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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서가에 꽂힌 책'에 해당되는 글 114건

  1. 2010/03/02 그림일기를 그려보자! - 대니 그레고리, [창작 면허 프로젝트]
  2. 2010/02/24 트릭과 캐릭터의 조화 - 기시 유스케, [유리 망치]
  3. 2010/02/22 어느날 내가 화성으로 납치되었다 - 기시 유스케, [크림슨의 미궁]
  4. 2010/02/18 김주하의 다큐에세이 - 김주하,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4)
  5. 2010/02/02 〈무라카미 라디오〉 중에서
  6. 2010/01/24 오랜만에 보는 갈릴레오 시리즈 - 히가시노 게이고, [성녀의 구제]
  7. 2009/11/09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몰라 - 고수민,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8. 2009/11/08 인생을 결정짓는 몇 가지 -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9. 2009/11/03 세계의 끝에 서면 또 다시 길은 이어져 -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10. 2009/09/29 최근에 읽은 책들 (2)
  11. 2009/06/08 악인의 규정 - 요시다 슈이치, [악인]
  12. 2009/06/07 고전 추리의 향취 - 코넬 울릿치, [상복의 랑데부] (2)
  13. 2009/06/06 헌책방은 역시 나의 로망! - 쇼지 유키야, [도쿄밴드왜건]
  14. 2009/06/05 부엔 카미노(buen camino)! - 김희경,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3)
  15. 2009/06/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5
  16. 2009/05/31 First Priority - 야마모토 후미오, [내 나이 서른 하나] (2)
  17. 2009/05/27 은어가 회귀하듯 때가 되면 찾게 되는 소설 - 윤대녕, [은어낚시통신] (2)
  18. 2009/05/18 그것은 '영광'인가, '굴레'인가 - 사사키 조, [경관의 피]
  19. 2009/05/17 브루투스 너마저! -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20. 2009/05/16 서른, 다시 한번 삶을 간절히 원하다 - 잉게보르크 바하만, [삼십세] (2)




우연히 대니 그레고리의 <창작 면허 프로젝트>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로 앞부분 몇 장, 다른 사람 블로그에서 사진 몇 컷만 봤을 뿐인데,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서 '사고싶다, 사고싶다, 사고싶다'를 외치면서 끙끙 앓았다. 웬만하면 사겠는데 지금 '개거지'신세라서 자중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지르질 못하겠더라. 그러다 지난 일요일날 뛰쳐나갔다. 어디로? 서점으로!(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책 찾아 들고 구석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한 시간 가량 훑어보았다. 어찌나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따뜻한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며 나아가서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식의 기법 전수가 아니라 '이렇게 그리면 좋고, 저렇게 그리면 더 좋다' 식의 조언에 가깝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림을 못 그려도 상관없다, 무엇이든 그리는 자체가 중요하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만 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그림 실력과 더불어) 좀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 준 것이다. 아아 감동이어라.

나는 미술 쪽으로 참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의욕만은 늘 왕성해서 학창시절 미술시간이 되면 야심차게 덤벼들기를 겁내지 않았다. 뭐 결과적으로 좌절+의기소침하는 일이 많아서 고민만 커졌지만.; 특히 그리기 계통.... 그러니까 '인물화'나 '정물화', '풍경화' 같은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평균에 도달하지 못했다.(그나마 색깔 안 칠해도 되는 소묘는 개중에 좀 나았다;) 중 2때였다. '친구 얼굴 그리기'가 그날 미술 과제였는데, 나는 내 짝꿍의 얼굴을 그려서 보여주기가 민망해서 과제를 안 내려고도 했다. 오죽 못 그렸어야지.-_-;;;(그렇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내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며, 그 그림은 내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어서 좋다고 말해준다. 좋은 친구다. ㅜ_ㅜ) 어쨌거나 중요한 건 내 그림 실력이 상당히 저질이었단 말씀. 그래서인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 못해 후광이 비치는 것 같고,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 괜히 부끄러워서 나도 언젠가는 제대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것 같다. 근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둘 다 있으면 마땅히 배울 데가 없다든가, 셋 다 될 때는 의욕이 없고....후...그랬다. 인생이 그런 거지.

그런데 이 책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던 상황을 타파시켜줌과 동시에 당장 그리고 싶게 만들어버리니 내가 한 눈에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그려봐. 못 그렸다고 절대 찢어버리지 말고, 다시 그리고, 또 그려봐... 직선 잘 못 그리면 어떠냐 정 안 되면 자가 있는데 무슨 걱정? 그리고 싶은대로 그려. 아무도 뭐라 안 한다. 일단 그려봐~" 라고 달콤하게 속삭여 준다. 점점 샘솟는 의욕. 그렇다면 이 책이 의욕만 잔뜩 돋워놓고 발을 쏙 빼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자 그러면 그리기 위해선 뭘 해야 하느냐, 일단 사물을 잘 봐야 해. 자알~ 오래 쳐다보고 다시 그리면 아마 처음 그렸던 그림이 어디가 어색한지 알 수 있을거야."라고 조언 해주기도 잊지 않는다. 자신이 쓰는 펜은 이런이런 펜이니 참고하라고 하라고 그림 그려주고, 자신이 그린 여러가지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감상의 즐거움도 선사한다. 그러면서 책 제목답게 프로젝트를 실행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림일기. 와우! 대박이야~

초등학생이나 그린다고 생각했던 그림일기를 그려보라는 조언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겐 너무나 신선해서 마치 입에 레모나를 털어넣고 포카리 스웨트로 목을 축이는 기분이랄까...라라라라라라라라~널 좋아~한다고~♬(자동재생 CM송) 상쾌해요. 그림과 일기를 접목하면 생활 속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을 거고, 내가 블로그에 이것저것 써내려가면서 느끼는 사소한 해방감을 그림일기로도 느낄 수 있다면 자가 치유의 효과도 확실히 있을 것 같다. 더 볼 것도 없다. 이 책은 사야 돼! 지난 주에 책 판 돈이 있으니까 살 수 있어!! (훗, 책 팔아서 책 사는 아름다운 인생~) 어쨌거나 결국은 책을 사기로 결정하고, 책 내용을 당장 실천하기 위해 핫트랙스로 내려가서 B5 크기의 스케치북이랑 마음에 드는 펜 몇 가지를 사들고 룰루랄라 집에 돌아왔다. 앞으로 매일매일(며칠 쯤은 건너뛸지도 몰라;) 그림 일기 프로젝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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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참 비싸게 나왔다. 한 3~4년 전이었다면 15,000~16,000원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종이값이 올랐다, 환율이 올랐다 어쩌구 하는 지금은 20,000원(할인가 18,000원)이다. 그렇지만 해외원서도 할인하면 18,000원대로 살 수 있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종이질은 국내본이 더 좋지 않을까? (원서는 페이퍼백이라고 했음.) '원서빨'이라는 게 있어서 종이질은 가뿐하게 넘어주는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서 실물 구경 좀 해봤으면 좋겠네.  ▶ 아무래도 원서가 궁금해서 구글신을 찾아갔다. 종이질이 무척 좋아보였다.(페이퍼백하면 떠오르는 똥종이가 아니었어!) 그림이며 글자의 인쇄 상태도 훌륭했다. 이럴수가! 원서도 사고 싶어!!!!!!!!!!!!!!!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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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02 My Room


  창작 면허 프로젝트 - 드로잉 기초부터 그림일기까지, 삶을 다독이는 자기 치유의 그림 그리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김영수 옮김

광고회사 중역으로 온통 일에 파묻혀 살다가 그림 그리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 삶의 필요성과 창작의 실질적인 지침을 들려준다. 저자는 그림 그리기를 운전 면허 따기에 비유하여, 의지가 있고 연습만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훨씬 더 행복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2010/03/02 21:30 2010/03/02 21:30
유리 망치
7점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영림카디널

〈크림슨의 미궁〉을 읽고 다시금 기시 유스케에 대한 호감이 폭발하여 집에 있는 책장을 뒤져서 그의 작품을 찾아냈다. 사놓은 지 제법 오래된 책인데, 막상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오랜 세월 방치돼 있던 책. 쪽수는 500쪽 조금 안 될 정도로 특별히 양이 많지는 않지만 종이질 때문인지 엄청 두꺼워 보여서 지레 질렸던 것 같기도 하다.(그보다 더 두꺼운 책도 잘만 읽으면서;;;) 또 기시 유스케의 번역본이 대개 '창해'에서 나온 걸 감안하면 '영림카디널'에서 나온 이 책이 좀 생소하게 느껴진 탓도 있다.(덕분에 기시 유스케의 번역본 중 이것만 판형이 다르다;) 그냥 뭐 책도 다 때가 있어야 읽히는 법이려니 하고 지금은 읽었으니까 만고 땡이다.

어느 한적한 휴일. 상장을 앞두고 있는 '베일리프'라는 회사 빌딩 최상층에서 사장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장실은 이중강화유리에, 복도에는 적외선 센서와 고성능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더욱이 사장실이 있는 12층은 비밀번호 없이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 않으며 마스터 키 없이는 계단 출입도 통제되고 있다. 심지어 바깥에는 세 명의 비서가 대기 중이었고, 옥상이나 천장, 배기구로도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는 구조다. 그 누구의 출입도 없었지만 사장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띠지의 화려한 홍보문구에 따르면 그야말로 '극초정밀 밀실살인'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옆 방에서 자고 있던 전무 '히사나가 도쿠지'. 히사나가는 결백을 주장하고 그의 변호인단 중 한 사람인 '아오토 준코'가 방범 컨설턴트인 '에노모토 케이'에게 밀실 트릭에 대해 자문과 조사를 의뢰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체적인 내용은 1부와 2부, 에필로그로 나누어진다. 1부는 해결사들의 입장에서 조사와 추리를 거듭하며 가설을 실험, 범인에게 다가가는 형식이고, 2부는 범인의 시선에서 상황을 보여주며 트릭을 설명한다. 그래서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 갑자기 전혀 다른 소설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드는데, 제법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는 범인 검거 후의 결과와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는 컨셉인데,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기시 유스케의 작품들은 늘 에필로그 형식으로  끝났던 것 같다. 이런 형식은 맺음이 분명하고 깔끔해서 좋다.

기시 유스케는 다작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품 한번 쓸 때마다 굉장히 공을 들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재주만 믿고 설렁설렁 써내는 게 아니라, 관련 분야를 제대로 조사하고 의미있는 장치로 활용하기 위해 진지하게 공부한다는 느낌? 그래서 소설 하나 읽고 나면 굉장히 알차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보험사에서 일한 자신의 경력을 십분 활용한 〈검은 집〉도 그렇고, 게임을 소재로 한 <크림슨의 미궁>도 단순한 지식의 활용이 아닌 꼼꼼히 조사하고 분석한 티가 나서 독자로서도 괜히 뿌듯하달까.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첨단 간병사업이라든가 방범체계에 대한 기술지식까지 내용 전개에 크고 작게 영향을 미치는 전문 지식들이 수두룩하다.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은 그림과 표로 첨부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으니 친절하기까지. 그래봐야 나로서는 용어부터 생소한 것이 많아 허둥지둥 내용따라가기도 벅찼지만.(물론 이해에는 무리없음)

〈유리망치〉는 밀실살인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로도 좋지만 캐릭터 소설로도 꽤 괜찮다.(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음) 능력있고 예쁜(?) 변호사 '아오토 준코'의 도도하고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는 그리 신선하진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매력일 수 있다.(조절을 잘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콤비를 이루는 '에노모토 케이'가 눈에 띄는데, 나쁜 남자 스타일이 분명한 그의 위험한 향기에는 묘한 끌림이 있다. (책 속 준코나 책 읽는 나나)트릭의 비밀도 궁금해 했지만, 이 남자의 내력도 만만치 않게 궁금해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쿠쿠) 방범샵을 운영하면서 컨설턴트로도 일하지만 탐정 소질이 있고, 과거를 알 수 없는 의외의 인맥과 자신의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보여주는 색다른 카리스마, 주인공으로서는 드물게 옳지 못한 일에도 발을 담그고 있지만 가치관은 뚜렷하며, 세속적 욕망을 감추려하지 않으면서 위험한 생각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라 이건 뭐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부분까지... 기존의 주인공 캐릭터를 탈피한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외형적으로 특별히 잘난 놈은 아니지만 자신감 넘치는 눈빛이 좋고, 중간중간 (특히 마지막에) '준코'를 당겼다 놨다 은근히 작업을 거는 부분은 "이 자식! '밀당'에 능한 놈이군!"이라는 확신까지 주었다. 아아, 추리소설인데 로맨스의 향기를 맡아버린 나! orz (그게 뭐 어때서? '엑스파일'에도 로맨스는 있다!)

책을 다 읽고 작가가 이 좋은 캐릭터들을 요 작품 하나로 끝내진 않았으리라는 근거없지만 왠지 확신이 드는 생각을 가지고 검색에 돌입. 그리하여 2008년에 이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단편집을 하나 냈다는 것을 알아냈다. 쿠하하하하. 아마존 평은 썩 좋지 않지만 두 사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일단 기대. 아직 국내 출시는 안됐지만 조만간 될 거라는 기대감 속에 흐뭇하게 책을 덮었다.(원서 살랬더니 문고본이 아직 출시 안 돼서 포기; 하드커버는 비싸용~) 읽으면서 영상화하기 딱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시 유스케는 작품 수에 비해 영상화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것도 괜찮겠다는 생각. 변호사 역할에는 '키 크고 도도하고 능력있지만, 패기 없고 별 볼일 없는 남자만 사귄 탓에 반대 급부로 위험한 남자에게 끌리는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가 맡아야 되는데 언뜻 떠오르는 게 코유키. 흐흐.(난 워낙 이 언니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남자는 '키는 좀 작아도 눈빛 좋고 카리스마 넘치고 날렵하고 위험한 남자의 이미지'여야 하는데...음... 누가 있을라나? 키득.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한 걸. 아무튼 이 책도 추리소설 좋아하는 분께는 그럭저럭 추천대상. (언제나 그렇듯 너무 큰 기대는 오히려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
"젊은이란 어느 시대에도 어쩔 수 없는 모순  덩어리지요.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으리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도 몹시 상처받기 쉬워, 어른이라면 견딜 수 있을 어렵잖은 일로 바스러져 버리기도 하죠. ……마치 유리로 만든 흉기처럼" 460p.

"……유리로 만든 망치가 진짜로 위험한 흉기가 되는 것은 부서진 후입니다." 4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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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오류 발견
42p. 12째 줄 : 새뱃돈 → 세뱃돈
2010/02/24 21:40 2010/02/24 21:40
크림슨의 미궁크림슨의 미궁
8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정 옮김
창해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서 납치를 당하고, 눈을 떴을 때는 낯설고 작은 방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호텔방 같지만, 타의에 의해 그 방에 갇힌 사내에게는 그저 감옥일 뿐이다. 그 후 외부와의 연락은 철저히 차단당한 채, 그리고 자신을 납치한 게 누군지도 모른채 자살도 용납되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15년동안 복수만을 꿈꾸며 체력을 단련해 나간다.

<크림슨의 미궁>의 도입부분은 언뜻 <올드보이>를 연상케 한다. 눈을 떠보니 기괴한 장소에 놓여져 있고, 설상가상 지난 밤의 일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그러나 깊게 고민해보기도 전에 당장 마실 물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 오대수가 좁은 공간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질리지만 재깍재깍 제공되는 만두를 먹으며 복수를 꿈꾼다면, 후지키 요시히코는 제한적이긴 해도 그보다는 넓은 공간에서 직접 먹거리를 조달해가며 각종 위험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해야한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후지키는 자신 외에 그곳에 납치 당한 사람이 여덟 명이나 더 있음을 알게되고, 각자에게 주어진 휴대용 게임기를 통해 미션을 수행, 종국에는 서바이벌 게임을 치루어야 하는 사실을 깨닫는다.(게임기에 의하면 그들은 '화성의 미궁'으로 초대된 것이다) 모두가 기억을 더듬어 조합해보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어느 이벤트 행사에 응모했다는 것 뿐. 과연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주최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게임을 할 줄만 알았지 게임속에서 조종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서 게임 속 인물이 되어야 하는 그들. 게다가 게임은 제로섬이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상황은 이제 <배틀로얄>이 되었다.

<검은 집> 이후로 기시 유스케는 무서운 작가가 되어버렸다.(오감 자극 소설 - 기시 유스케, [검은 집] 참조) 그는 심장이 옥죄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독자를 공포속으로 밀어부치는 데 능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 작가의 책은 밤에 읽지 않도록 하는데, 어제는 무슨 배짱으로 새벽에 집어들었던 건지. 중반 넘어가면서 부터는 읽는 내내 이불 덮어쓰고 '무서워 죽겠네~'를 연발했다. <검은 집>과는 사뭇 다른 공포지만, 식은 땀 나게 만드는 기술은 이 작품에서도 유효하달까. (다 읽고 자다가 꿈도 꿨다.ㅜ_ㅜ) 99년작이니 딱 10년 전 작품으로 시대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묘하게 고전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물론 당시에는 나름대로 신선했겠지만;) 그게 공포심을 더 키운 게 아닌가 싶었다. 밤에는 옛날이야기가 더 무서운 법이지.

어릴 때 해리슨 포드 주연의 <도망자>를 보면서 굉장히 무서워했었다. 잘못도 없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상황이라는 건 억울하면서도 끔찍하게 공포스러운 것이다. 이 책은 딱 그런 유의 공포를 선사한다. 하물며 뒤쫓아 오는 사람이 사람 잡아먹는 식시귀인 다음에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원초적인 공포가 아닌가 말이다. 인격이 배제된 식시귀가 한 때는 동일 조건에 있었던 동료였고, 그 변화가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것이라는 걸 생각하니 더욱 무서워지는 것이다. '살아남고 싶다면 배신하라'는 말초적인 문구는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매우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인간도 엄밀히 말하면 동물이어서 그런 상황에서는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을 수밖에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중에 '인생극장'이란 게 있다. 이휘재가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든 프로그램인데 컨셉은 이렇다. 상황극이 펼쳐지고 어느 순간 주인공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인생이란 늘 선택의 연속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선택은 주인공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예능답게 두 가지 선택의 결말을 다 보여줌으로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대리만족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크림슨의 미궁>에서도 이 선택의 갈림길이 시시때때로 나온다. 주인공이니까 결론적으로 옳은 길을 선택해갈 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상당수 그렇게 진행되어 다른 선택지가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것마저도 신(여기서는 게임 주최자)의 뜻에 의한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마음이 무거워지고 만다. 게임의 엔딩은 세가지. 배드엔드, 해피엔드, 그리고 트루엔드. 과연 책에서 보여주지 않은 엔딩은 도대체 어떤 결말이었던 걸까?

다 읽고나서 나는 '호접지몽'을 떠올렸다.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되었고, 깨고나서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후지키의 마지막을 보며 과연 후지키가 게임 속에서 빠져나온 건지, 아니면 아직 게임 속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것이 실체고 허상인지 모를 혼돈. 이것이 작가가 원한 결말일까?  혹시 인간은 신 혹은 신적 존재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그 허무함을 안겨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좀 염세적인가?;; 그래도 그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다보면 결말을 조금 바꾸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니까 이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일지도. 꼼꼼한 자료조사와 그걸 펼쳐보이는 능력, 복선의 활용, 공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는 솜씨까지... 간만에 기시 유스케의 매력을 왕창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 즐겁다. 추리(공포)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추천하겠다. 다음에는 얼마전에 번역·출간된 그의 데뷔작(13번째 인격)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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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타 발견 - 410p. 4째 줄 : 아퀴가 맞았다. → 아귀가 맞았다.
2. 소설의 배경이 된 오스트레일리아 벙글벙글 국립공원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똑같아서 무서웠다. 기시 유스케의 묘사 능력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나?(긁적)
2010/02/22 23:22 2010/02/22 23:22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6점
김주하 / 랜덤하우스 코리아

지난 연말 시상식은 하나도 안 챙겨봤지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조각영상들 덕분에 분위기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중 MBC 연기대상 호명 때 고현정이 보여준 비담과의 유쾌한 하이파이브 만큼 눈길을 끄는 영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라디오 부문 시상자로 나선 김주하였다. 깔끔한 블랙 정장을 입고 무대 위로 걸어나와 마이크 앞에 서서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김주하입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순간 나와 방청객들은 환호와 놀라움을 표시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묵직하게 퍼지는 저음은 새삼 대중을 끌어들였고, 분위기를 한껏 달구면서도 묘하게 진정시켰다. 방청객의 반응에 환한 웃음으로 답한 그녀는 화려하게 치장한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을 만큼 돋보였다. 물론 그 미모도 한몫했겠지만 목소리(그러니까 발성과 톤)의 힘이란 참 대단하구나를 느꼈다. 괜히 앵커가 아니구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사두었지만 에피소드 몇 개만 골라읽고는 던져놓아서 다른 책들과 함께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책이다. 갑자기 읽게 된 데에는 지난 연말시상식의 영향도 10분의 1정도는 있겠지만, 얼마전에 방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발굴(?)된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층층이 쌓아두는 게 아니라 책장에 착착 끼워놓으면 보기에도 좋지만, 읽기에도 좋다는 걸 깨달았달까.-ㅂ- 정리가 없었다면, 그리고 새 책장을 사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다른 책들 사이에서 잠자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계기가 있다면 언제든 꺼내 읽겠지만, 너무 안 쪽에 쌓여있어서 읽으려면 굉장히 귀찮았을 것이다.)

총 2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책은 상당 부분이  기자 시절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 치중한다. '이 뉴스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저 뉴스는 저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방송은 이렇게 나갔습니다.'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그래서 앞쪽은 한 꼭지의 뉴스를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느낌을, 그리고 뒤에는 방송용 스크립트가 나온다. 이 책의 부제가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인 것을 생각하면 그에 제법 충실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겠다. 하지만 독자로서의 내 기대에는 조금 어긋난 감이 없지 않은데, 사실 나는 김주하의 좀 더 깊은 내면의 얘기를 기대했었다. 그렇다고 폭로성 사생활을 끄집어냈다면 이 쪽에서 사양이겠지만, 뭐랄까 그녀의 전체 삶을 좀 더 크고 철학적으로 다루었으면 했는데, 책이 전반적으로 입사 후의 커리어에 맞춰져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 입사 후의 그녀의 활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제보를 쫓아 위험하고 급박학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고, 감정조절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늘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며, 단 60여 초의 화면을 위해 어느 때는 목숨까지 내놓고 덤벼들어야 하는 상황은 굉장한 흥분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상세 내용의 차이일 뿐, 사실 이 계통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어서 큰 차별성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알같은 재미로 읽는 이에게 흡족함을 안겨 주는 에피소드가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손석희 관련 에피소드다. 소제목마저 흥미진진한 '나를 키운 건 8할이 손석희라는 악몽이었다'가 아닌가.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책의 판매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현재 한국에서 손석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손석희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굉장하다. 정계에서도 끊임없이 손석희를 영입하려고 안달인 것을 이러저리 들려오는 풍문으로 접한다.(물론 석희옹께서는 딱 부러지게 거절하시고 계시지만.)  그러니 김주하와 손석희가 만났을 때 벌어질 일들이 얼마나 궁금하겠냐고. 그래서 책 사자마자 읽은 것도 바로 이 에피소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손석희는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한 사람이어서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는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띤다. 그런 그에게 원고 쓰는 법을 배우고, 프롬프터 없이 멘트를 정리하는 훈련을 하며 그를 따라가려 애썼으니 지금이야 그녀 자신도 프로라는 소리를 듣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칭찬은 한마디도 없이 내리 욕만 했다는 글에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다. 얼마나 엄했으면 강심장이라고 소문난 김주하가 뉴스 도중에 울기까지 했을까. 하지만 그녀에게 '싹수가 보이니까 매정하게 구는 거다'라고 말하며 고기를 사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큰해지는 건, 일 잘하는 사수에게 마침내 인정 받았을때의 환희가 나에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연말 시상식의 기억으로 돌아가보자. 김주하는 수상자 발표에 앞서 "12년 전 이 분께 원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에피소드가 기억나서 나는 또 한번 시큰했다. 그 한마디에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손석희에 대한 모든 감사와 존경이 다 담긴 것 같아서.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키운 8할을 손석희라고 했으니 만큼 그 시상은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독자로서는 마치 성장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

2004년 아테네에서 김주하
음,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 외에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시마네 현 관련 독도 에피소드와 월드컵, 그리고 김주하를 두고 여신이라는 표현까지 쓰게 만든 아테네 올림픽 에피소드가 있다. 특히 아테네 올림픽 때 김주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는데(연예인 못지 않은 팬덤에 무서웠던 적도;;;), 다소 딱딱하고 점잖은 정장을 주로 입는 보도인이 올림픽 시즌에 맞춰 그 나라와 어울리는 복장으로 현장감을 전한 것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그 의상을 어떻게 입게 됐는지, 그 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테네 올림픽 당시 한달간 현장에 있었던 이야기를 읽어보니 당시의 방송이 새롭께 느껴졌다. 이 밖에 방송계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생각들, 황우석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PD수첩과 MBC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 한번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가장 뭉클했던 건 맨 마지막 에피소드인데, 자신의 어려운 처지가 알려져서 도움 받는 것보다 자신과 자신 집안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중요했던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이 아팠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쳐서도 안 되지만 반면에 누군가를 쉽게 동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참 어렵다. 지속적이지 않은 관심은 오히려 무관심만 못 하다는 고아원 아이들의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결국 꾸준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을 통해 유추한다면 김주하는 굉장한 일벌레인 듯하다.(거야 뭐 이쪽 계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 보이지만) 끈기도 대단하고 열정도 넘친다. 그렇지만 불 같은 성격이라기보다 굳이 비유하자면 쇠가 아닐까 하는데, 달구어진 쇠를 담금질 할 수록 강해지는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받았다. 그렇다고 책을 읽고 김주하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다만, 피상적으로나마 그녀가 하고 있는 일, 업계 상황, 방송에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애환, 그리고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는 데 의의를 둔다. 머릿말에서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원래대로 책을 마흔 이후에 냈다면 내용면에서도 생각면에서도 좀 더 깊이 있고 알차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현 정부 들어서 각종 논란에 자주 휘말려서 꽤나 지쳤을 테고, 어떤 면에서는 실망한 부분도 있지만, 꾸준히 자신의 일에 정진해서 마흔이 넘고 쉰이 되어도 보도인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한다.


덧, 보기엔 부잣집 딸내미 같은 이미지에 뭔가 백도 빵빵할 것 같은데 사실은 정반대였다는 것과, 어떻게든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 그만두고  좀 더 입사율이 높은 대학에 다시 시험쳐 들어간 것을 보면 사람은 역시 절박한 목표가 있어야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
2010/02/18 19:20 2010/02/18 19:20
(...전략)

 우리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아직 밤이 되기는 일러, 손님은 우리와 그 사람들뿐이었다. 아마 남자는 이십대 후반, 여자는 이십대 중반쯤, 둘 다 인물도 괜찮고, 도회적이며 깔끔한 옷차림을 한, 아주 스마트한 분위기의 커플이었다.

 와인을 고르고, 음식을 주문하고, 그것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들었다기보다는 저절로 들려 왔지만), '이 두 사람은 깊은 사이가 되기 직전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내용적으로는 극히 평범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목소리의 톤으로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도 일단은 명색이 소설가이니, 그쯤의 남녀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남자는 '슬슬 꼬셔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고, 여자도 '그냥 넘어가 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잘 되면 식사 후 어딘가의 침대로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테이블 한가운데 페로몬의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 쪽은 결혼한 지 30년이나 된 탓에, 과연 페로몬 같은 것은 그다지 떠돌지 않았다. 아무튼 행복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란 것은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즐겁다.

 그러나 그런 약속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분위기도 프리모 피어트가 나왔을 때 글자 그대로 운산무소(雲散霧消)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츠르릅 츠르르릅!' 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파스타를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압도적인 소리였다. 계절이 바뀔 때 한번, 지옥의 대문이 열렸다 닫혀질 때 한번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 그 소리에 나도 얼어붙었고, 아내도 얼어붙었고, 웨이터도, 소믈리에도 얼어붙었다. 맞은편 여자도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숨을 삼키고, 모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인 남자만은 무심하게, '츠르릅, 츠르르릅' 하고 너무나도 행복한 듯이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그 커플은 그 후 어떤 운명을 거치게 되었을까. 지금도 가끔씩 걱정이 된다.



<무라카미 라디오> '리스토란테의 밤'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권남희 옮김, 까치 




하루키에게 시큰둥하던 나를 관심 급상승하게 만든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중고샵에서 별 생각 없이 산 책이었을 거다. 저 부분을 읽고 정말로 미친 듯이 웃어재끼며 데굴데굴 굴렀다. 눈물까지 나왔다. 따지고 보면 웃기려고 작정하고 과장되게 쓴 글도 아닌데 왜 그렇게 웃어댔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저 글을 읽는 순간, 저 시트콤 같은 상황이, 그리고 담담하게 할 말 다 하는 하루키의 모습이(정확히는 프로필 사진 속의 어쩐지 뚱한 하루키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말로 압도적인 소리였다. 계절이 바뀔 때 한번, 지옥의 대문이 열렸다 닫혀질 때 한번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 이 부분이 압권이다. 원서에는 '혼또니(정말로)'가 두번이나 반복돼 있을 정도로 '츠르릅' 소리의 심각성(?) 이 폭발하는 지점이지만 나는 웃음이 폭발했다. 그 후에는 이런 사소한 거(?)에 그렇게 포복절도하며 웃는 내가 웃겨서 웃고, 생각하니까 계속 웃기고, 그래서 또 웃고...... 하여간 혼자서 키들키들 얼마나 웃었던지 모른다. 지금도 저걸 읽으면 괜히 입꼬리가 스르르 말리면서 또 웃게 된다. 씰룩씰룩. 가만히 있질 못한다.

때때로 소설보다 에세이 쪽이 더 정이 가는 작가들이 있다. 예를 들면 김영하라든가. 하루키도 내게는 그런 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초년생 때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은 어쩐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물론 요즘은 그것도 아니지만), 에세이는 뭘 읽어도 다 재미있다. <무라카미 라디오>를 시작으로 국내 출시된 에세이들은 거의 전부 긁어모아댔다. 모으는 김에 소설이랑 원서도 사고. 뭔가에 한번 꽂히면 콜렉션 만드는 병적인 집착도 한몫했지만, 하여간 하루키의 에세이들이 은근히 내 취향이라 정신 차리고 보면 장바구니 고고!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책 정리를 하고보니 하루키 책만 번역본, 원서 합해 40권이 넘었다. 크악. 언제 이렇게.......;;;;;

작가들은 참 신기하다. 그러니까...음....대부분의 작가는 에세이도 좋은 편인데 그게 참 신기하다는 거다.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의 공력이란 그 정도는 기본인건가?+_+ (에세이보다 소설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이것도 취향에 따라 나뉜다) 붓가는 대로 술술 풀어내는 글 같은데도 어쩜 이렇게 깔끔하고 재미나게 군더더기 없는 글이 많은지. :-) 그 짧다면 짧은 글에서 오만 가지 생각을 파생시키는 것을 보면 과연 글쟁이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거? (이따금 블로거들 중에서도 신변잡기가 아니라 에세이/수필 같은 글을 쓰시는 분을 보면 참 부럽다. 나야 신변잡기도 좋아하지만. 헤헤)

그건 그렇고, 위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도 저 커플이 어쩐지 신경 쓰이는 걸? 과연 그들의 미래는? 사실 99%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도 1%의 비호감 때문에 쫑나는 게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걸 생각할 때 어째 내가 다 걱정이 된다. 예전에 <올드미스 다이어리>였나. 오윤아가 소개팅을 했는데 남자 쪽이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외모 좋고 다 좋아서 주변에서 잘 해보라고 막 부추기던 에피소드가 있었다.(정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오윤아가 그 남자에게 작업을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어느 순간 발견하고 말았다. 그 남자 귓속에 든 엄청난 귀지들을.(오.마이.갓!) 심지어 바깥까지 튀어나온 귀지들에 식겁을 하면서 미자와 지영에게 얘기했는데, 그 정도 조건이면 귀지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해서 참으려고 수없이 노력해봤지만, 결국 그게 안 돼서 남자에게 귀 좀 파라고 소리치면서 둘의 관계가 쫑나는 에피소드였다. 위의 두 커플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위의 두 사람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아니지, 혹시 두 사람의 경우 스파게티만 안 먹으면 해결될지도!!! (평생 면 종류는 안 먹는 거지! 면 음식이 발달한 일본에서 그건 좀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근데 만약에 다른 음식도 쩝쩝쩝, 우걱우걱, 추르릅 이렇게 (하루키 표현에 따르자면) 남들이 다 얼어붙을 정도의 지옥문 열리는 소리에 맞먹는 효과음을 내면서 먹으면.......? 아아, 더 이상 상상하지 말자. 그냥 두 분이 알아서 하셔야겠다.;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글은 단순하게 짧고, 전하는 메시지는 콩트만큼이나 단촐하다. 음식, 패션, 음악, 사진 등등... 하루키가 즐겁게 쓸만한 소재들. 제목을 '무라카미 라디오'라고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른한 잠을 쫓아내는 데는 명수인, 잡담 좋아하는 DJ처럼 그는 시종 수다스럽게 떠든다. 아기자기한 즐거움이다.
2010/02/02 22:00 2010/02/02 22:00
성녀의 구제
7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


최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확실히 '어떻게'에 집중되어 있다. '누가'그랬는지는 소설 머리에 충분히 암시를 주고, '왜'에 대한 단서는 중간중간 흩뿌려 놓는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트릭을 추리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독자가 소설 속 해결사들과 같은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는 효과를 주지만, 방심하면 오히려 작가의 의도에 쉽게 휘말릴 수 있기도 하다. 그렇게 포커스를 맞춰놓을 테니까. [성녀의 구제]를 읽으면서 거기에 당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엔 작가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앞질러 가고 싶었달까(...) 그래서인지 집중력이 높아져서 순식간에 책 한권이 끝나긴 했다.

핏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요시다카는 아야네와 결혼하기에 앞서 조건을 달아둔다. 1년 내에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건.(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쌍방합의에 의한 계약결혼은 봤지만 그것도 아닌데 결혼을 하면서 미리 이혼조건을 걸어둔다니 뭐냐 이 남자...;;;)  그걸 받아들이는 여자는 또 뭔가? 1년 내라면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을거라는 생각과 설사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그 때문에 헤어지지는 못할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만큼 요시다카가 좋았나? 아무튼 아야네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시간은 순식간에 1년이 흐른다. 소설은 그 1년이 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내심 뜨악한 건 이 남자가 가진 결혼에 대한 관념(남자의 표현대로라면 '신념')이다.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이혼이라니...;;; 결혼이란 무릇 사랑을 기반으로 평생의 동반자와 꾸리는 삶 아니던가?(교과서적인 정의라 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결혼해서 노력했는데도 아이가 안 생겨서 가정 불화가 이어지고, 더 이상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는 설정은 많이 봐왔어도, 이런 식으로 조건까지 걸어두고 결혼을 한다는 설정은 처음 본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결혼 생활 자체도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하는 요시다카에게 '아이'란 남녀의 결혼으로 태어난 축복받은 생명체가 아니라 그토록 강조하던 '라이프 플랜'의 일환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만으로는 가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요시다카는 부부가 아이를 낳아 아빠와 엄마가 되지 못하면 그 부부는 평생의 반려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오마이갓!

그런 요시다카가 죽어버린다. 발견자는 아야네의 제자이자 요시다카의 숨은 애인인 히로미. 독자에게 제시된 단서로는 아야네가 유력한 용의자다. 자,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죽였는냐인데...... 여기서부터 독자는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형사 구사나기와 우쓰미 가오루, 그리고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 [용의자 X의 헌신]이나 [탐정 갈릴레오], 혹은 [예지몽]을 보았다면 이미 익숙한 이름들일 테다. 물론 우쓰미는 첫등장이지만 이미 드라마와 영화를 본 나로서는 익숙하고도 남는 인물. 소위 '갈릴레오 시리즈'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선 '용의자 X의 헌신 시리즈'라 불리는 모양이지만) 제목에 비하면 설정 자체가 호기심이 동한다거나 호감(?)이 가는 게 아니어서 처음엔 조금 시큰둥하게 읽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답게 읽힘새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좋아서 지루할 틈 없이 진도가 쑥쑥 나간다. 거기다 내가 유가와를 비롯한 갈릴레오 시리즈의 인물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재미는 느낄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이미 영상화된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드라마/영화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다보니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1. 우쓰미 가오루의 경우, 드라마/영화에서는 열정은 넘치나 논리와 경험이 부족한 신출내기 형사로 가끔 귀엽기도 하고 어설픈, 그래서 더 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책에서는 신입이지만 당차고 관찰력과 감이 뛰어나며 고집이 센 캐릭터다. 좀 더 쿨한 커리어우먼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드라마의 그녀를 생각한다면 언뜻 매치시키기 힘들다. 만약 시바사키 코우가 책 속 캐릭터 그대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무... 무섭다. 그 흑단 같은 머릿발 휘날리며 시니컬하게 사건 수사하고, 얼굴의 1/3은 됨직한 큰 눈으로 범인을 노려본다고 생각하면...... 으...으스스해.

2. 구사나기는 영상에서가 좀 더 느물느물하고 베테랑인 느낌이다. 책에서는 진지하고 순수한 면이 더 부각된다. 그래서 아야네에게 한눈에 빠져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부분에서는 좀 억지스럽기도 했는데, 한눈에 반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3. 우리의 유가와 교수! 우리나라 출판 시기가 좀 꼬여서 그렇지 원전은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다음으로 [성녀의 구제]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유가와의 캐릭터는 흔쾌히 사건수사에 협조했던 전작들이 아닌 [용의자 X의 헌신]의 마지막에 맞춰져 있다. 덕분에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피하려하고 따라서 구사나기와의 관계도 조금은 소원해진 상태인데, 우쓰미의 깜찍한 계략 내지 부탁으로 사건에 얽히게 된다.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라 그런지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지만 사람 약 살살 올려서 뭔가를 실토하게 만드는 재주는 여전해서 은근 귀여웠다. 교수님~


내용을 파고들어가보면, 개인적으로 [성녀의 구제]는 전작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에 그친다. 앞서도 말했지만 설정에서 이미 기대가 꺾였고, 반전에 이르렀을 땐 트릭의 전부는 아니어도 핵심을 파악해버려서 김이 새버렸달까. 숨겨진 관계 설정도 어째 좀 식상하고. 그래도 제목인 '성녀의 구제'가 가진 의미 하나 만큼은 나름대로 높은 점수! '성녀'와 '구제'가 각각 중의적으로 쓰이면서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부분을 노렸는지 책의 앞부분에 인쇄된 자애로운 성녀의 사진이 뒤에서는 흑백반전이 되어 어쩐지 흉하고 무섭게 변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백마산장 살인사건] 리뷰의 끄트머리에 이런 글을 써놓았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다보면 가끔 드는 생각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자'를 엄청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백야행>이나 <환야>도 그렇고 <방과 후>나 <회랑정 살인사건>때도 그렇고, "여자란 무서운 존재야", "여자는 교활해", "여자의 감성은 참 이상해" "여자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야" 라는 걸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악녀 캐릭터를 부각시고, 때로는 평범한 여성이 보이는 의외의 행동을 묘사하며, 또 때로는 매우 안타까운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작품을 통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자신이 수집한 사례를 작품에서 선보이거나. 그리고는 그런 여자에게 휘둘리는 남자들을 바보로 만들거나 불쌍하게 만들어 동정을 유발하기도 하고, 원인은 짐승 같은 남자에게 있다며 동족 혐오의 정서를 드러내기도 한다. 어쨌든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는데(초기 작품일수록 더), 그래서 남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도 주체는 여자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좀 묘한 기분이 든다.

[성녀의 구제]를 읽으면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는 아예 인물의 대사를 빌어 직접적으로 표현을 한다. 여자란 참 무서운 존재라고. 모순적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생각난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내가 빌려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몇 권 읽고 "이 작가는 왠지 여자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거나 어린 시절에 엄마의 사랑에 굶주렸던 게 아닌가 싶어."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여쭤보았는데, 여주인공의 행동묘사나 대사에서 작가의 적의가 느껴질 때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냥 흘려들은 이야긴데 이 책을 읽으며 왠지 그 생각이 났다. 아야네가 무섭도록 슬프고 공허했다.



덧)
+ 괜히 웃음났던 장면 : 우쓰미 가오루가 전철에서 듣는 노래는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곡이었다. 드라마/영화에서 유가와 마나부 역을 맡았던 배우가 '후쿠야마 마사하루'였기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집어넣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거렸다.

++ 유가와, 우쓰미 가오루, 구사나기, 데이도 대학을 '유카와', '우츠미 카오루', '쿠사나기', 테이토 대학'이라고 고치고 싶은 충동! -_- 하긴 뭐 그렇게 따지면 먼저 히가시노 게이고부터 '히가시노 케이고'로 바꿔야겠지만. 흣.
2010/01/24 03:13 2010/01/24 03:13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8점
고수민 지음
은행나무


'이런 식의 어학공부에 관한 책은 남부럽지 않게 읽어봤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실력은 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누군가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게 하는 혼잣말 같은 건데, 사실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읽기만 하고 제대로 (따라)하지 않으니까. 늘 그렇지만 이런 식의 방법서라든가 내용은 좀 다르지만 (소위) 자기 계발서 같은 것들은 읽을 당시에는 의욕이 불끈불끈 샘솟지만 책에서 손을 놓는 순간, 순식간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면서 그때부터는 분석의 단계. 이 사람은 자기 잘난 척만 한다는 둥, 이 사람은 원론적인 얘기만 잔뜩 한다는 둥, 이 사람은 너무 무식한 방법을 말하고 있다는 둥,...-_-;;;  긍정적일 경우에도 저자를 믿고 따라하는 건 길어봐야 작심삼일이요, 짧으면 작심삼초도 허다하다. 결국 실제로 공부하는 방법은 결국 원래 해오던대로가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다름 아니라 '내 생애 마지막 영어 공부법'이란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저자인 고수민 씨 역시 이런 식으로 영어공부방법서란 방법서는 남부럽지 않게 읽어본 사람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왜 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 중에 하나다. 물론 지금은 책을 냈으니 반대의 입장이 되버렸지만, 공통분모는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자신있기에 '내 생애 마지막...'이란 말을 달았나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책을 펼쳐드니 영어공부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영어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한글만 빼곡하다. 얼래? 특이하긴 하네?

책은 아주 주변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가장 처음에 하는 얘기가 다중언어 구사자의 허상(?)에 관한 내용인데, 이런 얘기를 누군가 이렇게 콕 집어서 얘기해준다는 게 한편으로 참신했다. 다중언어 구사자란 모국어 외에 다수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이민 1세대, 1.5세대, 그리고 2세대 이후로 나누어서 얘기한다. 1세대는 외국어 실력은 좀 모자라지만 모국어에 대한 기반이 확실히 잡혀있고, 1.5세대(어린 시절 이민 간 경우)는 외국어 실력은 1세대보다 괜찮으나 모국어 실력이 그 나이에서 멈춰버린다. 둘다 어중간하달까. 마지막으로 2세대는 당연히 외국어 실력은 월등하나 모국어 실력은 아주 낮다.(물론 2세대의 경우 대개 외국어 자체가 모국어가 되겠지만;) 제 3자가 보기에 이민자들은 어쨌든 모국어도 할 줄 알고, 외국어도 잘 하니까 두 가지 다 완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 허상을 단적으로 집어준다. 이런 얘기가 단순히 '그 사람들 너무 부러워하지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국어란 게 단순히 말을 할 줄 안다고 끝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민 2세대의 경우 네이티브와 흡사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바로 문화와 역사다. 말이야 네이티브와 큰 차이가 없겠지만, 부모 이전 세대부터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아왔던 사람과 이민 2세대는 문화와 역사를 받아들이는 범위와 깊이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모르지만 글을 써보면 그 역량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 '뭐 어쩌라는 말이냐?' 싶어서 짜증이 슬며시 일었는데, 그 순간 독자의 심정을 알았는지 저자가 말하길, '외국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니 현실을 충분히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란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않나? 외국어의 어려움을? 그러나 조금 더 끈기있게 읽어보면 저자의 진심을 알 수 있다. 현실을 충분히 안다면 '이렇게만 하면 누구만큼 할 수 있다'나 '쉽게 공부하는 외국어' 같은 문구에 속지 말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런 식의 쉬운 외국어(영어)가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다. 외국 나가서 영어 한마디 못해도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와 여행 가이드 하나면 외국 사람들도 충분히 알아먹는다. 그렇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거다. 여기서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데, 아마 이 책이 전하고 싶은 가장 핵심 생각이 아닐까 한다. "돈 쓰는 영어는 쉽다. 하지만 돈 버는 영어는 어렵다."

이 말은 결국  쉽게 공부할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쉽게'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부하는가이다. 이 책은 여기에 대한 조그마한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뉴욕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저자는 '돈 버는 외국어(영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미 몸으로 체험한, 그리고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위의 말이 더욱 더 와닿았다. 이미 저자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용이고 나도 책을 보기 전 몇 번인가 들어가서 봤지만 '정리'와 '편의' 차원에서 책으로 보는 게 훨씬 좋았다. 많은 부분 이미 알고 있는 얘기고 또 상당 부분 원론과 원칙을 얘기하고 있지만,  '나 이렇게 성공했어요!' 혹은 '나처럼만 하면 잘 할 수 있어!'류의 잘난 척이 아니라 '이러면 좀 더 낫지 않을까요?'하고 넌지시 던져주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솔직한 점도 마음에 들고. 사실 방법적인 조언이라기보다 영어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외국어에 대한 멘토로서의 기능이 더 훌륭한 책이다.

우리는 이미 외국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끈기고, 인내심이다. 자신의 방법을 믿고, 자신의 방법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고쳐나갈 수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다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 좀 한다는 사람들은 남의 방법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너네가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쉽게 얘기하는 경우도 봤다.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다른 방법들에 대해서 함부로 소용없다고 얘기하지 않아서이다. 다만 어느 것부터 해야할 지 우선순위를 정해준다. 예를 들면 '영화로 하는 영어공부는 초보자가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후 이러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해보세요'라든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로 된 원서만 계속 읽는 것은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처음에는 영한대역 교재가 교정을 해줄 수 있어 더 좋은 점이 있다'든지 하는 것들. 사실 영한대역서 읽는다고 하면 무시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이런 식의 조언이 얼마나 고맙던지. 이 밖에도 라디오로 하는 영어공부의 좋은 점, 원서를 읽는 좋은 방법, 토익·토플 위주 영어공부의 폐해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EBS 라디오 영어를 듣고 있는 중이다. 출근이 늦은 편이라 아침 7시 20분에 부시시 깨어나 녹음 버튼 눌러놓고 비몽사몽 듣지만, 그 와중에 따라하며 들었더니 벌써 몇몇 구문은 저절로 외워져서 내심 뿌듯하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되었고 그 사이 며칠은 못 들었지만 인터넷에서 다시 듣기 구매해서 들으며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나름대로 느낀 점이 많이 이번엔 작심삼일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데, 사실 크게 자신은 없다.(워낙 포기한 전적이 많아서 -_ㅠ) 이 책이 정말로 '내 생애 마지막 영어공부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몇몇 말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힘을 얻으려고 한다. Thank you!
2009/11/09 02:17 2009/11/09 02:17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10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이레


케이트 윈슬렛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하게도 그 때문에 이 책을 샀다. 동명의 영화로 각색된 <더 리더>의 여주인공이 그녀이기 때문에. 게다가 상복 지지리도 없던 그녀가 이 영화를 통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은 물론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기 때문에. (물론 골든글로브에서도 주연상을 받아 2관왕이지만, 그건 별개의 작품으로 받은 것이므로 논외로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마치 의무인 양 원작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국내 개봉도 앞두고 있었고,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이미 받은 골든글로브 수상을 계기로 출판사에서는 대대적인 할인 이벤트를 내걸었다. 이 기회를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재빠르게 사다가 고이 책장으로......(응? -_-;)

아니 그게……, 아무리 케이트 윈슬렛이라지만 어두컴컴한 배경에다 욕조에 고즈넉히 앉아 있는 그녀의 상반신 사진 하나 떡 걸어놓은 표지는 독자로서 좀처럼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단 말씀이지……;;; 뭔가 되게 무거울 것 같고, 지루할 것 같고, 그래서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일 거라는 느낌마저 스멀스멀. 가지고 있는 사전정보도 열 다섯 소년과 서른 여섯의 여인이 등장한다는 정도의 관계 설정밖에 몰랐기 때문에 지레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다. 단순히 사회적 통념상의 터부라기보다 그 왜, 옛날에 나름대로 센세이셔널 했다는 '가정교사'던가, '과외수업이'던가 아무튼 그런 영화가 생각나면서 성적으로 지나치게 부각된 작품이 아닐까 싶어 괜히 걱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정작 그 영화를 본 적도 없으면서 이미지는 하염없이 나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산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케이트 윈슬렛이 주인공인 영화의 원작이라서 산 거다.♥ 아, 제목과 함께 부제로 붙은 '책 읽어주는 남자'에 몇 가닥의 희망을 걸기는 했다. '~하는 남자' 혹은 '~하는 여자' 같은 제목을 출판계에서 하도 남발하는 바람에 이젠 식상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밑줄 긋는 남자'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생각하면 그래도 기대를 걸어봄 직한 제목이니까.


이야기는 영화화 하기 딱 좋은 3막 구조로 이루어진다.

먼저 1막. 작품 초반, 예상에 빗나감 없이 에로틱한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적나라한 묘사는 아니지만, 남자 주인공 미하엘의 시점에서 비쳐지는 한나의 모습이나 정사 장면, 그리고 그 전후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어떤 의식은 거추장스러운 수식어가 없어서 오히려 더 에로틱하고 뜨거웠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소년과 심중을 알 수 없는 여인은 제 3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강력하게 부채질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 행위가 천박해 보이지 않은 건 미하엘과 한나의 만남이 육체적 가까움 만큼이나 정신적으로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미하엘의 세계는 한나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그가 그녀에게 느낀 감정이 수줍은 사랑인지, 일말의 동경인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인지 그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한나를 만나고 난 뒤 그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미래는 한나에 의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학교보다 그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미하엘에게 격렬하게 화내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한나의 반응은 미하엘로 하여금 미친듯이 공부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그로 인해 그를 보는 외부의 시각도 변해간다. 가족에게는 철든 아들내미, 학교에서는 맘잡은 모범학생. 게다가 미하엘이 일찍이 성숙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덕분에 그에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는데,이를 테면 또래들이 보기에 미하엘은 이미 '어른 남자'에 가까운 것이다. 쉽게 병에 걸리는 허약하고 나약해뵈는 이미지는 어느새 그렇게 탈바꿈한다.

1막에서는 왜 이 작품이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인지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기도 하다. 한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랑의 행위 전에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그들 사이에서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 되는데,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잠시 같이 누워 있기'로 이어지는 이 의식은 그들을 타인과 구별짓는 결정적인이유가 된다. 앞으로 이어질 사건의 시작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나가 왜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그 이유가 2막에서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밝혀지는데다 굉장히 극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는 데에 있다. 이미 반은 짐작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까지 알 수 없던 한나의 감정들이 순간 봇물터지듯 내게 밀어닥쳐서 혼란스러웠다. 그랬구나…….

그런 만큼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2막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들에게 한껏 입체감을 불어넣는 것도 2막에서 밝혀지는 비밀들 덕분이다. 약간 특별한 관계 설정은 2막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되고, 작품 전체에 무게감을 부여한다. 그 전까지 별로 느끼지 못한 시대감이 느껴지는 것도 2막을 통해서인데, 그도 그럴 것이 홀로코스트라든가 2차 세계대전 후의 전범처리 문제 같은 이야기가 나오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래서 그 전까지는 그저 영미문학 쯤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2막부터는 확실하게 독일문학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독일 작가가 아니면 쉽사리 다룰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유럽인이 아니라도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 현대 독일사와 유럽사, 나아가서 세계사에서 느껴야 할,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농축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슐링크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섣불리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짓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작가에게 감동받았다면 내가 너무 오버인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저력이란 3막에서의 통합과 마무리에서 오히려 더 빛을 발하니까. 내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릴 시간도 없이 시간은 유수 같이 흘러간다. 한나와 미하엘의 의식은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시간을 건너 뛰어 다시금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하엘의 자의에 의해서. 미하엘은 한나를 위해 테이프에다 책을 낭독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 옛날 한나가 사라지기 전 먼저 그녀를 배반했다는 죄책감, 그래서 그녀가 사라져버렸다는 자책감, 하지만 그 이후 대학 시절에 드러나는 그녀의 행적에 대해 오히려 내가 느낀 배신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과 연민까지 그 의식에는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과 지난 시간이 녹아있는 것이다. 그렇게 또 10년. 아쉬운 것은 역시 최후에서 조금 앞선 그녀와의 만남에서 그가 한 말이다. 나는 '그 말' 때문에 한나가 마지막을 그렇게 결정짓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한나를 배반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껴왔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한 행동에 괴로워했다. 아마 그 죄책감과 괴로움이 한나와의 인연을 유지시켜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로서는 한번도 배반 따위 하지도 당하지도 않았다. 그 만남에서 그가 한 '그 말'을 제외한다면. 1막에서 그와 그녀의 미미한 어긋남이 3막에서 그렇게 커다랗게 형상화되어버렸다. 미하엘은 그녀를 배반하지 않았지만 결국 배반해버리고 말았다. 슬픈 이야기. 한나가 미하엘의 세계에서 다시 사라지고, 그녀가 있던 방과 소품들을 들여다보며 그가 참은 눈물은 결국 그제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그녀를 배반했다고 느낀 데에서 오는 진짜 죄책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혹은 괴로움.

시간이 지나 미하엘이 한나의 부탁을 들어주며 작품이 마무리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죄책감과 용서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도 강요할 수 없고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것들에 대해.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되어버린 그것들에 대해. 미하엘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애당초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한 까닭은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까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중략)... 나는 우리의 이야기와 화해했다. 그러자 우리의 이야기는 되돌아왔다.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게 더 이상 슬픔을 주지 않을 정도로 둥글고, 완결되고, 나름대로의 방향을 지닌 모습으로. ...(중략)...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썻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말 부분에서 많이 놀라고, 또 울었다. 예상하지 못했고 그런 만큼 오히려 와닿았던 결론이라서. 슬프다기보다 안타까웠고, 홀가분하다기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늘 이런 식의 서사에 약하다. 방대한 시간을 담고있는 소설은 그 시간의 무게가 곧 삶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그 땐 모든 시점을 한나에게 맞춰서 읽을 생각이다. 그녀의 인생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 지켜보고 싶다.



덧,
1. 아아~ 스포일러 발설 안 하고 돌려서 리뷰쓰려니까 힘들구만. 내용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 혼자만 아는 얘기 한다'고 화낼 것 같아.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_ㅠ 책 완전 좋으니까 꼭 읽어보셔요~)
2. 영화가 개봉했을 때, 아직 책을 안 읽은 상태라 책 읽고 가려고 미루다가 영화를 놓쳤었다. 이후로 잊고 있었고...;;; 이제야 제대로 영화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월급 받으면 DVD 질러야겠다. 케이트 언니 기달료~♥
2009/11/08 04:24 2009/11/08 04:24
세계의 끝 여자친구
8점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때는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 근처의 한 도서관에서 나는 800번대 코너를 서성이고 있었다. 대개는 도서관에 갈 때 미리 읽을 것을 정해놓고 가지만, 가끔은 이런 식으로 아무 코너에서나 제목을 따라 이동하다가 인연이 닿는 책을 고르기도 한다. 그 날은 800번대였다. 국내에 있는 대부분의 도서관은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책을 분류하는데, 이에 따르면 800번대는 문학도서를 뜻한다. 나는 그 문학 코너에서 처음 김연수를 만났다. 제목은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나는 그 책을 울면서, 웃으면서, 감동하면서, 때론 울컥, 때론 씁쓸해 하면서 그렇게 읽었다. 그 단정한 문장들이 내 안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그땐 그랬다고 기억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김연수를 기억하게 됐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었고, 그리고 그의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 모았다'는 것이다. 참 이상도 하지, 신간이 나오는 족족 사면서 그 이후로 나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예쁘다고 사서는 고이고이 아끼다가 결국 전시용으로 전락하고 마는 엄마의 예쁜 그릇 같은 경우일까? 그치만 '아끼다 똥된다'는(>_<) 모님의 말처럼 나는 어쩜 그의 책을 아껴만 두다가 썩혀버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읽기를 두려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높은 기대 심리로 지레 실망하고 싶지 않은 데에 대한 방어기제 같은. 그러던 내가 이번에 나온 신간은 왜 이렇게 (비교적) 빨리 읽어버렸는지, 역시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저 서점에서 본 꽃분홍 표지가 내 시선을 끌더라고, 띠지인지 표지인지 모를 사진 속  여성의 감춰진 얼굴이 보고싶더라고, 바람에 흩날리는 그 풍성한 머리카락과 반쯤 몸통을 튼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가 궁금하더라고, 오직 그렇게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쳐든 건 지하철에서였다. 평소라면 버스를 이용하지만 퇴근 후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던 참이다. 고작 9개의 그 짧은 구간 사이의 시간이 무료해 나는 아침에 가방에 넣어 간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몇 분 후 하마터면 목적지를 지나칠 뻔 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사실 내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조금은 지루하다거나 혹은 난해하다거나 그래서 재미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를 놓칠 뻔 할 정도로 몰입을 한 건, 아마 그 문체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분위기와 그로 인한 감정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책 읽기를 마칠 때까지, 아니 책을 덮고나서도 꽤 긴 시간 유효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읽는 내내 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감정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 예를 들면 외롭고 따뜻하다든지, 슬프고 웃긴다든지하는 것들. 이해가 안 가 고개를 갸우뚱 하거나 슬며시 짜증이 치솟다가도 어느 순간 공감해버리고 마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미미한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이 소설집의 참 맛일까? 9개의 단편을 다 읽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는 듯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허전해왔다. 그것은 여운일까?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다시 한번 책을 읽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상실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 지금 없는 누군가를 추억한다는  것은 늘 그렇지만 즐겁고 외로운 일이다.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웃음을 머금다가도 종국에는 지금 곁에 없다는 사실이 시리게 아픈 법이다. 케이케이를 그리워 하는, 그래서 그의 나라를 찾아 온 그녀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정작 날 울려버린 건 해피의 이야기였다. 특히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의 아파하는 소리를 절규하듯 따라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날 때부터 연약했던 그 작은 심장하나가 멈췄을 뿐인데 지구가 완전히 텅 비어버렸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아이가 군살처럼 느껴지던 나날들이 차라리 행복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가슴이 툭하고 떨어졌다. 몇 줄 안 되는 이 문장에서 해피의 고통이 내 것처럼 전해져왔다. 어떡해...어떡해...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그녀와 해피가 서로를 이해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통해 '자신'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상처가 아물듯 조금은 그렇게.

기억할 만한 지나침

10대의 여자(소녀가 아니다)란 타인은 쉽게 이해할 수도, 하려고도 해선 안되는 감성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긍정하고, 부수었다가 다시 완성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번데기를 탈피해 성충이 되어가는 나비처럼 단단한 외벽을 만들었다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두렵지만 반드시.

세계의 끝 여자친구

표제작이자 이 소설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예쁜 이야기다. 거창하게 생각했던 세계의 끝이 사실은 호수 건너 편 메타세쿼이아까지라는 것에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숨겨진 이야기가 마음을 적셔서 그 순간부터는 오히려 정말로 거기까지가 모든 세계의 끝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무 아래 묻힌 이야기는 마치 사랑의 전설 같았고, 마플 할머니 같은 희선씨와 순진해 뵈는 청년이 괜시리 마음에 들었던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아주 최근의 뉴스가 작은 소재로 차용되고, 관계 설정이 흔하다면 흔한지라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쉽게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래 전에 헤어진, 한 때는 연인이었던 사람이 생각났고, BGM으로는 왠지 김연우의 '이별택시'가 깔려야만 할 것 같은 이야기. 정말로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난 그 노래를 찾아들었고, 살면서 한번쯤 그 사람과 정말 우연히 마주치게 될 확률을 생각해보았다.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건 마지막 장에 인용되는 편지 문구일 것이다. 벌써 잊혀지고 있는 그 사건이 슬펐고, 벌써 잊어가고 있는 나여서 미안했다. 그래서 또 다시 눈물. 하지만 곧 이어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 마무리가 있어 마음이 따뜻했다. 다행이야.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에서 이미 접했던 단편이다. 두 번째 읽는 거라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난 이 소설 속의 두 인물이 참 좋다. 한 인물 혹은 사물에 대해 두 사람의 다른 시선이 결국은 각자의 이해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마음에 든다. 처음 만나 서먹서먹했던 공기가 훈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져서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될 것만 같은 느낌. 아, 그리고 역시나 사놓고 읽지 않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

한희정의 '휴가가 필요해'를 나른하게 흥얼거리며 읽었지만, 사실 내용은 어쩐지 미스테리했고, 그래서 가장 눈을 반짝이며 읽었던 단편이다. 휴관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어 어느새 도서관의 전설처럼 돼 버린 한 노인이 어느 날 익사체로 발견되었단 뉴스는 도서관 직원들에게 충격이자 이슈가 되기에 충분한 뉴스. 당연히 그 노인의 출신과 노인이 매일 보던 책들의 이력이 화제거리가 된다. 마치 영화 <러브레터>에서 '후지이 이츠키 독서 카드 찾기 게임' 같은 재미를 느낀 건 잠시, 로맨틱한 노인이었기를 기대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역사와 시대의 아픔이고, 한 인간의 고독과 고통이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웠던 단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난 이 두 단편에 대한 느낌을 좀처럼 정리할 수가 없다. 전자에 대해서는 머리 위로 부유하는 말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 하는 탓이고, 후자는 내 이해의 폭이 좁은 탓이다. 어렴풋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 말로 설명을 못하겠어.'라고 소심하게 중얼중얼.

달로 간 코미디언

마치 다큐나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라도 본 느낌이다. 한 희극인의 비극적인 인생 추적이랄까. 구성, 주변 인물, 클라이막스의 반전, 그리고 마무리까지 다 좋았다.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의 마지막 문장이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로 걸어갔다'인데, <달로 간 코미디언>은 마치 정적 속 진정한 소리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주며 끝이 난다. 혹은 암흑 속 빛으로. 이 단편에도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사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또한 현실의 인물이 이야기 속에 등장해 현실감을 강하게 부여한다. (난 정말로 희극인 안복남 씨가 있나 검색까지 해봤다;) 아,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안피디의 이름이 내 친구랑 똑같아서, 게다가 캐릭터마저 뭔가 비슷해서 정말 몰입해서 봤다. 책 내용 자체가 그 친구가 좋아할 타입이라 한 권 더 사서 선물로 줘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앞서 김연수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노력해야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맞는 말이다.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 봄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더하여 '우리'를 이해하게 되면 결국 '너' 역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외로움을, 쓸쓸함을, 그리움을, 방황을, 고통을 그려놓았지만 비관적이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담담하게 똑바로 맞서는 모습을 그려줘서 참 고맙다. 그래서 외롭지만 따뜻했고, 슬프지만 웃을 수 있었던 거였다.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절망하지 않는 게 핵심이라고 했는데, 어쩌나~ 난 이미 토닥토닥 위로 받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걸. 이제는 김연수의 책을 마냥 '사 모으는'게 아니라 '마침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세계의 끝은 실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다행이야. :-)
2009/11/03 00:02 2009/11/03 00:02
이왕 글 하나 올렸는데 그냥 나가기 아쉬우니까...
최근에 읽은 책들 목록만 대충 간추려 놓는다. (별로 없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출퇴근 길에 버스에서, 휴식시간에 짬짬이, 자기 전에 잠깐 보는 것 만으로는 크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주말엔 노느라;;;;)
여튼 8, 9월에 읽은 책들은 요 정도.
올 초에 세웠던 200권 읽기 목표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이 상태면 100권도 채우기 힘들 것 같다. ㅠㅠ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포부있게 세운 목표였는데... 힝.



백수생활백서/박주영 : 아주 좋았다. 정말로 진짜로 좋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듯한 주인공의 생활은 첫 문장부터 나를 잡아끌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첫 장의 내용은 수시로 내가 하고 다니는 말이었거든. 헌책방에서 싸게 산 게 미안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책. 기나긴 백수기간 동안 눈치밥만 늘어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에서 그 생활을 벗어나자마자 '백수'란 말이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책을 만난 것은 아이러니. 인용문이 반을 차지하더라도 순간순간 묘사되는 상황, 대화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근사하게 리뷰써야지'하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한 책은 꼭 리뷰 안(못) 쓰게 된단 말이야. ㅠㅠ


배려/한상복 : 예전에 한 절반 정도를 E-book 미리보기 이벤트로 보고 뒷부분을 계속 못 보고 있다가 얼마전에 동료 선생님이 빌려주셔서 봤다. 술술 잘 넘어가는 문장들이 피로를 덜어준다. 어디서 본 듯한 착한 결말, 모범 답안 같은 설정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 찡해지는 구석도 분명 존재한다. 자기계발서의 일종이겠지만 이야기 형식이라 부담없고, 무엇보다 자주 보면 수양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나름대로 좋은 책.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7 : 전체적인 만족도를 따지자면 몇 개월 전에 읽은 2005년 작이 더 좋은데,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7년 작이 더 많다. 김애란의 '도도한 생활'과 백가흠의 '루시의 연인'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천사와 악마 (전 2권)/댄 브라운 : 전형적인 댄 브라운 스타일의 소설. 그래서인지 초반에 진도가 안 나가서 애먹었다. 2권 넘어가니까 탄력이 붙더라. 많은 사람들이 '다 빈치 코드'보다 좋았다라고 하던데... 난 '다 빈치 코드'가 낫더라;;; '다 빈치 코드'에 나오는 작품이랄까 소도구들이 더 내 취향이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몇 권 읽다 보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파악이 금세 돼서 조금 맥 빠지는 감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전이 너무 시시해서 좀 실망. 그러나! 작가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두 번째, 세 번째 반전을 선사하며 진정한 의미의 반전을 노렸다. 그럭저럭 읽을 만한 책.


밤의 거미원숭이/무라카미 하루키 : 하루키의 글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 조합은 이런 잡담 같은 글들도 특별해 보이게 한다. 하루키의 별난 상상력은 시시한 일상도 독특한 에피소드로 만들어버린다. 그렇지만 '무라카미 라디오' 같은 에세이가 난 더 좋다.^^;

스토리텔링의 비밀/마이클 티어노 :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빌려 읽고... 결국은 사고 만 책. 강추다. 강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명쾌하고 간결하게 풀어낸 책이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뿐 아니라 영화를 좀 더 즐겁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시나리오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이든 드라마든 만화든. 하여간 좋았다.


밤은 짧아 걸어라 아가씨/모리미 토미히코 : 일본 잡지 '다빈치' 연말 대상이었나? 암튼 그 때 1위를 한 걸로 아는데,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독특해서 기억해 두었던 책이다. 제목 만큼 내용도 그에 부합한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대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한 남자와 옆에서 그렇게 알짱(...)대는데도 남자의 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어머, 선배 또 만났네요?"라고 천진하게 인사하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여기까지라면 너무 흔해서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지만 여기에 환상문학으로서의 특징이 접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킥킥거리며 읽을 만한 가벼운 소설. 그 와중에 혹시라도 남자 입장에 감정 이입해버리면 눈물 나는 소설.



제물의 야회/가노 료이치 : 지금 읽고 있는 소설. 페이지 당 글자수 엄청 많고, 페이지 캡숑 두꺼운데 정가 13,500원 밖에 안 하는(할인하면 더 쌈) 아주 바람직한 책. 아주 양심적인 출판사라고 어디 칭찬게시판에 추천해주고 싶다. 호호. 단 한가지 문제는 바로 번역. ㅠㅠ 실은 지난 겨울에 이 책 읽다가 100쪽 쯤 읽고 번역 때문에 포기했던 책이다. '내가 번역체에 이렇게 민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문장이라 읽다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길래, 짜증나서 덮어버렸던 책이다.(좀 야박하다 싶기도 한데... 도무지 적응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ㅠㅠ) 그치만 워낙 내용이 강렬해주셔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나길래 최근 다시 집어들었다. 현재 딱 지난 번에 읽은 만큼 읽었는데, 한번 경험해봐서 그런지 여전히 거슬리긴 하지만 내용이해만 되면 된다고 생각하고 유하게 넘어가고 있다. 흥미진진.



이 중에 몇 권은 새로 리뷰 쓸 예정.
아아, 밥먹으러 가야지.
2009/09/29 12:32 2009/09/29 12:32
악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한  일 년 전쯤에 100페이지 가량, 그러니까 첫 챕터까지만 읽고 덮어두었던 책이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오히려 흥미로웠음) 어쩌다보니 읽다만 책이 되었다. 어젯밤에 생각나서 다시 펴들었는데, 앞내용이 띄엄띄엄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 처음 읽었을 때나 다 읽은 지금이나 평소 요시다 슈이치에 대한 인상을 뒤집는 책이라는 것만은 변함없다. <동경만경>을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은가. '악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표지도 어찌나 강렬해주시는지, 한자 '악惡'자가 저렇게 크게 씌어져 있으니, 정말로 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 같다.-_-; 덕분에 막판에 흐름이 통속적으로 변해가도 끝까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제목과 디자인 덕이 크다.

내용은 여러모로 <모방범>이나 <골든 슬럼버>와 비슷한 느낌이다.(모방범에 더 가깝다) 범죄 사건 하나 발생하면 그 놈의 와이드쇼 카메라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건 여전하다 싶은 게 구역질이 다 난다. 알 권리 어쩌구 하는데, 그 알 권리를 위한 짐을 왜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의 주변인이나 심지어 피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인이 짊어져야 하는 건지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알 권리 이전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좀 지키고 알 권리 추구해라. 악의적으로 카메라 들이대면서 "심정이 어떻십니까?"라니. 그걸 몰라서 묻냐고 버럭 쏘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특종 하나 건지면 개떼 같이 달려들어 만신창이가 되도록 물어뜯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다시 한번 분노로 뭉글뭉글 솟아나는 장면. 그러면서 더 나올 게 없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다른 먹이 찾아가는 태도. 더 웃긴 건 거기에 편승해서 실컷 휘둘리는 일반인들. 그러나 과연 난 그렇지 않다고 완벽하게 자신할 수 있냐 하느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게 슬프다. 이 패배감.

<악인>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불편한 소설이다. 뚜렷하게 드러난 피해자와 가해자를 놓고, 어느 한쪽을 편들어 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었다면 어느 누가 피해자를 두고 '불쌍하다'고만 생각하겠으며, 또 어느 누가 가해자를 두고 '나쁜놈'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하면서 흔해빠진 원론 앞세우며 훈계하기도, 동정심에 사로잡혀  마냥 같이 슬퍼해줄 수도 없다는 게 작가가 노린 지점이 아닐까. 최초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지만 그 원죄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변수는 도처에 깔려있으며, 어차피 최종 행위자는 변하지 않으므로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 누구에게는 철천지 원수이자 악인인 사람이 누구에게는 마냥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그 모순점이 소설 <악인>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 과연 누가 악인일까요?" 하고 문제를 던져놓지만 논쟁만 있을 뿐 사실 해답은 없는 것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악인의 규정은 개인의 몫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기리노 나쓰오 정도의 신랄함과 차가움을 떠올렸는데, 알고보니 미야베 미유키 풍의 따스함을 견지하고 있어서 의외였다. 거기에 나름대로 수위 높은 성애묘사와 더불어 묘하게 애정소설의 분위기가 나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임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던데, 그말 그대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이 제법 있긴 하다. 문득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떠오른다. 물론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훗,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 좀 더 확실하게 와 닿는다. 동어반복이겠지만 <우.행.시>에서 윤수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여기에서도 느껴져서 그랬구나 싶다. 동정심의 방향이 문제였어. 결국 되돌아오는 것은 어쩌지 못할 결말 뿐인가 싶어 씁쓸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왜 이 소설이 인기있는지도 알겠다. 비극의 정서를 제대로 짚은 것이다.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아아, 이것도 저것도 모순 투성이로구나.


밑줄긋기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p.439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p.448
2009/06/08 22:42 2009/06/08 22:42
상복의 랑데부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이런 소설을 읽고나면 옛날 생각이 울컥 밀려와서 괜히 좀 그리운 심정이 되고 만다.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고전적인 영미 추리소설을 읽고나면 어릴 때 셜록홈즈니,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같은 소설 읽으면서 '나는 탐정이 될 거야'하고 호기롭게 말하고 다녔던  게 생각나서 부끄럽고 즐거운 기분이 된달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 탐정 같은 게 어디있다고. -_-; 책에 나오는 건 다 실화를 각색한 거라고 믿었던 때여서, 분명히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탐정이 있는 줄 알았지. 소설이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아예 생각도 못했나보다.

느지막이 눈 뜨자마자 가장 가까운 데 있던 책 집어서 읽었는데, 중간에 끊을 새도 없이 줄줄 읽혀서 다 읽고나니 점심시간. 이 책은 내용은 하나도 모르면서 제목은 눈에 자주 띄어서, 읽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읽은 것 같은 그런 책이었는데, 이번엔 진짜로 읽었으니 '나 읽었어요!' 라고 흔적은 남겨놔야지. 사실 그런 책 많다. 고전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어디어디 필독도서100선에 내로라 하는 고전이 주욱 실려있는 걸 보면, 내가 읽은 건 채 30권도 안 되더라. 근데 제목이랑 줄거리는 대충 다 안다는 게 고전이 지닌 아이러니지. 암튼 이 책도 추리 장르에서는 고전이라면 고전인데, 나는 (잘 알려진 소설만 아는) 여기저기 널린 스타일의 추리소설독자라서 작가 이름이 좀 생소했다. 알고보니 윌리엄 아이리시랑 동일인물이라고. <환상의 여인> 작가라니까 왠지 새로 보게 된다. (사실 <환상의 여인>도 읽지는 않았음. 명성만 익히 들었을 뿐)

이 작가 스타일 있다. 작품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 안에서 스타일은 확고하다. 사건하나 툭 던져주고 약하게 시작, 계단 밟듯이 착착 올라가서 드디어 평지를 만난 듯 편안하게 마무리. 크게 격정적이진 않지만 독자의 궁금증을 살살 건드려줘서 자꾸만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7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어서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개별 사건이 종결이 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인데, 모두 미해결로 끝나기 때문에 긴장감은 계속 이어진다. 발단이 되는 사건 말고, 본격적인 살인이 세 번 이어지면서 공통점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그걸 토대로 경찰은 나머지 살인을 막으려고 하지만 죽을 사람이 묘자리 찾아가는 데에야 별 수 있나. 독자는 마지막까지 같이 달릴 뿐이다. 범인이 어떻게 대상을 알고 꼬여내는지,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춰서 계획대로 처리를 하는지는 완벽한 미스터리. 심지어 피해자의 행동까지 예상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는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고전의 테두리 안이라 이런 것도 왠지 납득. -_- 요즘처럼 리얼리티 강조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이런 점도 분위기 있어보인다. 마지막 체포 땐 너무 급작스럽게 호흡이 빨라지는 감이 있었는데, 이미 본사건이 다 끝나버린 뒤라 질질 끄는 것보다는 나았을 수도 있겠다 싶고. 추리소설이면서도 묘하게 로맨스의 기운이 풍기는 소설이었다. 애초에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배경이 그랬기도 하고, 살해대상 선정과 그로 인한 효과(?)도 사랑을 모르는 남자라면 그리 효율적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희생자는 무고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비극이다-_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런 사람이 읽어야 한다.
예컨대, 높은 건물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거나 물 쏟아버리는 사람들, 한술 더떠서 일부러 그렇게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곤란해 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 자기가 한 사소한 일이 다른 사람한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거, 그게 자기한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걸 이 소설 보면서 좀 뜨끔해야 한다. 얼마전에 드라마보니까 고속도로에서 커피 컵을 휙 버렸다가 뒤따라 오는 자동차 앞 유리에 쏟아지면서 사고가 날 뻔한 장면도 있던데, 그러면 안 되지. 벌 받아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죽은 개구리 남편이 밤마다 꿈에 괴물개구리로 나타나서 잠 못자게 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구!

그나저나 이 소설을 읽고 생각난 또 다른 말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랄까? 혹은 머피의 법칙? -_-

고등학교 때 내 친구가 나한테 팔짱을 끼고 룰루랄라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데, 아 글쎄 새똥이 내친구 팔 위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_-; 보통 그런 상황이면 같이 새똥을 맞거나 그랬어야 하는데 정확하게 팔짱을 낀 내친구 팔위로만 떨어졌다. 팔짱 안 꼈으면 내가 맞는 거였는데, 팔짝 끼는 바람에 그 친구가……. 더 가관인 것은 친구 달래려고 비싼 즉석 떡볶이 시켰는데, 그거 만들어주는 점원이 실수로 국물을 왕창 튀기고 말았다. 근데 그것도 모조리 그 친구한테만 튀어서 그 친구는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는 거. -_-;;;;;;; 흰 교복에 누런 새똥도 모자라 떡볶이 국물이라니... 한참 민감한 고3때인데다 수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애라 그런지 "난 왜 이렇게 재수없는 거야!"하고 우앙~ 우는데, 뭐 할 말이 있어야지. (다른 친구는 그런걸로 우는 게 웃겨서 배꼽 잡고. 그 친구는 친구가 웃는다고 더 울고. 아주 난리 법석이었음)

아무튼 난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우연으로 시작한 사건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커져가듯 나로 하여금 잊혀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괜찮은 고전 추리소설이다. 이 번역본 초판년도가 무려 1977년이라는데(헉),  더 빨리 읽었으면 훨씬 재미있었겠지만, 더 늦지 않게 읽어서 다행이다. 다음은 <환상의 여인>. (근데 번역본이 왜 이렇게 많아? 고르기 힘들어. 끙 -_-;)


덧,
1. 맞춤법 오류 발견
이래뵈도(X) → 이래ˇ봬도(O) p.56

어제 읽은 책에 이어 연달아 틀려주시니,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건가 싶었다. 다행히 그건 아니고.
과연, 사전에도 틀린 보기가 나올 만큼 자주 틀리는 맞춤법이 맞구나 싶다.;
비슷한 용례로, 뵈요(X) → 뵈어요 혹은 봬요(O)

2. 제목은 언제봐도 참 독특하다. 읽고나니 더 독특해.
참고로 원제는 RENDEZVOUS IN BLACK.

3. 요정도 책 크기 사랑한다.(세로 20cm가량)
해문 문고본보다는 조금 크지만 이 정도면 손에도 잘 잡히고, 가방에도 쏙쏙 들어가고.
우리나라는 적정 수요가 못 돼서 문고본 시장이 생길려다 망했지만, 그래도 요런 책들 보면 문고본 시장이 좀 활성화되면 좋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출판계 사정 알면 암담-_-;
2009/06/07 12:44 2009/06/07 12:44
도쿄밴드왜건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그 시절 많은 눈물과 웃음을 거실에 가져다준 텔레비전 드라마에"

책 말미에 쓰인 헌사에서 알 수 있듯 홈드라마 같은 책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헌책방을 무대로 가족 4대에게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주내용이다. '도쿄밴드왜건'은 이 헌책방의 이름. 특이한 것은 3대째 주인이자 현 주인 홋타 칸이치(79세)의 부인 홋타 사치가 영혼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이런 사치 할머니의 시선으로 자식, 손주, 증손주의 이야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그려진다. '도쿄밴드왜건'이란 이름의 유래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유추할 뿐인데, 이 특이한 이름의 간판이 처음 거릴 때도 사람들은 특이하다고 입을 모았단다. 옛날 간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젊은이가 간판을 올려다보며 "건왜드밴쿄도?"하고 중얼거린 적도 있다는 얘기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

홈드라마답게 자극적인 내용 따위 없다.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 매일 펼쳐지고, 다만 4대라는 대가족이 모여살다보니 늘 시끌벅적할 뿐이다. 계절마다 사건·사고가 벌어지지만 그야말로 '에피소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라 근심, 고뇌라기보다 오히려 적절한 활력소가 된다. 약간의 미스터리는 양념. 그 왁자지껄한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역시 가족이어서일까. '둥글게 둥글게'가 모토인 평화주의자들의 이야기는 너무 도덕적이라 때로 지루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거지, 하고 내심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도시의 편리함과 스릴을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골의 느긋함과 정서를 동경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마음에 들었던 건 '헌책방'이 무대로 쓰인다는 점인데, 단순한 장치로만이 아니라 헌책방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서 묻어나오는 정취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일본도 요즘은 가업을 중시하는 풍조가 많이 사라지긴 했다지만 아직은 곳곳에 이런 가게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거의 1세기 가깝게 내려오는 가게의 모습은 헌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나로서는 신기하고 부러울 수 밖에. 이런 가게라면 선대의 영혼이 남아 수호신처럼 보호해주거나 지켜보는 것도 왠지 망상만은 아닐 것 같다.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행동할 때는 가족 단위가 된다는 것이 이런 대가족 홈드라마의 특징이자 한계. 절연한 '아미'의 친정 어른을 찾아가뵙자며 칸이치 영감의 명령 아래 가족 전체가 부산하게 예복을 갈아입는 장면은 무척 전형적이었다. 그나저나 아오와 스즈미의 결혼이 아무런 방해 없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게 좀 놀라웠는데, 따지고 보면 족보가 엄청 꼬이는 거 아닌가. 건너건너 반쪽짜리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친척인데, 저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결혼이 성사되다니 한국식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본은 사촌간에도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더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가 싶기도 하고.-_-

두세 시간이면 슥삭,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책이다. 단, 평소에 착한 가족 드라마 분위기를 싫어한다면 별로 권하지 않는다. 이후로 속편 격인 <쉬 러브스 유>도 나왔다던데, 칸이치 영감의 장남이자 왕년의 록커, 금발의 가나토가 늘상 왜치는 '러브'는 여전히 유효한가보다. 기회되면  읽어봐야겠다.


덧,
1. 맞춤법 오류 발견
이래 뵈도(X) → 이래 봬도(O) p.190, p.303


2. 기억에 남는 문구
아오는 아침밥을 먹고 잠시 쉬고는 곧장 돗자리와 대발을 꺼내 와서 마당에 깔았어요. 콘이 그 위에 그늘막을 치고, 책을 꺼내 와 그늘에서 말리려는 겁니다. 아주 낡은 책이 아니라면 그대로 한동안 내버려둬도 괜찮지만 개중에는 아주 오래된 값비싼 책도 있어요. 그런 책은 바람을 너무 많이 쐬어도 못쓰게 되니까 적당히 조절해주어야 한답니다. 별로 값나가지 않는 헌책은 대발 위에 그냥 툭툭 던져놓고, 값나가는 고서는 흰 면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다루지요. 앉은뱅이 테이블에 흰 천을 덮고 거기에 책을 가만가만 놓는 거예요. 그 다음 한 장 한 장 책장을 천천히 넘기면서 안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볍게 바람을 쐬어주지요. p.128~129 : 헌책방의 일과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좋다.

"마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어요."
그 기분 잘 알지요. 여자는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그런 기분을 잊고 싶지 않은 법이거든요. p.263 : 동감.

"잊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게 여길 다니고 있잖습니까. 책은 한 권 한 권 제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다. 돈을 마구 써서 사고팔고 해봤자 거기에 책에 대한 애정은 없다. 책은 물건과 다르다." p.326 : 후지시마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칸이치 영감의 책에 대한 마인드. 책을 읽는 행위나 책 자체를 유별나게 신성시하는 것은 싫지만, 수천 년 이상 내려오는 책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의 가치는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물건과는 다른 것이다.


3.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



미우라 시온, <월어>
교고쿠 나츠히코 <우부메의 여름>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두 책 모두 헌책방(고서점)을 무대로 한다.
각각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려지는 이미지가 판이하게 다르다.

<도쿄밴드왜건>의 '도쿄밴드왜건'은 따뜻하고,
<월어>에 나오는 '무궁당'은 시원하고,
<우부메의 여름>에 나오는 '교고쿠도'는 이(異)세계 같다.

작품 성격따라 나뉘는 이미지이기이기도 하다.
2009/06/06 12:36 2009/06/06 12:36




여행기나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대체로 마음이 들뜬다. 어디어디를 돌아다니며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노라, 하는 글들을 사진과 곁들여 읽다보면 당장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어디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발바리(...) 기질도 한몫하겠지만, 여행이란 모름지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법이다. 그리 거창하고 긴 여행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한번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관광이 아닌 여행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서 늘 어딘론가 떠나는 꿈을 꾸며 이것저것 계획을 세웠다 무너뜨렸다 한다. 아직 혼자서는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해본 적 없는 겁쟁이일 뿐이지만……. 그런데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고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벅찬 감동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위안을 얻은 것 마냥 편안하다는 느낌이 먼저였다. 아마 '산티아고'의 특성상 일반적인 여행보다는 순례의 느낌을 더 많이 전해주어서일 게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책 위에 손 얹고 명상에 잠긴 책은 참 오랜만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우리말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의 이 길은 도보순례로 유명한 길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 길'이 가장 유명하다. 스페인어 '카미노(camino)'는 그냥 '길'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이지만 '프랑스 길'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카미노(Camino)'가 '프랑스 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인다."(p.20)

고 한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저자가 이 카미노를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 끊임없이 떠오르고 사라진, 혹은 새겨진 생각들의 기록이다.

극심한 혼란함과 슬픔을 벗어나고자 도피하듯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나를 찾는 여정이 아니라 나로부터 달아다니기 위한 일종의 도주라는 말이 목에 걸렸다. 나에게는 sanna라는 필명으로 더 익숙한 저자가 조그마한 등산화 사진 한장과 함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흔한 배낭여행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서두에 '나의 동생 김인배에게'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건만 사실은 사연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불쑥 미안한 마음과 함께 숙연하고 진지해졌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마운틴 폴에 의지해 하염없이 산티아고로 걷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보이지 않는 동행이 되어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으로 다가왔던 건, 바로 '사람들'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산티아고 가는 길'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여행은 깨달음이 뒤따르지만, 그 깨달음에는 자연과 함께 늘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별것 아닌 사실이 이토록 뭉클하게 다가오다니 새삼 가슴이 벅찼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수 만큼 다양했다. 글의 초반, 타인에 대해 이리저리 널뛰는 저자의 복잡한 감정이 마치 나인양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짜증도 났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걸 보며 나 역시 치유를 얻고 안식을 얻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가 하면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란 제목처럼 혼자일 때 비로소 정리하고, 토해낼 수 있는 생각들도 존재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마침내 크루스 데 페로에서 동생의 사진을 묻으며 터뜨린 울음 앞에서는 나도 따라 울 수 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훌쩍훌쩍 울어서인지 그 부분을 넘기고 나자 잠이 쏟아졌다. 책갈피를 꽂아놓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내가 카미노를 걷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길이 어린 시절 내가 무척 좋아했던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뒷산 가는 길'과 닮아있어 나는 또 그리움에 훌쩍훌쩍 울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눈 주위로 눈물자국이 길게 말라 붙어있었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아주 많은 책이었다. 특히 '머리 냄새 나는 아이'나 일마즈가 얘기해 준 산티아고 전설, 그리고 아름다움을 들이마시는 인디언들의 처방법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예쁜 이야기다. 할머니가 되면 (아니 되기 전에라도) 어린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주고 싶다. 카미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 저자의 생각, 인용한 구절구절과 덧붙여진 해석들 모두 기억하고 싶은 것 투성이다. 도망치듯 떠났고 순례의 정신이라기보다 그저 걷고 싶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자는 순례자의 임무를 마친 셈이며, 덕분에 독자로서도 순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평화를 조금이나마 느껴서 참 고마운 책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책을 덮으며 언젠가는 카미노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걸 안다. 아직은 마지막 비상구로 남겨두고 싶다. 지금보다 더 절박해지면, 혹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오면 오직 배낭 하나에 나를 압축해 넣고 카미노를 걸어보고 싶다. 하염없이 그 길을. 그때까지 이 말을 아껴놓는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덧,
1. sanna님이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 몇 장과 짧은 글을 올려셨을 때, 나도 모르게 시선이 10초는 고정될 정도로 반한 사진이 있다. 푸른 들판 위로 길이 나 있고, 지평선 위에 그림처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사진이었다.

메세타 평원의 지평선 위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메세타 평원의 지평선 위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p.118~119)


바로 이 사진인데, 거의 다 왔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았다고 했다. 이 사진이 책에 크게 담겨 있어서 정말 좋았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저 빛깔이 좋다. 여전히 퐁당 빠져 버릴듯한 사진이다. 이 사진 말고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좋은 사진이 많다.


2. 블로그에 여행기가 올라오길 기다리는 도중에 책으로 발행될 거라고 해서 은근히 설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궁금하던 참에 책이 짠- 하고 나왔다.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들어서 기다림이 아무렇지도 않다. 예쁜 글씨체로 내 이름과 함께 정성스럽게 싸인까지 해서 책 보내주신 sanna님, 아니 김희경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
2009/06/05 21:42 2009/06/05 21:42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5
현대문학

박완서 - 거저나 마찬가지
조성기 - 작은 인간
이혜경 - 피아간彼我間
구효서 - 소금가마니
윤대녕 - 탱자
하성란 - 웨하스로 만든 집
이기호 -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김중혁 - 무용지물 박물관無用之物 博物館
정이현 - 그 남자의 리허설
김애란 -달려라, 아비



단편소설이 읽고 싶을 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집.
특별히 땡기는 작가가 없거나 뭘 읽어야될지 모르겠을 땐 이렇게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는 소설집이 제격이다. 알아서 선곡해주는 컴필레이션 앨범과 같달까. 간혹 취향에 맞는 작품이 한 작품도 없을 경우 난감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최소한 하나는 건지게 돼 있다. 나름대로 현장비평가가 뽑았다는데 독자가 읽어서 하나도 건질 게 없다면 당장 비평가 접어야지.-_- 물론 비평가와 일반독자의 취향 사이에는 늘 일정한 넓이의 강이 흐르지만서도. 반대로 건질 작품이 많다면 의외의 포만감으로 배 통통 두드릴 수 있으니 별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거나 2005년 소설집이라 좀 늦었긴 하지만 얼마전에 득템하여 후다닥 읽었다. 재미있었다. 이 중에 이기호, 정이현의 작품은 각각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와 <오늘의 거짓말>에 실려있고,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있는데, 사놓고 안 읽는 바람에 여기서 처음 읽는다. -_-; 그 책들 어느 책장에 쳐박혀 있는지 찾지도 못하겠다. -_ㅠ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나의 책들;)

개인적으로 조성기의 '작은 인간' 빼고는 다 그럭저럭 취향에 맞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은 인간'은 아아, 도무지 그 감성을 못 따라가겠다. 남자는 물론 시점이 되는 여자의 생각조차도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겉돌고 있다는 느낌 밖에 못 받았다. 액자식 구성으로 그 안에 속한 전족 이야기가 오히려 훨씬 재미있었고 뭘 말하려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장치로서 패티시즘을 다루고 있다고 보는데, 하필 '발'이라서 좀 무서웠다. (CSI 생각났음.-_-;)

이혜경의 '피아간'과 구효서의 '소금가마니' 윤대녕의 '탱자'는 묘하게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전통적인 사회에서 당연시되어 오던 가치관의 부조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특히 '피아간'에서 묘사되는 큰아들의 행태라든가 경은이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소금가마니'에서 드러나는 어머니의 핍박과 희생, '탱자'에서는 고모님의 억눌렸던 젊은 시절 같은 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서 뒷맛이 어찌나 씁쓸한지. 드라마 소재로도 무던히 쓰인 이 이야기들이 아직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는 걸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무리 지리멸렬하게 부대끼는 인생이라지만 마주 대하면 늘 쓸쓸해진다. 그나저나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최근 소설을 더 읽어봐야할 것 같다.

박완서의 '거저나 마찬가지'는 세태에 대한 풍자가 들어있다. 신랄하지 않고 은근하게 까발리는 게 일품. 소위 386세대에 대한 감사와 증오가 교차되는 심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달까. 기억에 남는 작품.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장면 묘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부실공사로 지어진, 지금은 재개발 붐에 휩쓸려 겨우 버티기만 하는 그 2층 양옥집에 대한 묘사는 내가 한 때 살았던 그 집이 생각나서 눈물이 다 나올 뻔 했다. 그런데 그 비실대는 집에 얽힌 추억은 또 얼마나 질긴지 지금도 생각하면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립다는 게 참 아이러니. 삐걱거리는 바닥 소리가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 같다는 표현은 정말이지 적확하다.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아아, 너무나 이기호스러워서 웃음이 다 났다. 하여간 이 작가, 재치있다니까.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이렇게 발랄하게 표현해낸다는 건 정말 재주다. 제목도 어찌나 기발한지. 거의 환상문학처럼 펼쳐지는 내용은 읽어나갈수록 살짝 상식에 혼란이 올 정도. 흙은 정말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꽃도 식용이 있는데, 흙이라고 없을까... 뭐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은 감각에 대한 소설이다. 오감의 어느 하나를 배제한 채 대신 상상력을 곁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사물을 대한다라...... 사실 문학의 경우도 시각적으로 직접 다가오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야만 전달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 모든 창조물이 다 그렇구나. 결국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건가?

정이현의 '그 남자의 리허설'은 남자의 열등감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과 결핍을 냄새(후각)로 표현해내는 게 탁월하다. 냄새에 대한 묘사는 실제와 망상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불안한 남자의 심리가 어느 지경에 다다랐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깔끔한 문장은 이 소설이 필요 이상 질퍽해지지 않는데 일조. 그래서 더 연민이 느껴지는 그 남자의 리허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읽고나서 좀 웃었다. 이 '아비'가 그 '아비'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난 사람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대.;;; 예쁜 여자 아이 이름이라고 생각한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이게 다 알록달록한 단행본 표지 때문이니라. 아무튼 예상과 다른 내용에 짜증과 유쾌함을 동시에 경험한 희한한 소설이었다. 난 '아비'가 못마땅한데 우리 주인공은 어쩜 그리 긍정적인지 말이야. 제목마저 '달려라, 아비'하고 응원조이지 않은가. 이런 착한 아이 같으니라고. 난 그런 주인공과 엄마를 응원할 테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고 신선하게 진공포장하며 거기에 유쾌한 리본까지 묶어버린 김애란의 문체를 보며 왜 요즘 잘 팔리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평작 이상은 된다. 비교대상이 없어서 별점은 생략하지만 3개 이상은 거뜬하다고 본다.
다른 연도 소설집도 착착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연도별로 나만의 순위를 매겨봐야지.
2009/06/05 21:16 2009/06/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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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잖아." p.280

왜 서른한 살인가에 대해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 대사일지도 모르겠다. 이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어쨌든 서른이 아니고 서른한 살, 그 경계선이 가지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가 아닐까. 나이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가는 시간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쉽지만 흘려보낼 수 밖에 없기에, 잠시 멈춰 현재를 들여다 볼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그래야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길 테니까.

서른한 편의 단편이 차곡차곡 담겨있는 <내 나이 서른 하나>는 정의하기 쉽지는 않은 소설이다. 각각의 단편은 때로는 나른하고, 때로는 열정적이고, 때로는 담백하다. 그래서 주욱 이어서 읽기보다는 텀을 두고 읽는 것이 몇 배는 와닿는다. 각 단편의 공통점이라면 여자, 갓 서른을 넘긴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일 텐데, 그래서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왕이면 서른 근처의 나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서른 하나라는 나이를 유난히 강조하는 번역본의 제목은 조금 씁쓸하다. 원서의 제목이 First Priority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누구나 살면서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자신만의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여태 신경쓰지 않았지만 문득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걸 작가는 서른한 살의 여자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완전과 완전의 틈새에 있는 서른한 살의 여자.

나만의 우선순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런게 있긴 한가, 했는데 나에게도 있긴 하더라.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게 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일본소설의 특징인 듯 무심하게 끝내버리는 결말도 이번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때는 그 쿨함이 못 견디게 싫었는데, 한동안 거리를 두다보니 오히려 신선하다. 어차피 구구절절 설명하려 할 수록 공감에서는 멀어지는 내용이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가끔 겹치는 캐릭터가 있고, 비슷한 내용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른한 살 여자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참 각양각색이다.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서른 하나의 여자를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나이잖아. 생활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다시금 돌아볼 수있는 왠지 비현실적인 나이. 그런 면에서 얼마전에 읽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가 생각나기도 했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연애중독(개정판 러브홀릭)>보다는 재미면에서 약하지만, 작가의 색은 잘 드러난 것 같다. 작가 특유의 여성 심리묘사는 날카롭지는 않지만, 의외로 콕 찔러주는 맛이 있어서 좋다. 발랄함보다는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책이라 조용한 곳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화나거나 우울한 날 읽으면 괜히 시비걸고 싶은 기분이 될지 모르니까 피하는 게 좋다.

  내 나이 서른하나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연애중독>, <플라나리아>의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가 '서른한 살 여자'를 주인공으로 쓴 서른한 편의 이야기. 삶이 한없이 무료한 여자, 일 년간 섹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자, 직장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여자 등 '삼십대에 막 발을 담근 여성들의 삶'이라는 코드로 묶인 소설집이다. 각각의 작품은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 길이가 짧으며, 섬세하고 날렵하고 리듬감 있다.
2009/05/31 16:23 2009/05/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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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품

銀漁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은어낚시통신
불귀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국화 옆에서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카메라 옵스큐라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
눈과 화살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 읽고 싶어 수소문했을 땐, 이미 책은 절판된지 오래. 이런 일이 한두 번이겠냐만 무릇 물건이든 사람이든 가질 수 없을 때 더욱 원하게 되는 법이라 쉽게 포기가 안됐다. 그래서 오프라인도 훑어보고, 헌책방도 훑어봤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아 애가 탔다. 이럴 땐 그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내 손에 들어올꺼야!'라고 생각하는 게 상책이다. 사람 뿐 아니라 물건도 인연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은어낚시통신>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지 근 6개월 만에 결국 이 책을 구했다. 그것도 싸고 새책 같은 걸로.(럭키!) 

윤대녕은 90년대 초반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지만 내가 그를 알게된 건 밀레니엄이 코앞이었던 때였다. 필수교양으로 '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수강해야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이 다니던 친구와 떨어져 나 혼자 수업을 들어야 했다. 땡땡이를 치지 않는 이상 자연히 수업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교수님이 텍스트로 삼았던 문학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은어낚시통신'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스무 살의 난 '은어낚시통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표면적인 내용도 그렇지만 그 내용이 가지는 의미라는 게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어렵고 난해해서 내 독해력이 이것 밖에 안되나 좌절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이해되지 못한 채 흘려버린 '은어낚시통신'인데, 참 이상도 하지. 졸업을 하고 나니까 종종 생각이 나는 거다. 지금이라면 작가가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게 벌써 몇 년째인데, 얼마전부터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읽고 싶어져서 급기야 책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는 이야기. 사실 책 구하는 몇 개월 사이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 책은 며칠 빌려 읽고 탁 털어버리엔 아직도 그리 만만하진 않더라. 나로서는 결국 사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얘기다.

새로이 읽다보니 문득 하루키가 떠올랐다. (예전엔 못 느꼈던 이유는 내가 하루키를 뒤늦게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윤대녕과 하루키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글이 꽤 보였다. 하루키 열풍이 불어닥친 90년대 문단에서는 하루키의 문체와 분위기에 영향받은(혹은 흉내낸) 작가에 대해 말이 제법 많았던 모양인데, 그 중 한 명이 윤대녕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과연! 두 작가 모두 현학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글을 써내는 타입이라 비교될 만도 하다. 더욱이 이 책은 윤대녕의 첫 번째 단편집이라 대부분 초기작품이니 내가 그렇게 느낀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어떤 독자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엔 아직 이른 시기니까. 하지만 <은어낚시통신>이 윤대녕의 출세작이란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 책이 윤대녕을 정의하는 가장 적합한 키워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려나…….

<은어낚시통신>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무언가를 갈망한다. 관념적으로든 현실세계에서든 그들은 무언가를 쫓고 있고, 그런 모습을 작가는 무기력한 듯 하면서도 우수에 찬 모습으로 그려낸다. 책의 말미에서 남진우는 이것을 '존재의 시원(본질)으로의 회귀'라고 해설을 하는데, 그런 남자들이 회귀를 통해 미완에서 완성을 추구하는 반면 여자들은 원래 있었던 것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모두 어딘가 불안정하다. '결락缺落'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그녀들은 무언가를 상실한 모습이다.그러나 그녀들의 회귀는 갈망이라기보다 체념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모습은 늘 조금 쓸쓸하다.

 <은어낚시통신>의 맨 앞 세 단편은  그 배치가 참 절묘하다. '은어'를 거쳐 '…미아리통신'을 지나 '은어낚시통신'으로 이어지는 이 세 단편들은 각각 독립성을 지닌 단편들이지만 동시에 연작의 느낌도 준다. 더불어 책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심지어 인물들의 특징도 유달리 비슷해서 다른 단편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친밀함마저 느껴진다. 이 세 단편을 거치면서 <은어낚시통신>이란 단편집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불귀'를 지나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가 나오는데, 아마 책 내의 단편들 중에 가장 직관적 이해가 빠르고 이야기적 재미가 있지 않나 싶다. 마치 전래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오컬트적인 분위기도 풍기면서 신비감을 돋운다. 여기서도 잠시 하루키 같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하루키가 원숭이를 소재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신비하게 엮었다면 윤대녕은 말을 통해 그러한 이야기를 한다. '국화 옆에서''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은 구성적으로 '불귀'와 닮아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찾아 직접적으로 행동한다는 부분이 그렇고 그 여행길에 동행이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결국은 목표물이 아니라 동행과의 대화와 접촉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잃는다는 게 가장 큰 공통점이 아닐까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에서는 '은어낚시통신'의 청미와 비슷한 여인이 나오지만 청미가 '나'라는 인물의 회귀를 직접적으로 이끌면서 돕고 있는 반면, '카메라 옵스큐라'의 진이는 '나'를 흔들어놓음으로써 회귀를 돕는다.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은 앞선 '카메라 옵스큐라'와 함께 -비록 순간적이긴 하지만- 가장 짜증났던 단편이 아닐까 싶은데, 평범한 대사를 통해 보이는 남자의 비겁함이나 본능적인 이기심, 여자의 패배의식이 -앞선 작품들에 비해- 두드러져 그리 기분좋지는 않았다. 특히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의 서상수 캐릭터는 언뜻 이해가 가면서도 '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야!'라고 느끼게 만든다. 좀 더 솔직히 말할까? 피임관련 대사가 최악이었다.-_- 젠장. 그저 인물을 설명하는 부분적 장치려니 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완전 씁쓸하다. 그 뒤에 남기수 캐릭터가 자조적인 어투로 어느 정도 커버해주긴 하지만,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눈과 화살'은  음, 일단 재밌다. 어느날 실종되어버린 한 남자와 그를 찾으려는 또 다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표면적인 내용이다. 신축 백화점 옥상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경비원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와 더불어 약간의 추리기법이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실종이 아니라 어쩌면 가출일지 모르는 그 남자에게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처음 윤대녕을 만났던 때로부터 약 10년 만에 이 책을 읽느 느낌이라면 단연코 '세월의 흐름'일 것이다. 단순히 그때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은어낚시통신>에는 밀레니엄 시대에는 나오지 않을 90년대만의 어떤 느낌이 있다. 그것은 80년대의 척박함에서는 벗어나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자유롭지도 않은 어떤 과도기적 혼란함이다. 시대가 엿보이는 묘사에서부터 존재를 고민하는 인물들,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순간순간 과장되게 멋부리는 문장까지 어느모로 보나 <은어낚시통신>은 그런 시대적 특성(혼란함) 속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의 시원'을 좇아 거슬러올라가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슬러 올라간 그 끝에는 말끔히 정리해 줄 답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혹자는 윤대녕을 두고 '90년대에 최적화된 작가'라며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힘을 못 쓰는 거라고 하지만, 글쎄…… 아직은 알 수 없지 않을까. 20세기를 아우른 많은 작가들이 그랬듯 그도 지금 정체상태일지도 모르지. 적어도 그의 소설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처럼 독자에게 회귀본능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나는 안다. 90년대에 비해 작품활동이 다소 저조하지만 곧 활어처럼 힘차게 물위를 튀어오를지 모를 일이다.

<은어낚시통신>을 읽으면서 -자칫 잘못 들면 손목 꺾이는- 한+국어대사전을 옆에 두고 봤다. 모든 낯설게하기 기법이 그렇겠지만 윤대녕은 아는 단어도 생경하게 만드는 문장을 구사한다. 대체 '사무치는 얼굴'이 어떤 얼굴이란 말인가. '사무치다'의 느낌을 알고 '얼굴'의 의미를 알지만 무엇이 사무치는지는 생략한 채 그저 '사무치는 얼굴'이라고 툭 던져놓으니 그게 어떤 얼굴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흐릿한 이미지만 떠올랐다 사라질 뿐. 문학이 아니면 쓰이지 않을 단어와 문장들도 그런 생경함에 단연 한몫했다. 아무튼 난 조금이라도 낯설다 싶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의미를 찾으며 천천히 (때로는 조그맣게 소리내어) 책을 읽었다. 3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을 무려 5시간이나 넘게 걸려 읽은 것만 봐도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천천히 공들이며 읽었는지 알 수 있다. 고등학교 때 고전이나 신소설을 읽을 때 빼고는 이렇게 책을 읽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윤대녕의 묘사방식은 구체적 사물을 열거하면서 오히려 낯설게 하기도 한다. '…미아리통신'이나 '국화 옆에서'를 보면 내가 아는(가봤던) 동네의 건물, 풍경등이 주욱 열거되는데, 분명 언젠가 한번쯤 지나다녔음에도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수록된 첫 단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읽으면서도 그랬는데, 어쩌면 작가들은 그런 능력을 타고난 건가? 아니면 글묘사란 태생적으로 그림묘사와 다른 묘한 낯설음을 주는 걸까?

젊은 날 윤대녕의 책이 어려웠던 이유는 그의 책이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은 알고보면 격정적이지만 표면적으로 아주 고요하다. 격정에 다다를 때까지 그 인내를 유지하기란 그 시절의 나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뭐가 됐든 이제 한동안은 <은어낚시통신>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 언제 회귀하듯 떠오를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내려놓고 싶다.



덧,
1. 기억에 '문학의 이해' 교수님(강사인지도 모른다)은 이론 수업 빼고, 몇 가지 단편을 선정해  2주씩 나눠 수업을 하셨었다. 그때 교본이 되었던 작품 중에 <무진기행>도 기억에 남는데, 그러고보면 그 수업이 은근히 나한테 영향을 많이 줬던 것 같다.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도 그 수업 때문에 보고 싶어졌으니까.

2. 이 책 구하면서 프리미엄을 왕창 붙인 중고책들을 몇번 봤는데, 아- 그런 책들 보면 기분이 참 그렇다. 난 아무리 레어본이라도 몇십 년된 고서가 아닌 바에야 그런 식으로 웃돈 얹어서 파는 게 영 마뜩찮다. 원가의 15%이상 프리미엄 붙으면 안 팔고 안 산다는 주의라 그런가. 지나치게 프리미엄 붙은 책들 보면 가치가 우러러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책에 대한 단념이 빨라진다. (일례로 고려원 판 영웅문이 그랬다.-_- 대여점을 돌고 돌아 변색은 물론이요 낡아서 곧 수명이 다 할 것 같은데도 워낙 지난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라 수요가 많다보니 원가의 2~3배는 기본이니 이거 원. 그냥 안 사고 만다.) 물론 이 원칙을 깨본적이 있긴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는데, 대여점용으로 돌던 책을 무려 두 배의 가격에다 배송료까지 물면서 샀는데 사고나서 얼마 안 되어 개정판 나오는 바람에 피토할 뻔 했다.-_-; 다행히 개정판을 증정 받아서 그걸로 위로했지만; 그 이후로 프리미엄 붙은 책은 아무리 읽고 싶어도 열번 심사숙고한다.

아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절판된 만화 <좌부녀>를 구했는데, A중고샵에서 정가 3800원인 이 만화책을 희귀본이라면서 14000원(상태 - 중)에 파는 걸 봤다. 기절할 뻔 했다. -_-;;;; 허헐. 1700원(상태 - 최상) 주고 산 나는 거저 먹은거구나.-ㅁ-;

3. 이런 기사를 봤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 ··· 4220.htm

문학동네는 (…중략) 또 1994년 나온 윤대녕 씨의 소설 '은어낚시 통신'의 내용을 대폭 수정해 3월에 개정판을 낸다.


-_- 항상 이런 식이야. 우어어어.
하지만 5월인데도 아직 안 나온 걸 보면 작업이 좀 늦어지는 듯.
그나저나 내용을 대폭 수정한다니?????
그럼 그건 이미 '은어낚시통신'이 아니지!!!!!
차라리 속편을 쓰시라구요. ㅠ

신필이라는 김용 선생도 그렇고, 아니 왜 이미 세상 나온지 몇십 년 된 작품에 자꾸 손을 대시지?
의천도룡기 결말 수정된 거 보고 식겁한 뒤로 난 작가분들이 기존 작품에 손대는 게 무섭다.
그래서 난 이 작업 반댈세.

  은어낚시통신  윤대녕 지음

우리 문단에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줬던 문제작. 뛰어난 도시적 감수성과 신선한 문체로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동시에 받으며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은어의 이미지에서 진정한 삶을 향한 '거슬러 올라가기'의 모습을 찾는다.
2009/05/27 12:40 2009/05/27 12:40
경관의 피


[경관의 피]라는 제목을 보고 '경관이 흘린 피'라고 해석하고는 이 책이 경관 살해 사건에 관한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될 수 밖에 없는 게, 미스터리 하면 내용상 으레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과정을 추리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나. 그러니 피라는 낱말은 당연히 살인으로 직결되고 앞에 경관이라고 씌어져 있으니 그 피는 당연히 경관이 흘린 피라고 생각할 수 밖에. 직관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피는 그 피가 아니라네? 여기서 말하는 피는 핏줄, 즉 혈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피였다. 무려 삼대에 걸쳐 경찰관의 길을 걷는 어느 일가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아버지-아들 이대가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장인들처럼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삼대에 걸쳐 같은 길을 걷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 긴 기간에 걸쳐 의혹의 살인 사건을 수사한다는 설정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궁금하면 읽어야지 별 수 있나.

늘 '할아버지의 이름을 거는' 김전일처럼 자신의 윗세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인물이 나와서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러니까 메인은 손자,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는 회상이나 상상속에서 등장하며, 손자가 윗세대들의 사건을 역추적해서 결국 해결하는 구조일 거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상황 정리해주고. 영화도 그런 거 있지 않나. 본편 다음에 프리퀄, 그 다음에 씨퀄. (아마 <무간도>가 그랬었지?) 하지만 내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소설은 강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아니라 중력에 의해 떨어진 사과처럼 아래로 흐르는 포멀한 타입이었다. 아, 하나 맞은 거 있네. 에필로그는 있더라.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일대 경찰관 안조 세이지, 2부는 그의 아들 안조 다미오, 3부는 손자인 안조 가즈야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제법 두툼한 두 권의 책은 보기도 전에 질리기 딱 좋아보이지만, 다행히 군더더기 없는 문장 덕분에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미스터리에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저 인기순위에서 1위했구나, 어느 정도 검증은 되었구나 정도만 알면 되지 않을까. 사실 [경관의 피]는 미스터리에 있어서는 그리 내세울 입장이 못 된다. 서술은 사건을 죽 나열할 뿐이고, 몇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문투는 긴박감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할 뿐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단조롭다. 간간히 호기심을 유발하며 문장을 끝맺지만 그게 끝이다. 심지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읽으면서 복선이 너무 티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오히려 거꾸로 의심했다.이런 식으로 쉽게 걸려들도록 만든 뒤 반전을 노리는 건가 하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반전은 반전인데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유의 반전이 아니라, 뭐랄까 좀 더 근본적인 어떤 것에 대한 반전이다. 결국은 난 또 한번 '미스터리'에 당한 거다. [경관의 피]는 삼대에 걸친 미스터리가 아니라 삼대에 걸친 서사이고, 역사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철학적인 문제까지 던져주며 날 고민에 빠져들게 했다. 상대적 궤변과 절대적 진실 사이에서 방황하느라 침대에서 머리 쥐어 뜯었다면 난 이 책에 너무 심취한 걸까. 에필로그는 감동이 아니라 아릿했다. 그 아릿함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기엔 그간의 서사가 너무나 묵직했다.

어쩌면 작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라고 쓴 책 같았다. 안조가(家)의 일대기를 통해 전후 일본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조직에 속한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며 한 집안을 책임지는 남자에 대한 연민을 독자에게도 전달하는 것. 이것이 작가가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슴 한켠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어느 순간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지곤 하는데,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1부를 구성하는 세이지의 이야기에는 전후 일본 상황이 건조하지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폐허 속의 궁핍한 삶들은 거짓이 아닐 테지. 하지만 그 모습에서 난 자꾸만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자신들도 결국 전쟁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네들의 나라에 의해 반세기가 넘도록 고통받았고, 그 흔적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아픔을 선뜻 공유하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그런 피폐한 자신들을 일으켜 세운 부흥의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이라면, 분통까지는 아니라도 감정이 미묘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마 이런 이유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걸 반기면서도 그 첫 작품이 [경관의 피]라는 게 마냥 기쁠 수 만은 없었으리라. 드물게 한국어판 서문까지 붙인 것을 보면 여간 조심스러웠던 게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출판사에서 먼저 권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대, 안조 다미오의 생애였다. 아버지의 모습을 쫓아 경찰관이 되었지만 격렬한 시대의 흐름에 이리저리 휘말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서도 안타까운 삶이었다. 더욱이 그로 인한 후유증이 내가 끔찍하게 혐오하는 형태로 나타나버려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필이면……. 그나마 가즈야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된 것까지는 보여주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가부장적 가치관 아래 가장의 입장을 중점적으로 대변한 나머지 여성은 저만치 들러리가 되거나 가엾은 피해자 정도로 인식되어버리는 게 못내 안타까웠다. 남편이 때려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그것도 남편이라고 감싸안아주는 모습이나 부부 간의 문제는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는 지극히 동양적인 마인드는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 시대였다고 에둘러 변명하기엔 아픔이 너무 깊다. 쓸쓸함 속에 그나마 통쾌했던 건 마지막 가즈야의 뻔뻔함을 가장한 협상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 전에 범인이 내뱉는 궤변인지 현실적 통찰일지 모를 그 말들은 아직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다. 가즈야 역시 그럴 테고. 물론 그는 어느 정도 결론을 낸 것 같지만. 내용 전체를 아울러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모두가 시대의 슬픔이고 조직 속 인간의 아픔으로 휘발되어 버린다. 삼대를 이어 경찰관이 된 그들의 삶은 내막 모르는 타인의 평가처럼 가문의 영광이었을까, 아니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을까. 판단은 역시 개인의 몫이겠지.

전체적으로  깊고 긴 이야기다. 던져놓은 과제도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문장들과 삼대를 거쳐 그물처럼 얽히는 사건 및 인물들로 인해 나름대로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지나온 역사와 지금의 현실을 외면하지만 않는다면(제대로 인식하고만 있다면) 그리 읽기 어려운 소설은 아닐 것이다. 알고보니 올 2월에 아사히TV에서 50주년 개국 기념 특집극으로 방영되기도 했단다. 에구치 요스케와 시이나 킷페이, 이토 히데아키 등 연기파 탑배우들이 대거 출연을 했다니 50주년이라고 공을 제법 들인 모양이다.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 싶긴 한데...... 영상화된 걸 보는 건 솔직히 자신없다. (그나저나 에구치 요스케... 아사히 50주년 기념 드라마를 2개나 찍었네?; 방송국 VIP인가요? 호호.)




덧,
총 9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가볍지 않은 분량임에도 막힘없이 끝까지 한방에 완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작가 자신의 문장구사력도 있겠지만, 번역가의 능력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번역이 마음에 들어 번역가의 이름과 이력까지 기억해두기로 했다. 얼마전에 모 번역가가 번역한 소설 읽다가 그 미칠 것 같은 번역투와 희한한 문장 구사에 버럭 짜증이 나서 책 집어던진 적이 있는 나로서는,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달까. 이 책을 그 번역가가 번역했다면 난 애저녁에 포기했을 거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번역서를 읽는데 내용이 아니라 원문이 뭔지가 먼저 떠오른다면 그건 실패한 번역이 아닐까. 그건 해석이지 번역이 아니잖아. 하물며 한국말로도 어색하다면. 어우, 사양한다. 어쨌거나 이 책은 그런 짜증 없어서 아주 만족. 다른 번역서들도 읽어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괜찮은 번역가 한 명 알게 되어 기쁘다.




  경관의 피 -상 - 블랙 앤 화이트 0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차지한 사사키 조의 장편소설. 두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정통 미스터리의 틀 위에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의 격변하는 시대상과 가족상, 60여 년에 이르는 세월의 흐름과 경찰 조직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인과관계까지 농밀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2009/05/18 21:20 2009/05/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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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그의 소설만 대략 스무 작품 가까이 되는데, 아직도 찾아보면 안 읽은 게 더 많다는 사실에 뜨악한 기분이 된다. 데뷔가 85년이니 20년이 넘긴 했지만 솔직히 이만큼 다작하는 소설가 별로 보지 못했다.(아, 요즘 온다 리쿠가 맹추격하고 있지;) 90년대에는 '이건 뭐 공장에서 찍어내나' 싶은 정도로 줄줄이 비엔나처럼 작품을 내주시는데, 위키 들어가서 작품 목록 보다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 보통 전성기가 있고 나면 시들기 마련인데, 이 분은 시들만 하면 뻥 터뜨려서 입지를 공고히 해주시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기까지. 수작과 평작이 교차하는 그의 작품세계. 딱히 졸작은 없으나 대작 수준의 작품 역시 마땅히 없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랄까. 한 때는 [백야행]이, 현재는 [용의자 X의 헌신]이 그를 대표하고 있지만 늘 2% 부족한 어떤 것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히가시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빠른 스피드와 그때까지 접해보지 못한 맛깔스러운 이야기들에 폭 빠져서 '아, 재밌다' 하고 좋아했지만, 이후 진정된 상태에서 하나씩 따지고 보면 어쩐지 아쉬워지고 마니, 영 기분이 그렇다. 어쩌면 내가 읽은 작품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서 작가에 대한 욕심이나 바람 같은 게 생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위에서 이런 평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걸로 보아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그의 그 2%를 뛰어넘는 작품이 나온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추리 소설사에 한 줄기를 담당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의 이름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그저 지금은 그 기반을 착실하게 다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겠다.아직 나이도 젊잖아.(아, 이제 젊은 편은 아닌가;)

사설이 길었다. 겨울에 [유성의 인연]을 읽은 후 히가시노 소설은 오랜만인데, 뭐 늘 그렇듯 일정 수준의 재미와 퀄리티를 보장한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소설 패턴에 익숙해진 탓일까. 예전이라면 흥미진진했을 사건들이 이제는 좀 시들하고, 은근히 진행 방향이 눈에 보여 약간 김빠진 것도 사실이다. 초창기 소설이라 더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읽으면서 문득 기시감 같은 걸 느꼈는데, 어째 인물의 특징이나 인물을 둘러싼 환경 같은 게 낯설지 않은 거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다가 역자 후기 보고 깨달았다. 내가 읽은 그의 여러 소설들과 이 소설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같은 작가의 작품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이후 소설들의 모태랄까 원형적인 모습을 아주 많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야기 전체가 빠르게 인식되지만, 긴장감이나 의외성이 덜 느껴져서 예전처럼 재미를 못 느꼈는지도.

언젠가 히가시노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는데(어디 끄적여 둔 것도 있을 텐데;), 가만 보면 그의 소설에서 여성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건 전개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면 사건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거나. [브루투스의 심장]에는 야스코라는 여자가 나오는데, 이 여자는 도도하고 수완이 좋으며 매력적이다. 하지만 결국엔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가는 팜므 파탈 캐릭터. 이는 [백야행]에서 그 속성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데, 행동의 당위성이나 캐릭터 고유의 매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어쩐지 유키호를 생각나게 만드는 인물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문제까지도.(물론 야스코는 팜므 파탈이라기엔 그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또 마력(매력이 아님;)이라는 게 부족해서 그저 꽃뱀(...) 수준에 머물러 있기는 하다. 한마디로 유키호 승! 마성의 유키호)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소설 중에 이른바 '백야행 2'로 불리우는 [환야]도 약간 그런 느낌이라는데, 예시 뽑아서 리스트 만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물론 히가시노 소설에서 모든 여성이 다 그렇게 팜므 파탈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로 인해 사건이 시작되는 경우가 꽤 많아서, 게다가 대사 중에 '여자란 무서워'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인식이 많아서 '한번은 살짝 짜증이 난 적도. 그런 경향은 그의 소설가 재직 기간(응?)을 초,중,후기로 나눴을 때 초기나 중기 소설일 수록 강하고, 최근작일 수록 덜하지만 어쨌든 무시할 수는 없다. 반대로 그의 소설에서 남자는 대체로 나쁜 놈이거나 불쌍한 스타일. 사건 바깥에서 추리하는 인물이 아니라면 대부분 저런 패턴이다. 물론 나쁜 놈이면서 사건을 추리하거나, 불쌍하면서 나쁜 놈인 교집합도 가능하다.

[브루투스의 심장]은 로봇이 소재로 사용되는 만큼 이공계 출신인 저자 자신의 경험이 다수 작용했다는 점에서 [레몬 Lemon]이라든지 [변신], [탐정 갈릴레오]나 [예지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소재들이 인간의 탐욕과 결합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철학적인 물음도 던진다. 또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사람들의 선입견을 이용하는 범행 구성으로, 허를 찌르는 (줄거리를 모르고 본다면 더욱 신선할) 재미를 선사하니, 사실 초반부터 범행 방법을 알려주고 그것을 추리해가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범인(凡人)은 깜빡 속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용의자 X의 헌신]처럼.

제목도 참 절묘한 게, 정작 로봇 브루투스에 관한 건 자주 나오지도 않는데, 카이사르가 죽음의 순간 부르짖었다는 "브루투스 너마저"에 완벽히 부합하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점에서 [브루투스의 심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최고로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걸 노리고 지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쨌거나 이로써 히가시노 소설을 한권 더 독파했다. 사놓고 안 읽은 책 땡처리(...)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집어든 건데, 가볍게 읽기는 했으나 나름대로 생각은 많은 책읽기였다. 근데 어째 나 히가시노 게이고 전작주의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팬은 아니라고 한다는 게 참...-_-; 그러니까 그 2%를 채워 줄 작품이 필요하다구!


  브루투스의 심장 - 완전범죄 살인릴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세 명의 남자가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장소를 옮기며 살인, 시체운반, 시체처리의 살인계획을 세운다. 이 남자들의 목적은 각자의 욕망이다. 욕망에 방해가 되는 여성을 처리하려 하지만 뜻밖에 살인의 바통은 세 남자 중 한 명에게로 돌아간다.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가운데 살인은 계속되고 욕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다.
2009/05/17 00:45 2009/05/1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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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수록 작품

- 삼십세
- 오스트리아 어느 도시에서의 청춘
- 모든 것
- 살인자와 광인의 틈바구니에서
- 고모라를 향한 한 걸음
- 빌더무트라는 이름의 사나이
- 운디네 가다



인생에는 분기점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있다. 이를테면 열 살. 최초로 두 자리 숫자의 나이를 갖게 된 그 때, 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난 여전히 하급생이었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상급생이 되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알 수 없는 충족감은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스무 살. 마침내 싱그러운 봄 햇살 같은 스무 살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그 때. 이제 더 이상 십대의 방종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어른의 입구에 서 있다는 사실이 몹시 흥분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만 19세가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난 생일도 엄청 늦었으므로- 술집에서 번번히 퇴짜를 맞아야만 했다. 흥, 그까이꺼 아무것도 아니지. 난 스무 살의 꽃피는 아가씨라구. 그리고 서른. 이 말에 어쩐지 쓸쓸하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은 결코 내 탓이 아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든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같은, 유명 노래와 시 제목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고, 이제 꺾였다고 악의없이 놀리는 동생의 장난 어린 말투 때문이다. 오히려 겁을 먹는 건 사실은 서른이 되어보지도 않은 이십대의 누군가. 계란 한판이라는 우스갯 소리와 처녀와 노처녀의 불분명한 기준을 이십대와 삼십대로 나누는 것도 알고 보면 2에서 3으로 숫자 하나가 바뀔 뿐인 것을.

이렇게 덤덤하게 말해보지만, 아무래도 서른이란 십 단위의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쿨하게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해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를 번역한 차경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 아무리 논리와 철학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자신도 어느덧 서른 살의 문턱을 넘어선 것을 깨닫게 되는 날, 목구명으로 무턱대고 차오르는 언어의 발효를 막을 수 없는 기분에 곧잘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후회이든, 변명이든,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관조이든 개안(開眼)이든 간에 서른 살이라는 에폭(epoch)에 매달려, 무작정 호소하고 싶은 충동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미처 서른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이 몇 줄의 말에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것 같다. 아직은 서른 살의 문턱에서 기웃거리고 있기에 이렇게 덤덤할 수 있지만, 그 문턱을 넘었다고 생각되는 어느 순간엔 분명 그런 기분이 될 것 같다. 서른이 무어 그리 대단한 나이냐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스물 일곱이 넘으면 퇴화가 진행된다지 않나. 어쩌면 아주 본능적으로는 그것을 슬퍼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정확히 서른이 되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 책을,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그보다 조금 앞서 읽기로 결정을 하고 어제 저녁 책을 펴들고 말았다.


표제작인 <삼십세>는 '그'의 이야기다.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하고 시작하는 <삼십세>는 29세 생일이 되는 날 부터 30세에 이르는 일년간의 '그'의 방황과 여행을 그리고 있다. 나는 책을 보는 내내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렸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콜필드의 짧은 가출과 '그'의 여행은 미묘하게 닮아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콜필드는 자신의 외부와 갈등을 겪었고, '그'는 자신의 내면과 갈등을 겪는다 것 정도. 어쩌면 서른이 된다는 것은 십대 때 찾아오는 열병과도 같은 사춘기의 변형이 아닐까. 그 열병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지나가면 한층 단단해지는. 여행을 하는 동안 그는 수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특히 '히드라처럼 증식한다'고 표현하는 '몰'에 대한 간단치 않은 고뇌는 책 밖의 나마저도 깊숙하게 끌고 들어간다. 이야기는 내내 호수의 물결처럼 그 안에서만 일렁이더니 마지막에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만나 급물쌀을 타기 시작한다.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사고가 그의 의식에 큰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모르겠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게 무엇인지.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할 계기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갈등을 겪고 있는 '그'를 세차게 뒤흔들어줄 만큼 강렬한 계기. 어쩌면 그거야말로 가장 강력한 갈등의 해결책인지도 모르고. 어쨌든 곧 삼십세가 될 '그'는 이제 삶을 간절히 원하며 독자에게 이러한 문구 하나를 남기고 이야기를 맺는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오스트리아 어느 도시에서의 청춘>은 전쟁과 폐허속에서 커가는 어린이들의 성장 과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그린 작품인데, 그 사실적인 묘사가 묘하게 아름다웠다. 전쟁 속 피난어린이들을 보는 아픔보다 그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그 아이들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더 와닿았다.슬프도록 아름다운 아이들, 청춘들. <모든 것>은 한 아버지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그의 의식은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행동과 주위의 상황은 오히려 흔해빠진 설정으로 흘러간다. 고민을 거듭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지만 결국은 가장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온다. <살인자와 광인의 틈바구니>는 아이러니하다. 살인자가 아니면서 살인자를 자청하는 남자와 의식하지 못한 채 광인으로 비춰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종전 후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전쟁 중에 벌어진 사건들이 중심이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에 심취하듯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은 모든 이야기가 전쟁 중에 있었던 이야기로 통한다. 진리인가보다. <고모라를 향한 한 걸음>은 앞선 <살인자와 광인의 틈바구니>와 함께 가장 극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고모라'라는 성경 속 도시이름이 왜 제목에서 쓰였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사랑이란 남녀사이에만 존재하는가에 대한 발칙한 물음을 던지지만, 명쾌한 결론은 내지 못한다. 아니 낼 수 없을지도. <빌더무트라는 이름의 사나이>는 그 우연함이 마음에 든다. 판사와 살인자의 이름이 같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진실은 과연 옳고 좋은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대해 고뇌한다. 결국은 보다 완전한 진실의 추구를 꿈꾸는 걸까? <운디네 가다>는 마치 희곡 같은 느낌을 준다. 무대 위에서 상연해야 할 것 같은 느낌. 가장 감정의 표현이 풍부하다고 해야할까, 가장 시적이면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 여성적 측면에서 무언가에 대해 소리치는 듯한 글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바하만의 문체는 사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순수문학의 그것이라 읽는 내내 어찌나 버벅거렸는지.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든 작품이라 시대도 현재와는 거리가 있거니와 그나마 익숙한 영미문학이 아닌 오스트리아 문학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생소했다. 아니 바하만의 출신이 오스트리아일 뿐, 정확히는 독일문학에 가까운가?; 아무튼 법학과 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작가라 그런가 짧은 작품 안에도 오만가지 상념이랄까 관념이 듬뿍. 여타 소설 읽듯이 줄줄 읽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읽기는 읽는데 내가 글자를 읽는지, 글자가 나를 읽는지 모를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지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 천천히 한자 한자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다시 말해 쉽다거나 즐거운 책은 아니라는 말. 나는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정말로 진정한 삼십세가 되는 날 한번 더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 때는 어떤 느낌일지…….


덧,
표지에 그려진 처연하게 아름다운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세 - 문예세계문학선 10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독일 전후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자 철학자인 저자의 산문집. 여성의 통절한 의식의 갈등과 진실에 대한 도전이 심각하고 명료하게 묘사돼 있다.
2009/05/16 13:07 2009/05/16 13:07