로 번역. ㅠㅠ 실은 지난 겨울에 이 책 읽다가 100쪽 쯤 읽고 번역 때문에 포기했던 책이다. '내가 번역체에 이렇게 민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문장이라 읽다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길래, 짜증나서 덮어버렸던 책이다.(좀 야박하다 싶기도 한데... 도무지 적응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ㅠㅠ) 그치만 워낙 내용이 강렬해주셔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나길래 최근 다시 집어들었다. 현재 딱 지난 번에 읽은 만큼 읽었는데, 한번 경험해봐서 그런지 여전히 거슬리긴 하지만 내용이해만 되면 된다고 생각하고 유하게 넘어가고 있다. 흥미진진.



이 중에 몇 권은 새로 리뷰 쓸 예정.
아아, 밥먹으러 가야지.
2009/09/29 12:32 2009/09/29 12:32
악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한  일 년 전쯤에 100페이지 가량, 그러니까 첫 챕터까지만 읽고 덮어두었던 책이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오히려 흥미로웠음) 어쩌다보니 읽다만 책이 되었다. 어젯밤에 생각나서 다시 펴들었는데, 앞내용이 띄엄띄엄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 처음 읽었을 때나 다 읽은 지금이나 평소 요시다 슈이치에 대한 인상을 뒤집는 책이라는 것만은 변함없다. <동경만경>을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은가. '악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표지도 어찌나 강렬해주시는지, 한자 '악惡'자가 저렇게 크게 씌어져 있으니, 정말로 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 같다.-_-; 덕분에 막판에 흐름이 통속적으로 변해가도 끝까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제목과 디자인 덕이 크다.

내용은 여러모로 <모방범>이나 <골든 슬럼버>와 비슷한 느낌이다.(모방범에 더 가깝다) 범죄 사건 하나 발생하면 그 놈의 와이드쇼 카메라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건 여전하다 싶은 게 구역질이 다 난다. 알 권리 어쩌구 하는데, 그 알 권리를 위한 짐을 왜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의 주변인이나 심지어 피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인이 짊어져야 하는 건지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알 권리 이전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좀 지키고 알 권리 추구해라. 악의적으로 카메라 들이대면서 "심정이 어떻십니까?"라니. 그걸 몰라서 묻냐고 버럭 쏘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특종 하나 건지면 개떼 같이 달려들어 만신창이가 되도록 물어뜯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다시 한번 분노로 뭉글뭉글 솟아나는 장면. 그러면서 더 나올 게 없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다른 먹이 찾아가는 태도. 더 웃긴 건 거기에 편승해서 실컷 휘둘리는 일반인들. 그러나 과연 난 그렇지 않다고 완벽하게 자신할 수 있냐 하느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게 슬프다. 이 패배감.

<악인>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불편한 소설이다. 뚜렷하게 드러난 피해자와 가해자를 놓고, 어느 한쪽을 편들어 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었다면 어느 누가 피해자를 두고 '불쌍하다'고만 생각하겠으며, 또 어느 누가 가해자를 두고 '나쁜놈'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하면서 흔해빠진 원론 앞세우며 훈계하기도, 동정심에 사로잡혀  마냥 같이 슬퍼해줄 수도 없다는 게 작가가 노린 지점이 아닐까. 최초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지만 그 원죄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변수는 도처에 깔려있으며, 어차피 최종 행위자는 변하지 않으므로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 누구에게는 철천지 원수이자 악인인 사람이 누구에게는 마냥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그 모순점이 소설 <악인>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 과연 누가 악인일까요?" 하고 문제를 던져놓지만 논쟁만 있을 뿐 사실 해답은 없는 것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악인의 규정은 개인의 몫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기리노 나쓰오 정도의 신랄함과 차가움을 떠올렸는데, 알고보니 미야베 미유키 풍의 따스함을 견지하고 있어서 의외였다. 거기에 나름대로 수위 높은 성애묘사와 더불어 묘하게 애정소설의 분위기가 나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임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던데, 그말 그대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이 제법 있긴 하다. 문득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떠오른다. 물론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훗,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 좀 더 확실하게 와 닿는다. 동어반복이겠지만 <우.행.시>에서 윤수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여기에서도 느껴져서 그랬구나 싶다. 동정심의 방향이 문제였어. 결국 되돌아오는 것은 어쩌지 못할 결말 뿐인가 싶어 씁쓸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왜 이 소설이 인기있는지도 알겠다. 비극의 정서를 제대로 짚은 것이다.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아아, 이것도 저것도 모순 투성이로구나.


밑줄긋기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p.439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p.448
2009/06/08 22:42 2009/06/08 22:42
상복의 랑데부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이런 소설을 읽고나면 옛날 생각이 울컥 밀려와서 괜히 좀 그리운 심정이 되고 만다.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고전적인 영미 추리소설을 읽고나면 어릴 때 셜록홈즈니,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같은 소설 읽으면서 '나는 탐정이 될 거야'하고 호기롭게 말하고 다녔던  게 생각나서 부끄럽고 즐거운 기분이 된달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 탐정 같은 게 어디있다고. -_-; 책에 나오는 건 다 실화를 각색한 거라고 믿었던 때여서, 분명히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탐정이 있는 줄 알았지. 소설이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아예 생각도 못했나보다.

느지막이 눈 뜨자마자 가장 가까운 데 있던 책 집어서 읽었는데, 중간에 끊을 새도 없이 줄줄 읽혀서 다 읽고나니 점심시간. 이 책은 내용은 하나도 모르면서 제목은 눈에 자주 띄어서, 읽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읽은 것 같은 그런 책이었는데, 이번엔 진짜로 읽었으니 '나 읽었어요!' 라고 흔적은 남겨놔야지. 사실 그런 책 많다. 고전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어디어디 필독도서100선에 내로라 하는 고전이 주욱 실려있는 걸 보면, 내가 읽은 건 채 30권도 안 되더라. 근데 제목이랑 줄거리는 대충 다 안다는 게 고전이 지닌 아이러니지. 암튼 이 책도 추리 장르에서는 고전이라면 고전인데, 나는 (잘 알려진 소설만 아는) 여기저기 널린 스타일의 추리소설독자라서 작가 이름이 좀 생소했다. 알고보니 윌리엄 아이리시랑 동일인물이라고. <환상의 여인> 작가라니까 왠지 새로 보게 된다. (사실 <환상의 여인>도 읽지는 않았음. 명성만 익히 들었을 뿐)

이 작가 스타일 있다. 작품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 안에서 스타일은 확고하다. 사건하나 툭 던져주고 약하게 시작, 계단 밟듯이 착착 올라가서 드디어 평지를 만난 듯 편안하게 마무리. 크게 격정적이진 않지만 독자의 궁금증을 살살 건드려줘서 자꾸만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7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어서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개별 사건이 종결이 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인데, 모두 미해결로 끝나기 때문에 긴장감은 계속 이어진다. 발단이 되는 사건 말고, 본격적인 살인이 세 번 이어지면서 공통점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그걸 토대로 경찰은 나머지 살인을 막으려고 하지만 죽을 사람이 묘자리 찾아가는 데에야 별 수 있나. 독자는 마지막까지 같이 달릴 뿐이다. 범인이 어떻게 대상을 알고 꼬여내는지,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춰서 계획대로 처리를 하는지는 완벽한 미스터리. 심지어 피해자의 행동까지 예상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는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고전의 테두리 안이라 이런 것도 왠지 납득. -_- 요즘처럼 리얼리티 강조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이런 점도 분위기 있어보인다. 마지막 체포 땐 너무 급작스럽게 호흡이 빨라지는 감이 있었는데, 이미 본사건이 다 끝나버린 뒤라 질질 끄는 것보다는 나았을 수도 있겠다 싶고. 추리소설이면서도 묘하게 로맨스의 기운이 풍기는 소설이었다. 애초에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배경이 그랬기도 하고, 살해대상 선정과 그로 인한 효과(?)도 사랑을 모르는 남자라면 그리 효율적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희생자는 무고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비극이다-_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런 사람이 읽어야 한다.
예컨대, 높은 건물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거나 물 쏟아버리는 사람들, 한술 더떠서 일부러 그렇게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곤란해 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 자기가 한 사소한 일이 다른 사람한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거, 그게 자기한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걸 이 소설 보면서 좀 뜨끔해야 한다. 얼마전에 드라마보니까 고속도로에서 커피 컵을 휙 버렸다가 뒤따라 오는 자동차 앞 유리에 쏟아지면서 사고가 날 뻔한 장면도 있던데, 그러면 안 되지. 벌 받아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죽은 개구리 남편이 밤마다 꿈에 괴물개구리로 나타나서 잠 못자게 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구!

그나저나 이 소설을 읽고 생각난 또 다른 말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랄까? 혹은 머피의 법칙? -_-

고등학교 때 내 친구가 나한테 팔짱을 끼고 룰루랄라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데, 아 글쎄 새똥이 내친구 팔 위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_-; 보통 그런 상황이면 같이 새똥을 맞거나 그랬어야 하는데 정확하게 팔짱을 낀 내친구 팔위로만 떨어졌다. 팔짱 안 꼈으면 내가 맞는 거였는데, 팔짝 끼는 바람에 그 친구가……. 더 가관인 것은 친구 달래려고 비싼 즉석 떡볶이 시켰는데, 그거 만들어주는 점원이 실수로 국물을 왕창 튀기고 말았다. 근데 그것도 모조리 그 친구한테만 튀어서 그 친구는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는 거. -_-;;;;;;; 흰 교복에 누런 새똥도 모자라 떡볶이 국물이라니... 한참 민감한 고3때인데다 수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애라 그런지 "난 왜 이렇게 재수없는 거야!"하고 우앙~ 우는데, 뭐 할 말이 있어야지. (다른 친구는 그런걸로 우는 게 웃겨서 배꼽 잡고. 그 친구는 친구가 웃는다고 더 울고. 아주 난리 법석이었음)

아무튼 난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우연으로 시작한 사건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커져가듯 나로 하여금 잊혀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괜찮은 고전 추리소설이다. 이 번역본 초판년도가 무려 1977년이라는데(헉),  더 빨리 읽었으면 훨씬 재미있었겠지만, 더 늦지 않게 읽어서 다행이다. 다음은 <환상의 여인>. (근데 번역본이 왜 이렇게 많아? 고르기 힘들어. 끙 -_-;)


덧,
1. 맞춤법 오류 발견
이래뵈도(X) → 이래ˇ봬도(O) p.56

어제 읽은 책에 이어 연달아 틀려주시니,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건가 싶었다. 다행히 그건 아니고.
과연, 사전에도 틀린 보기가 나올 만큼 자주 틀리는 맞춤법이 맞구나 싶다.;
비슷한 용례로, 뵈요(X) → 뵈어요 혹은 봬요(O)

2. 제목은 언제봐도 참 독특하다. 읽고나니 더 독특해.
참고로 원제는 RENDEZVOUS IN BLACK.

3. 요정도 책 크기 사랑한다.(세로 20cm가량)
해문 문고본보다는 조금 크지만 이 정도면 손에도 잘 잡히고, 가방에도 쏙쏙 들어가고.
우리나라는 적정 수요가 못 돼서 문고본 시장이 생길려다 망했지만, 그래도 요런 책들 보면 문고본 시장이 좀 활성화되면 좋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출판계 사정 알면 암담-_-;
2009/06/07 12:44 2009/06/07 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